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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Dec 08. 2024

아직도 솔로세요? 저도 그래요, 아직도.

사랑에 빠지기 무서워하는 사람들






아직도 솔로세요? 저도 그래요, 아직도.

사랑에 빠지기 무서워하는 사람들










아주 화창한 어느 날이었다.

구름 하나 없는 새파란 하늘의 가을날, 그날따라 운동도 매우 잘 됐고 음식도 군것질 하나 없이 내가 계획한 다이어트 식단대로 잘 지켜 먹었고 우리 집 고양이도 특별히 평소보다 더 예뻤다. 그날 나는 깔끔히 차였다. 바람을 피운 남자친구로부터.


"그만할까?"

"어. 그만하자."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대략 저런 대화 내용들이었던 것 같다. 서울-부산이라는 장거리 연애는 평상시 잘 볼 수 없다는 단점에 더불어 또 하나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헤어지는 순간조차도 전화로 하게 된다는 것,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고작 헤어지자는 말 하나 하겠다고 10만 원을 불태우고 귀중한 시간까지 소비하는 멍청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여자 있는 것 맞지,라는 내 말에 남자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고 바로 그다음 날, 지독히도 화창하고 내 집 고양이가 예뻤던 그날에 나를 찼다. 나는 아무튼 그렇게 영문 없이 차였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붙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그만할까?"라는 말에 곧장 "어, 그만하자"라고 답한 남자친구로부터.






나는 그 연애를 끝으로 지금까지 연애를 하고 있지 않고 있다. 정확히는 하지 못하고 있다. 5년 간 이성이야 참으로 많이 만나고 헤어졌지만, 그들은 모두 '썸남'에서 그쳤지 하나같이 '남자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21살, 쓰디쓴 두 번째 연애의 고배를 마시고 난 뒤 나는 나 자신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솔로 인생을 어쩌다 택하여 살아오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내년엔 나아지겠지. 내년엔 괜찮아지겠지. 내년엔 하겠지. 그러다가 갑자기 진짜 이대론 안 된다는 겁이 날 때면 쥐구멍에라도 숨듯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만 한 채 곧장 다른 곳으로 내 관심을 돌려버린다. 이러다가 정말 30대까지 쭈욱 연애를 하지 못하고 결혼도 못하게 되는 무서운 미래가 너무나 잘 그려져서.


간절히도 연애를 하고 싶었으나 슬프게도 연애를 하지 못했던 지난 5년 간 나는 남자만 많이 만나서, 꽤 이상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연애 상담은 잘 못하지만 남자 상담(?)은 잘하는 지경에 이르러 버린 것이다. 친구가 요즘 만나고 있는 남성에 대해 말하면 "그 사람 괜찮은 것 같아/으엥? 안 만나는 걸 추천."이라고 척척박사처럼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연애는 하지 않아 연애에 관한 건 잘 모르지만 그동안 숱하게 만났다 깨지기를 반복한 썸의 경력이 있으니, 이 사람이 적어도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 정도는 어느 정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인간이 된 것이다. 물론 장점이다. 아주 강력한 장점. 한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 그 과정을 본다면 그야말로 눈물의 길이 아닐 수가 없다.



A는 너무 수동적이어서,

B는 나를 별로 안 좋아해서,

C는 성격이 너무 가벼워 보여서,

D는 문란해서,

E는 다 괜찮은데 그냥 뭔가 끌리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지난 5년 간 차이고 차기를 그렇게 수없이 반복했다. (이야, 이렇게 나열해 보니 나 정말 솔로인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연애를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간절히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데, 그 공백의 시간만큼 이성을 보는 눈과 태도가 더더욱 신중해진다는 모순이 있다. 점점 연애가 내게 어려운 것이 되니 시간이 흐를수록 그 어려운 연애를 같이 할 사람이면 응당 '결혼'까지 생각할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습게도 갈수록 오히려 사람에 대한 기대 자체가 적어지고 있다. 연애를 오래 쉬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공감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갈수록 호감이 가는 사람이 보여도 '어차피 나랑 잘 안 될 테니까.'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어서 애초에 선뜻 다가가지를 못한다. 지난 5년 동안 쌓인 썸-연애 발전 못함의 경험으로, 나는 이제 호감이 가는 누군가를 보아도 그것이 절대 좋아하는 감정까지 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호감이 간다? 그 순간부터 나는 포대기에 싸여있던 똥강아지처럼 후다닥 우선 숨고 본다.


내게 호감이라는 감정은 조금 무섭다.

호감이 가면 그 사람에게 기대를 하게 되고, 보통 그러다 대개 잘 안 됐고, 그러다 보니 절대 그 감정이 더 발전하지 못하도록 나 자신을 통제한다. 가끔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연락이 오면 우선 경계부터 하고 본다. 나한테 바라는 것이 있나? 정말 '순수하게' 나를 좋아하는 마음인가? 이제 생각해 보면 내게는 이것이 큰 주안점인 것 같다. 이 남자가 정말 내게 진심인가, 아닌가. 시간도 없고 돈도 없는데 헛된 만남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또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나를 우선 보호부터 하고 본다. 또 울기엔 이젠 눈이 너무 아파서.



그러다 보면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든다. 내가 이러니까 사랑을 못하는구나. 그런 깨달음에 또 오랫동안 나를 원망하고 탓한다. 사랑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겁쟁이로 만들고 날 숨게 하는 걸까?



오히려 초등학생 때를 생각하면 나는 그 누구보다 진솔하고 적극적인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춘기와 2차 성장이 이제 막 시작될 때 즈음 나는 아주 열렬히 같은 반 남자아이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2미터 근방에만 있어도 얼굴이 굉장히 빨개졌으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눈은 필사적으로 앞을 보고 있으나 흰자위로는 그 친구의 표정이며 모든 움직임을 파악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수학인가 국어인가 영어 시험을 마치고 먼저 끝난 아이들은 뒤에서 조용히 소리 안 나는 놀이를 해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에, 그 당시 센세이션한 열풍을 가져왔던 공기놀이를 하기 위해 교실 뒤편으로 가던 때였다. 그때 나는 교실 뒤편 공간에 쭈그려 앉으며 또다시 뚝딱거리는 기계가 되었다. 하필 그때 시험을 끝마친 유일한 친구가 오직 그 남자아이 한 명뿐이었던 거다.


탁...탁...구르르.


그 아이와 나만 남았는데, 내 손엔 공깃돌이 쥐어져 있고, 그때는 이미 그 남자아이에게 밸런타인데이 때 사귀자!!라고 말한 문자 고백을 한 뒤였다. 그렇다고 못 본 척할 수도 없으니 그 남자아이와 나는 의무적으로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자리에 앉아 한마디 말도 없는 이상한 공기놀이를 했다. 그때 나름 '한 공기'했던 나였으나 그 아이와 함께 하니 손에 물이 맺힐 만큼 땀이 흘러 제대로 공기를 할 수가 없었다. 좀 던지다가 데구르르, 좀 던지다가 다시 데구르르... 짧은 12살 인생 중 그렇게 떨리는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친구에게 그 마음을 못 참고 결국 문자 고백을 했었고, 그것은 그 남자아이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당시 내가 좋아했던 모든 남자아이들도 포함되었다. 고백 공격을 열심히 날리고 열심히 차였다. 늘 그렇게 차였다. 축구공도 아닌데 그야말로 겁나게 차였다. 그쯤 되니 중학생 때부터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자체를 가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성인이 된 후엔 어느 정도 진솔하게 좋으면 좋다 말하게 되어 두 번의 연애를 했지만, 한 번 쓰디쓴 이별을 겪은 지금의 나는 오히려 그 어떤 때보다 딱딱한 사람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26살이나 됐는데, 8살의 나를 매우 부러워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를 누가 설명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때 열렬히 좋아했던 짝사랑 남자아이가?






시간은 가고 나는 늙어가고 결혼은 무진장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다. 연애도 이리 쉽지 않은데 언제 결혼이라는 거대한 축제를 내가 감히 할 수 있을지 엄두도 나지 않는다. 나만 이렇게 마음 표현하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다. 계속되는 아래의 악순환.



어? 저 사람 멋있다 - 아, 호감 가는데 안 되는데 - 일단 관심 없는 척하고 피하자 - 어차피 잘 안 될 거야 - 어? 여자친구 생기셨네 - 그때 들이댔어야지 바보야 - (다시 어? 저 사람 멋있다)



내 사랑에 있어 제일 악독한 것은 '어차피 잘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인 듯하다. 그 어떤 멋있는 사람을 만나도 별 기대를 하지 않게 되고, 들이댈 생각은커녕 그냥 멋있구나 라는 감탄에서만 멈추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나는 왜 사람에게 기대를 하지 않게 된 것일까?



지속되는 사랑의 실패.



사회생활을 하고 많은 나쁜 놈들을 만나야 진정 단단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이 세계를 지독히도 원망하는 제일 큰 이유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다만 지금의 내 상태는 그보다 훨씬 더 단단해져서 나조차도 빈틈을 찾을 수 없게 된 그야말로 싹수없는 바위 덩어리.


사랑에 실패해도 다른 누군가를 쉽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나를 이렇게 바위 덩어리 안에 숨길 일도 없을 텐데. 나를 감싼 바위 덩어리를 보고 내게 오려던 그 누군가가 깜짝 놀라서 도망갈 일도 없을 텐데. 그 도망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난 뭐 늘 실패했으니까.'라는 생각에 더한 밑으로 들어가지도 않을 수 있을 텐데.


어릴 땐 어른이 되면 당연하단 듯 뚝딱뚝딱 알아서 뭔가가 작동해 연애도 계속하고 결혼도 자동적으로 할 줄 알았다. 당연히 이 나이쯤엔 괜찮은 남자가 나타나서 청춘을 불태우는 뜨거운 연애를 하고 있겠지, 이 나이쯤엔 더 괜찮은 남자가 나타나서 결혼을 얘기하고 있겠지...  사랑이란 건 고백하다 늘 차였던 초등학생 때도, 어른이 된 지금도 어떻게 다룰지 몰라 어렵다는 것을 그땐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랑은 흰머리 가득한 할머니가 되어서도 어려워할 것이 분명하다.


그야말로 인류에게 사랑이란 절대 죽지도 늙지도 않는 무적의 적이다.

에로스, 생긴 것도 아름다운데 노래도 잘하고 몸도 뛰어나니 그 눈빛에 도저히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는데, 막상 넘어가게 되면 그때부터 나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옥 한가운데 놓여 답안지도 모르는 지옥의 12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 길을 통과할 땐 어린아이도 있고 아버지 어머니도 있고 꾸부정한 허리의 할머니도 있고 담배만 풀풀 피워대는 건달도 있다. 백인도 흑인도 있다. 여자도 남자도 트랜스젠더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인류에게 사랑이란 뛰어난 지능이 준 최고의 저주이자 선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영영 풀지 못하는 퀴즈이지만 그러기에 아름답고 매력 있고, 그러기에 이 삶을 살아갈 힘이 된다는 아주 희한한 정체의 꾸러미. 아무튼, 못생긴 에로스든 잘생긴 에로스든 지금은 사랑을 부디 좀 시작하고 싶다. 더 이상 그 앞에 무섭다고 숨지 말고, 어차피 안 될 거라는 부정적 확신에 휩싸여 나를 깎아내리지 말고, 5년 전 쓰디쓴 이별의 장면에 얽매이지 말고.



또 이제는 부디 사람에게 기대를 하고 싶다.

이 사람과 잘 되고 싶은 마음을 넘어서서 이 사람과 잘 되겠지, 하는 기대를.



???          너는 뭘 원하는 건데?

세희        기대요. 이 사람이랑 나랑 잘 되겠지. 4시간 정도 통               화하다 꼴딱 밤 새겠지. 아침잠 많다는 핑계로 모닝                콜 해달라 조르겠지. 서로의 집에서 요리도 해주구,                옷도 벗고, 같이 씻겠지.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하게                   이뤄질 거란 기대요. …12살 때, 이 남자애랑 나랑                   당연히 사귀어서 햄버거도 먹고 떡볶이도 먹겠지                   하면서 날밤 새웠던… 그런 기대. 이젠 안 돼요, 잘.                 (작게 웃으며) 나 진짜 어른 됐네.

*차기작 드라마 극본에 써야지*



그렇게 기대를 하는 순간부터 나를 단단히 붙들고 있던 바위 덩어리의 표피들이 조금은 떨어져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 기대 한 번, 한 번에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방어 기제들이 차츰차츰 녹아내리지 않을까. 진솔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하나면 상대도 그제야 바위 뒤에 숨겨져 있던 '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드는 생각은.



진솔해지자.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한테. 내 마음한테.


그 말을 오랫동안 속으로 짓씹어 본다. 더 나아질 미래를 원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나를 보호했던 그 무거운 바위만큼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나를 위해서. 생겨나려는 사랑의 마음을 모르는 척하고 부정하는 멍청한 나를 위해서.



아직도 솔로세요? 저도 그래요, 아직도.

그러면 우리 걸음마를 차차 떼봅시다.



좋으면 좋다고 생각하기. 좋으면 좋다고 표현하기. 아직 나오지도 않은 부정적 결과를 확신해서 절대 길을 돌아가지 말기. 그것은 내 '연애'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니까. 그것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이렇게 한 발 한 발 걸음마 떼듯 나아가고 내 마음을 다스리다 보면 언젠가 날 누르고 있던 방어구들이 장미꽃 같은 것들로 변할 수 있으니까. 아니면, 나를 안아주기 위한 포근한 담요라던가. 소나기 내릴 때 나를 젖지 않게 해 줄 우산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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