'기록의 분기점' 이후에 도착한 기억
지난 주 글을 발행하고 나서야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집요하게 무언가를 적고 그려왔다는 걸 떠올렸다. 기억은 언제나 제때 오지 않는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 화가인 아빠와 살았던 집에는 늘 ‘먹’과 ‘모나미 볼펜’이 있었다.
그것들은 비싼 유화나 수채화 물감 대신 가난한 화가가 넉넉히 쓸 수 있었던 재료였다.
다른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색연필과 크레파스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아빠의 먹과 볼펜으로 벽과 바닥에 검은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하루는 몇 개월간 동안 작업하던 아빠의 볼펜화에 먹으로 낙서를 했고, 아빠의 말을 빌리면 그날 나는 ‘디지게’ 혼났다고 한다. 그 후로 나는 다시는 아빠의 그림에 손대지 않았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해바라기 사람을 자주 그렸다고 한다. 얼굴은 해바라기이고, 팔과 다리는 사람인 그림이었다. 이유 없이 그저 반복해서 그렸다.
글이나 그림으로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유치원에서 무릎 위에 스케치북을 여러 권 쌓아두고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던 장면이다. 친구들은 자기 스케치북을 돌려받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던 일곱살의 나는 먼저 말을 거는 법을 몰랐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 한쪽, 책장이 있는 구석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거나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는 방법도 몰랐지만 가만히 있는 것도 썩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런 내 모습을 본 친구와 선생님이 말했다. “글씨 예쁘다.” “그림 잘 그린다.” 그 말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로 하나둘 친구들이 다가왔다. “이것도 그려줄 수 있어?” “여기에도 써줄래?” 내 무릎 위에는 스케치북이 차곡차곡 쌓였고, 나는 말없이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고 있었다.
먼저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누군가 다가와 주는 건 참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관심받고 싶었지만 나서지 못하는 아이, 조용한 관종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잘 쓰고 싶었고, 더 예쁘게 그리고 싶었다. 글씨를 쓰는 일은 누군가와 이어지는 가장 안전한 방식이었다. 말을 걸었다가 거절당할까 봐,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늘 걱정이었는데 글이나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누군가 먼저 다가와 주었다. 그 차이가 어린 나에게는 꽤 큰 안도였다.
그후로도 비슷한 장면들이 반복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필기 잘하는 아이가 되었고, 학급일지나 회의록을 맡게 되었다.
초등학교 5~6학년 무렵, 학교 가는 길에 작은 책방이 생겼다. 이름은 ‘깨비책방’이었다. 처음 빌린 책은 <캔디캔디> 만화책이었다. 이 만화책을 시작으로, 고전, 소설까지 도장깨기 하듯 책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빌린 만화책은 반납해야 했고, 그림 그리는 걸 아빠는 싫어하셨기 때문에 늘 몰래 그렸다.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뚜껑을 닫고 연습장을 펼쳐 만화책 속 장면을 하나씩 베껴 그렸다. 밤에는 이불 속에 웅크린 채 방문 틈으로 들어오는 불빛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을 잘 그려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갖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무렵 처음으로 ‘만화가가 되고 싶다’란 생각을 했다.
중학교 2~3학년 무렵, ‘마법기사 레이어스’, ‘세일러문’, ‘슬램덩크’같은 만화들이 한창 인기였다. 같은 반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 셋, 옆 반에서 그림을 잘 그리기로 소문난 친구 하나, 그리고 나까지 다섯 명이서 그림으로 교환일기장을 쓰기 시작했다. 규칙을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노트가 돌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옆 반 친구가 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친구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사이였고, 그래서인지 은근한 경쟁심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림은 만화 속 주인공들의 주요 장면을 ‘짤’처럼 그리는 방식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그림 아래에 댓글을 달았다. 그리기 어려운 동작이나 표정을 그렸을 때 반응이 유독 좋았고, 그래서 다음 장은 늘 더 잘 그리고 싶어졌다. 노트뿐 아니라 교과서, 빈 페이지가 보이면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아무도 시킨 적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그림 연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그림을 좋아했던 것만큼이나 친구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잘 그린다는 말 한마디가 다음 장을 그리게 만드는 힘이 되었으니까.
중학교 3학년 무렵, 영어·수학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 성격과는 정반대의 아이를 알게 되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웃기기까지 해서 남자 아이들 무리에서 늘 중심에 있던 애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애에게 마음이 갔다. 하지만 역시나 표현은 서툴렀다. 잘 보이고 싶었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걸 용기는 나지 않아서 대신 직접 그린 그림과 손카드를 건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고백의 방식이었다. 중3부터 대학 1학년까지, 둘 다 이성 친구를 처음 사귀던 시기라 그 관계는 서툴고 느린, 소꿉놀이 같은 연애였다.
중3부터 고3까지, 공부를 잘하던 남자친구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나는 수업 시간마다 더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시키지 않아도 수업 내용을 꼼꼼히 메모했고, 시험 기간이 되면 오답노트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그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는 ‘오답 노트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남자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늘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건 그림 그리기 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미대에 가고 싶다’는 꿈을 말하게 되었다.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지만, 아빠는 강하게 반대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아빠는 내게 물었다.
“진짜 미술이 하고 싶어?”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아빠는 곧바로 나를 화방으로 데려갔다. 아그리파 석고상, 이젤, 스케치북, 화판, 연필과 지우개, 물감까지.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모든 재료를 골라 사주셨다. 그리고 입시 미술학원에도 등록해주셨다.
“네가 선택했으니, 이왕이면 잘해봐.”
나중에 미대 입시 시험장에서도 문득 이 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내 의지로 선택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