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는 아이의 크리스마스

중학생 아들의 크리스마스 생존기

by 대나무숲

중학교3학년이 된 나의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늘 보던 아이가 좀 다르게 보였다. 175센티 덩치만 큰 그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개별적 존재감이 느껴졌다. 세상의 어느 누군가는 내 아이만이 가진 이 이상한 개성을 근사하게 보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생에서 처음으로 성별이 여자인 상대에게 호감이 생겼기 때문에 남자인 내 아이는 아주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손발이 후들거리고 심장이 터질 듯 떨렸던 고백의 경험을 넘어서며 한 여자아이와 십대 인생 단짝이 되는데 성공했다. 아이의 소식을 듣고 이 세상에 정말 인연이라는 게 있나 보다 싶은 신기루 같은 기분이 나도 들었다. 그런 나의 아이가 이번 크리스마스는 자신의 짝꿍 여자친구와 보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나와 나의 남편과 첫째 아이는 모두 근심 어린 표정이 되었다. 그걸 니가 할 수 있을까.. 라는 반사적인 의구심이 우리 셋의 마음을 지배했다.

“음….. 너 뭐할건데?” 저녁식탁에서 소식을 들은 내가 입안의 밥을 씹다 용기 내어 물었다.

“생각하는 중이야.” 입안을 오물거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이가 대답했다. 그러더니 고민하며 다시 물었다. “그러게. 뭐하지?”

내 마음을 녹여 넣어 현실성 있어 보이는 제안을 했다. “미술관 가. 그림을 보다 보면 나눌 얘기가 자연스럽게 생겨. 실내니까 춥지도 않고. 미술관마다 반드시 카페가 있어서 코코아도 사먹을 수 있어. 엄마가 입장권 사 줄게.” 아이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너무 올드하다는 뜻이거나 엄마 아이디어가 그럼 그렇지 뻔하다는 반응이었다. 1차 대화 실패.

시간이 지나고 지나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 되었다.

“내일 뭐 먹을거야?”

아직 못 정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하루 전인데 아직도 못 정했으면 어쩔려고 그러냐는 성토가 형과 아빠에게서 쏟아졌다. 조바심에 내가 덧붙여 말했다.

“설마, 우리동네 롯데리아 갈건 아니지???”

아이가 아, 그건 안 되는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이제야 얻은 표정이라 내 조바심에 불을 질렀다.

“야! 맨날 가는 롯데리아, 크리스마스에도 가면 어쩌냐! 엄마가 돈 줄게. 멀리 나가서 새로운 거 사먹어!”

“아, 알았어~~~”

아이가 장난조로 눈을 흘긴다.

“엄마는. 그냥 불쌍해서 그래.”

“누가 불쌍해?”

“니 여자친구가.”

첫째 아들과 남편도 같은 마음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6년을 같이 산 사람들의 반응이 이랬다. 아이는 얼굴을 감싸더니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

2차 대화도 실패했다.

우리집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쿠키를 만드는 루틴을 늘 한다. 쿠키 정도를 전통이라고 할 순 없지만, 십여 년째 계속 했다. 둘째 아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였다. 산타 할아버지가 전 세계를 하루 안에 돌려면 얼마나 피곤하고 배고프실 텐데 쿠키를 만들어 트리 밑에 놓자는 제안을 했다. 그 반짝이는 눈망울을 나는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배꼽 잡으며 웃고 싶었지만 아이 앞이라 눈물이 쏙 빠지게 꾹 참았다. 아이와 내가 암묵적으로 산타할아버지의 존재가 허구라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인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쿠키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올해도 만들었다. 둘째 아들이 계란을 깰 동안 나는 설탕과 녹인 버터을 섞었다. 날가루가 안보일 때까지 11자로 밀가루를 섞는 건 힘 쎈 아들이 잘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초코칩을 듬뿍 넣어 반죽을 완성한 후 냉장고에 휴지시켰다. 그 사이 아이가 이런저런 검색을 한다.

“엄마, 고양이 카페는 어때?”

나는 웬일로 괜찮은 아이디어를 냈다며 아이를 칭찬했다. 여자친구도 고양이를 좋아한다니 금상첨화다. 나는 속으로 좀 안심이 되었다. 고양이랑 놀다 보면 기쁘겠다. 기쁘다 구주 오신 날에 내 아이와 그 친구도 기쁠 수 있다니 내 맘에 행복한 기대감이 밀려왔다.

쿠키 굽는 달달하고 포근한 냄새가 오븐에서 퍼져 나가자 부르지 않아도 아이들이 각자의 방에서 쏜살같이 나왔다.

“음~~~~ 좋은 냄새!”

내 방에서 책을 보던 나는 냄새에 둔감하여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엄마의 둔감함에 실망하며 아이들이 내 곁에 드러누웠다. 거대한 두 아이들과 아까의 대화를 이어갔다.

“근데 고양이카페는 어디로 갈거야?”

“홍대”

나와 첫째 아들에게 무슨 공통의 본능 센서가 있는 걸까. 다시 걱정 수치가 슬금 올랐다. 우리 둘은 동시에 한탄하며 물었다.

“너…. 홍대 앞 가본 적 있어?”

“아니..”

뻔뻔한 둘째 아이의 대답을 들은 나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튀어나갔다.

“근데 무슨 용기로 홍대까지?”

“길도 잘 못 찾으면서. 으이그~”

나와 첫째 아이가 한두 마디씩 만 반응해도 금새 너댓 마디의 잔소리가 되었다. 근데 웬일로 둘째 아이가 이번엔 좀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근데… 나 막 잘 모르고 아는 척 하다가, 클럽 같은데 들어가면 어떡하지? 버닝썬 그런 거 말야.”

타오르는 태양을 만날까봐 걱정하는 아이에게 현실적 코칭을 해준답시고 일단 뭔가 타오른다 싶은 뉘앙스면 그냥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첫째 아들이 깔깔대고 웃겨 죽겠단다. 자기가 밤에 홍대 앞을 지날 때 만났던 호객행위 얘기도 들려준다.

“내가 지나가는데, ‘어이~ 놀다가’라고 하는거야. 그래서 내가 ‘어어어.. 저 고등학생인데요’했더니 냉큼 뿌리치고 저리 가라고 하더라~”

요새도 삐끼가 있는건가. 2024년의 홍대 물정을 전혀 모르는 나와 둘째 아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서로를 단속하고 주의를 새겨 들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우리 셋이 놀았다. 이불에서 뒹굴며. 아직 엄마 품이 따뜻한 아들들과. 쿠키의 달큰함이 풍부하게 우리를 감싸는 동안. 있지도 않을 호객 걱정을 하며 서로를 놀리고 가상의 상황을 과장되게 상상하며 놀았다. 깔깔대는 소리가 진동했다.

갓 구운 쿠키에 우유 한 잔은 상상을 초월하게 맛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잖나. 추운 날씨에 따스한 감각을 일깨우는데는 이만한 게 없다. 아이들이 만면에 행복을 품고 가득가득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잠이 들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도래하고 둘째 아들은 홍대로 출발했다. 아이가 현관문을 나섰다가 다시 그 문을 열고 돌아오는 여덟 시간의 기간동안 나는 걱정이 되었다가, 궁금했다가, 상상만해도 웃겨 죽겠다 싶었다.

“뭐 했어??? 어디 갔었어?? 뭐 먹었어?”

아이가 돌아오자마자 부여잡고 이 세 가지를 물었다. 아이가 우리 엄마 못 말리겠다는 체념조로 내 곁에 앉았다.

“일단 홍대를 갔어.”

“?”

“물론, 내가 길을 못 찾아서 여자친구가 찾아줬지.”

아, 그래 역시 예상은 벗어나지 않는구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역설적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사격장 갔었어.”

“??”

“여자친구가 좋아했어.”

그래, 그럼 되었다. 만사 오케이다.

“누가 더 잘 쏴?”

혹시 사격을 만점 받아서 큰 곰인형을 여자친구에게 선사하는 그런 로맨티스트를 내가 낳은 건 아닐까 은근히 기대하며 물었다.

“으응, 내 여자친구는 쐈다 하면 거의 9점 이상이더라. 잘해잘해. 당연히 내가 졌지.”

속 없는 넘.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고양이 카페는 안 가고? 거기도 가지!”

“가봤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들어갔어.”

알콩달콩한 시간을 놓쳤다니! 아쉬웠다.

“저녁은 뭐 먹었어?”

설마 홍대 롯데리아 갔나. 여자친구 하나 먹을 동안 혼자 또 햄버거 세 개 먹었나. 후렌치 후라이도 막 뺐어 먹고 그랬나? 홍대 가서도??

“아. 저녁은 라멘 먹었어.”

“라멘? 편의점 라면은 설마 아닌거지?”

아이가 나를 안심시키는 표정으로 다독이며 말했다.

“엄마. 편의점이라니~~”

자신을 뭘로 보는거냐는 그 표정이 신뢰감이 안 갔다.

“일본 라멘 먹었어. 근데, 그거 진짜 맛있더라.”

다행이었다. 그러나 역시. 여자친구가 반 그릇 밖에 못 먹는 동안 자기는 국물까지 싹 다 먹었단다. 그래 덩치가 크니 뱃고래도 큰 걸 어쩌겠어. 많이 먹는 건 괜찮은데 다음부턴 상대방이 덜 민망하게 식사 속도를 맞춰서 대화도 하면서 쫌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

아이는 그 후에 있었던 자잘한 일들에 대해 조근조근 말해주었다. 버스킹 공연을 보았고, TV에서나 보던 분위기가 신기하고 좋았단다. 둘이 나란히 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안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경찰아저씨에게 붙들린 위조 신분증 소지자도 직접 봤단다. 술집 앞에 서 있었다니 미성년자가 술을 주문할 때 활용하려다 걸린 듯하다. 그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실제로 보니 덩달아 자신도 기분 나빴다고 했다. 경찰아저씨들이 수고 많으시다는 인사가 우리 둘 사이에 이어졌다. 그리고 여자친구를 집에 안전하게 데려다 주고 자신도 집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로 크리스마스 하루가 끝났다. 떠들썩한 이벤트는 없었다. 그러나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난 아이의 표정이 참 이뻤다. 나는 사람 많아서 절대 가지 않을 홍대 앞. 아이는 그곳을 가본 게 처음이었고, 그곳의 분위기가 본인이 살고 있는 동네와 완전 다르다는 것을 물씬 느꼈고, 모든 것이 너무 번쩍거려서 당혹스러우면서도 신기하고 재밌더라는. 뻔한 홍대를 아이의 입을 통해 들으면 그보다 새로울 수 없는 그런 세상의 이야기가 되었다. 아이의 반짝임을 보면서 내 마음이 포슬하게 들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자신의 SNS에 두 사진을 올렸다. 여자친구의 것과 자신의 것을 나란히 둔 라멘 그릇과 과녁판 사진이었다. 여자친구의 사격솜씨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올림픽 꿈나무 같았다. 내 아이의 사격은 흠잡을 것 뿐이었다. 올림픽 꿈나무를 열심히 써포트만 할 수 있게 생겼다. 가만히 서 있는 과녁에 굳이 춤을 추며 맞춘 느낌이었다. 아이 마음에 남은 크리스마스의 기쁜 순간들이 느껴져서 나는 마음이 참 좋았다. 아이의 첫 연애시절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지나갔다. 흰 눈이 소리 없이 소복하게 쌓이듯 아이의 마음에 요란한 소리 없이 추억이 쌓였다. 내 아이에게 생의 기쁨이 생겨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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