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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Oct 18. 2023

님아, 그것을 먹지 마오.

뭐든지 김치로 만들어 드립니다. 

여기는 리옹의 미리벨이라는 유원지.

큰 호수를 주변으로 엄청난 숲과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프랑스에 거주할 때 리옹의 한국인들은 이곳에서 모여 바비큐와 포트럭 파티, 축구, 인라인 등을 즐겼다. 

적게는 십여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의 한국인은 대식가답게 리옹 마트와 중국시장의 삼겹살과 목살을 품절시키며 갈비를 재웠고 채소 코너의 질긴 채소로 김치를 만들어 모이고는 했다.


초여름이었던가.

시 소유의 유원지였으나 뒷골목의 주먹들이 구역을 나누듯 한국인이 늘 바비큐를 벌이는 장소가 있었다. 그 장소에는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좀처럼 자리를 잡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부산파, 목포파처럼 미리벨의 유원지도 한국인 자리, 중국인 자리, 아랍인 자리, 프랑스인 자리가 마치 약속이나 된 듯 나뉘어 있었다.

그렇듯 유원지가 만원이었는데도 한국인파의 전유 장소는 비어 있었다.

한국인들은 그 자리에 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바비큐 기구를 서너 개 펼치고 텐트를 치고 잔디 위에는 두터운 울 담요(피크닉용 담요가 따로 있었다. 마치 군용 담요처럼 두툼하고 꺼끌한 담요)를 깔고 아이들은 벌써 공을 가지고 잔디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바비큐에 필요한 불 피우기와 고기 굽기는 남자들이 전담했다. 여자들은 긴 테이블을 꺼내 그 위에 김치와 잡채, 밥 등을 세팅하면서 새로운 채소로 만든 김치에 대한 후기를 나눴다.

식사 전에 마시는 아페리티프(화이트와인과 키르라는 리큐르를 섞어 만든)를 일회용 와인잔에 따라 한 잔씩 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또래와의 시간이 즐거울 뿐이었다. 놀다 지치면 먹고 쉬다가 한국어로 수다를 떠는 그야말로 스트레스 해소의 시간이었다.


한국인은 대식가다.

대대로 대식가였다는 논문 발표도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만난 사람들만 대식가였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약간 위안이 되었다.

리옹 시내와 외곽에 있는 삼겹살과 목살은 매운 양념, 간장 양념, 생고기로 구워져 오전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웃고 뛰고 놀다 보면 금세 허기가 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진짜 허기였는지 외로움이었는지 단언하기 어려웠다.

외국생활의 외로움은 늘 허기를 달고 살았다.


먹고 먹고 먹는 중.

그 사이, 어디쯤에 풀 숲 그늘진 곳에서 한 언니가 외쳤다.

-이리 와봐요. 이 풀들을 봐요.

약간의 취기도 있고 배도 부른 어른들은 언니가 부르는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이 풀들을 봐요.

언니가 가리키는 풀들은 마치 누가 심은 것처럼 큰 나무 아래 그늘진 곳을 따라 잔뜩 자라고 있었다.

-이 풀들이 뭔지 알아요? 바로 서양 부추. 놀랍지 않아요? 이걸로 김치를 담그면 부추김치가 되는 거예요.


아이들의 바비큐를 담당할 남자들은 빠지고 여자들은 각각의 봉지와 겉옷을 펼쳐 언니가 가리킨 식물을 손으로 따서 담기 시작했다. 밭이라고 해야 할까. 그 밭은 광활했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식물을 따는 사람들의 손은 분주했고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부추김치라니.

배추도 구할 수가 없어서 중국시장에 배추가 들어왔다는 첩보(그야말로 첩보였다. 소리소문 없이 전화가 왔다. 지금 벨쿠르 어디에 배추 좀 남았음 이렇게 )를 받으면 부리나케 트램이라도 타고 가서 가져와야 김치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마다 한국인들이 중국시장에 마치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포스터처럼 들이닥쳐서는 눈 돌아간 채 배추를 담는 걸 보고는 중국 시장 주인들이 놀라워했다.

-대체 너희들은 이걸 가져가서 뭐 해 먹니.

-설명해 줘도 몰라. 


그날의 바비큐는 서양 부추 따기 대회로 변질됐다.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각각의 가정의 대표들이 바통 터치를 하듯 수확량을 늘였다. 아마도 한국인 지역으로 불린 땅의 서양 부추는 그다음 해를 기약하고 자취를 감췄을 것이다.


부추는 절이지 않아서 더욱 좋은 김치 재료였다.

그것은 손이 덜 간다는 최대 강점이 있었다. 깨끗이 씻어 한국에서 보내온 소중한 고춧가루와 간 양파, 다진 마늘, 액젓은 국산이 없는 관계로 베트남의 느억맘을 넣어 버무렸다.

그리고 실온에서 3일째.

김치 뚜껑을 열자 새콤하고 매콤한 향이 와락, 침샘이 폭발했다.

따뜻한 밥 위에 아끼느라 조금씩 올려 먹는 부추김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추의 학명에 의심을 품고 있던 남편은 김치 역시 신뢰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든지 말든지. 내가 먹을 김치가 많아진다고 생각하니까 권할 마음도 만류할 마음도 없었다.

그저 김치에 신날 뿐이었다.

김치가 자꾸 줄어들고 있었다.

아까워서 국물도 아껴가며 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울렸다.

마침 사랑스러운 부추김치를 밥 위에 얹어 맛있게 먹고 있던 참이었다.

전화를 받았다. 

그 서양부추를 알려준 김치의 은인, 한국인의 은인이었다.

헌데 말이 좀 어눌했다.

-언니, 어디 아프세요.

-야야, 그 김치 @$#^^^(())&%$!!!!!

-네?

-그 김치@#%%에 독#%&&초가 $^^섞였나%^&*봐.

어눌한 단어 사이로 들어있는 키워드를 조합하면 그 서양부추에 독초가 섞여 들어갔고 그걸 김치를 만들어 먹은 언니는 혀에 가벼운 마비증세가 왔다고 했다.


그 순간, 언니의 마비증 세보다 저 맛있는 김치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졌다.

차마 내 손으로 버릴 수 없어서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남편은 내 그럴 줄 알았다. 아무거나 다 김치로 만들지 좀 마. 

잔소리를 들으며 쓰레기봉투로 쏟아지는 김치를 보자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렇게 서양 부추김치는 내게는 강렬한 맛을 남기고 언니에게는 가벼운 마비를 선물하고 떠났다.

그 맛이 이렇게나 강렬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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