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딸] 그 밑엔 [사랑하는 사람-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엄마-딸] 그 밑엔 [사랑하는 사람-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유독 엄마의 전화를 받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
저번주는 쏟아지는 업무로 하루, 아니 이틀 동안 엄마의 연락을 보지 못했다. 회의 도중 휴대폰이 부르르 떨어서 보면 '엄마(하트)' 문구가 화면 크게 떠 있었고 망설임 없이 종료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 '회의 중입니다. 다시 전화드릴게요.'라는 아이폰 기본 거절 문구를 대신 보낼 생각은 할 틈도 없었다. 그 순간 엄마와 나의 관계가 불현듯 떠올랐다.
딸이 아니라 아들 키우는 것 같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고, 내가 봐도 나는 살가운 딸보다는 방에만 틀어박혀서 게임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만 있는 기운 없는 아들의 분위기에 가까웠다. 반면 우리 엄마는 지금 보아도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50세의 나이에도 아직 발랄한 소녀 같은 엄마는 아직도 아빠를 '자기'라고 부르고, 라면을 아직도 한강물로 끓여서 아빠의 잔소리에 토라지기도 하며, 고추를 꼬추라고 발음해 나와 깔깔 웃기도 한다.(이때 아빠는 "꼬추가 아니고 고추야..." 한마디 하고 갔다)
내가 학교 앞 자취방으로 갈 때는 곧 보자며 꼭 끌어안아주시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적이거나 감수성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해서 내가 미리 보기로만 엄마의 카톡을 읽고 1 표시를 없애지 못해도, 쏟아지는 엄마의 문자에 그저 "응" 한마디만 남기거나 알겠다는 이모티콘 하나만 보내도, 엄마는 딱히 거기에 서운해하지 않았다. 엄마는 발랄하면서도 쿨한, 내가 평생 겪어본 사람 중에 제일 특출 나고 매력 있는 사람이다. 또 거기다가,
연애 상담에 있어 이런 조언을 할 줄 아는 사람?
아빠의 출근길에 여전히 팔짱 한번 끼자고 애교 부리고, 잘 갔다 오라며 자식들 앞에서도 뽀뽀를 하고, 자취방에 가서 일주일 뒤에나 보는 아들 같은 딸에게 아주 센 포옹을 하는, 그런 사람? 바로 우리 엄마다. 발랄하고 소녀 같으면서도 쿨하고 이지적이고, 소설이나 영화엔 조금도 감흥 없고 꽤나 냉철하고 이성적인 반전 매력의 사람.
이런 엄마가 유독 내게 마음을 더 쓰는 날이 있었다.
저번주, 쏟아지는 업무로 이틀 동안 엄마의 연락을 보지 못했을 때, 전화도 끊고 '지금 전화 어려워?'라는 카톡에 답장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일에 파묻혀 지냈을 때. 나는 당연히 그때도 엄마가 별생각 없이 이 이슈를 넘길 줄 알았다. 아들 같은 이 무뚝뚝한 딸은 늘 엄마의 연락에 읽씹을 하기 일쑤였고, 가끔 하는 답이라고는 텍스트론 왠지 존댓말도 반말도 어색해서 어중간한 존댓반말을 쓰는, 이러한 무심함을 당연한 아우라처럼 뿜어대는 인간이었으니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도 밀린 것들을 보고 즐기느라 엄마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 퇴근하며 듣기 좋은 음악. 퇴근길 보기 좋은 나폴리탄 괴담. 당신의 인생이 그대로인 이유 등등 보고 씹고 맛볼 것들은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차고 넘쳤다. 그렇게 자극과 유흥과 소음의 귀갓길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따라 들어온 엄마가 말했다.
"너 왜 그렇게 연락을 안 봐!"
바빠서 그랬어 바빠서... 진짜 바빴어! 희한하게 내가 더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그때도 눈이 감기기 일보 직전이라 대충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날따라 방도 유독 더 깨끗했다. 본가에 머무는 단 4일, 그때동안 나는 그리도 내 방을 엉망으로 망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약 5일이 지나고 다시 본가에 돌아오면 언제 그리 더러웠냐는 듯 거짓말처럼 깨끗해지는 엄청난 변화의 순간들을 당연히 목격해 오긴 했는데, 그날따라 유독 더 그 변화가 극적이었다. 침대에 앉기 전 나는 금세 그 이유를 알아챘다.
정갈하게 덮인 침대 이불 위로 정갈하게 접힌 상의, 하의 잠옷이 있었다.
저번주엔 가을 이불이었는데 처음 보는 깨끗한 겨울 이불이 내 침대에 덮여 있었다. 낯선 이불을 매만지자 그 두께가 상당했는데도 뜨끈한 열기가 아래에서 송송 퍼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가 따라오면서 말했다- "너 오니까 장판 데워놨어"
음, 그 순간 뭐랄까, 조금 띵한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내가 연락을 씹어도 안 서운해하는 사람인데? 이런 것 세심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연락을 왜 그리 안 받냐며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닌데?
내가 여태까지 알던 '엄마'와는 다른 모습을 그 순간 겪은 것 같아 묘하게 새 이불이 덮인 뜨끈한 침대가 살풍경했다. 정말 웃기게도 그 순간 조금, 아주 조금 울컥했는데 그 감정을 다 느낄 새도 없이 엄마가 들어와서 씻어라 밥은 먹었냐 왜 그리 전화를 안 받았냐 랩 하듯이 꾸중을 했다. 의아하게도 그 잔소리를 들으니 감정이 몇 배 더 강하게 나를 눌렀다. 처음 느껴보는 찌르르함에 머리가 덮이는 느낌이었다. 그때 '엄마 고마워'란 말이 툭 떠올랐는데, 아주 순식간에 말할까 말까 고민만 하다 결국 말을 하지 못했다. 살면서 엄마 사랑해, 고마워, 보고 싶어, 이런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한 순간들은 참으로 많았는데 그때만큼 격정적으로 고민한 적은 없었다.
정갈하게 접힌 잠옷과 깨끗하게 놓인 이불과 뜨거우리만큼 데워져 있는 전기장판.
엄마도 나한테 보고 싶었어,라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거기서 나는 이틀간 딸과 연락을 하지 못한 엄마의 간절한 마음을 엿들었다. 잠옷과 이불과 전기장판이 내게 그리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틀 동안 너네 엄마가 너 겁나게 찾았어, 멍청아!
어릴 땐 사랑이라 하면 디즈니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남녀 간의 운명적인 사랑,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사랑을 떠올렸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것은 어릴 때부터 누군가가 나에게 심어놓은 '사랑의 선입견'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사랑'하면 대단히 아름답고 분홍빛의 꽃잎이 휘날리는 무릉도원의 이미지를 먼저 인식하게 되는 걸까?
해서 나는 초등학생 때 친구들이 내 가방에 실내화 자국을 냈을 때, 불량식품을 사겠다고 저금통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꼈을 때, 전학 간 학교에서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을 때, 그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왜 그리도 엉엉 울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엄마 목소리만 들으면 눈물이 났다. 내 DNA에 박힌 본능 같았다. 이상하게 그런 일이 생길 때면 꼭 엄마 생각이 났고 "무슨 일이야?" 하고 묻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심장에서부터 울컥울컥 기다렸다는 듯 서러움이 차올랐었다. 어릴 땐 그것들이 그저 '엄마니까' 내 본능의 기저에 새겨진 하나의 낙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딸이고 엄마는 내 엄마니까. 태어나고 보니 엄마가 나를 낳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난 엄마와 나의 관계를 사람-사람의 관계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엄마-딸의 태생적 관계가 아니라, 사람-사람의 당연한 의사소통 관계로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엄마에게 했던 모든 행동, 말투에서 '딸이니까' 혹은 '엄마니까'의 껍질을 벗기게 된다. 그 태생적 껍데기에 휩싸여 있던, 사람으로서 갖는 감정의 민낯을 볼 수 있게 된다. 예전엔 엄마와 나의 관계를 단 한 번도 이 태생적 관계에서 벗어나게 한 적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한테 하는 모든 행동들은 그저 '딸이니까' '엄마니까'라는 천하무적의 말 한마디에 이게 무슨 감정인지도 모르고 스쳐 지나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모르는 게 당연한 건데, 어쩌면 참으로 무지한 거다.
정갈하게 접힌 잠옷을 펼치자 섬유유연제 향기가 났다. 몸을 씻고 엄마가 준 잠옷들로 갈아입고, 뜨끈하게 데워진 이불속으로 몸을 넣자 뜨거워서 맨살이 아렸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엄마와 나 사이를 감춘 태생적 관계의 껍데기가 벗겨지는 것을 목격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나도 엄마를 사랑하는구나. 그게 아니라,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구나. 저릿한 충격이었다.
잠옷을 접고 겨울 이불을 덮고 전기장판을 데웠을 때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틀 동안 답 없는 내 연락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심장까지 훈훈하게 만들던 전기장판 위로 몸을 들이밀며 나는 그때 어릴 때부터 '엄마니까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한 장면에서 비로소 탈출했다.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엄마니까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은 몇 장면이나 될까. 이제야 되돌아보자면.
몸살에 걸려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던 9살 밤, 밤새도록 손수건을 찬물에 적셔서 내 이마에 올려주었던 것.
배탈에 걸려 끙끙거리던 8살 밤, 잠에 취한 손길로 통통한 내 배를 쓰다듬어주었던 것.
식사를 거르고 학원을 가려던 14살 저녁, 방금 퇴근한 옷차림으로 급하게 내 손에 샌드위치를 쥐어주었던 것.
생리통으로 기절했던 22살 낮, 약국에서 온갖 진통제를 사 와 내게 먹여주었던 것.
사이사이 넘칠 듯이 밀어 넣어진 사랑들을 알아채지 못한 채 넘기고 삭제되었던, 다시는 오지 못할 순간들.
세상을 겪고 인생을 살면서 비로소 나는 '딸'에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당연하게 겪어왔던 것들이 이제야 조금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엄마를 엄마가 아닌 사람으로서 보기 시작했다. 엄마는 25살,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보다 1살 어렸을 때 결혼을 해서 나를 낳았다. 지금의 내 나이 때 나를 낳은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어떻게 내 나이 때 결혼을 하고 나를 임신했을까? 엄마는 그때 배 속에 나를 품으며 여태 당연히 여겼던 외할머니와의 사랑을 떠올렸을까?
접힌 잠옷과 겨울 이불과 뜨끈한 전기장판,
그곳에 엄마가 이틀간 꾹꾹 압축시키고 모아둔 것.
오늘도 우리 곁을 스쳐간 무수히 많은 사랑들은 무엇일까.
우리는 얼마나 수많은 인과관계 속에서 사랑들을 지나치는가. 많은 사람이 그 겹겹이 쌓인 관계의 층을 부수고 저 밑에 놓인 감정의 민낯을 보면 좋겠다. 별것 아닌 것들이더라도 그 관계의 층을 부수면, 내가 누군가의 누구이기 이전에 받아왔던 뼈저리게 어여쁜 사랑들의 눈코입이 당신을 보고 있을 테니까. 이제야 나를 발견했군요, 기쁘게 웃으며 당신을 맞이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