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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느끼는 아이의 졸업식

by 대나무숲

아이의 졸업식 날이다. 졸업이라는 행사는 대부분 사람들의 생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횟수로 일어난다. 그 작은 숫자의 시간이 평생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돌이켜보면 나의 생에서 졸업식은 딱히 기억할 만한 거리가 없다. 기억이 안나는 것은 아닌데 기억을 굳이 할 필요가 느껴지는 그런 유의미한 것이 없었다. 나에게 졸업식은 요식 행위 같았다. 기념하는 특별한 옷을 입어야 기분이 난다든가, 겉으로 보이는 축하와 화답이 꼭 있어야 한다든가, 과장된 수식들이 불편했지만 딱히 다른 방도가 없어서 나는 관망하거나 그저 따르는 구성원 역할을 했다. 내 아이의 졸업은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랐다. 어떤 이상향을 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나의 경험과는 달랐으면 했다. 아이의 마음과 주변인들의 마음을 보듬는 그런 날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나의 아이의 졸업식은 내가 막연하게 그리던 그 감사한 자리에 더 가깝게 끝났다. 무엇이 달랐을까, 짚어보는 그런 자취를 남기고 싶었다.

졸업식 시간에 맞춰 첫째 아이와 남편과 현관문을 나섰다. 가는 길에 우리 셋은 둘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몸의 리듬감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아이가 전교생 앞에서 춤을 춰야 한다고 했을 때 우리 셋이 얼마나 걱정을 했었는지. 뻣뻣한 종이 인형 같았을 게 안 봐도 뻔했다. 아이에게 공연은 어땠냐고 나중에 물으니 너무 떨려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친구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잘 감춰서 티가 하나도 안 났을거라고 말하는 아이의 그 격양된 표정을 흉내 내느라 나는 연신 깔깔거렸다. 예약해둔 꽃다발을 찾았다. 다른 물건이나 생물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향기의 아우라가 났다. 나이가 들수록 꽃을 보면 사진 버튼을 누르는 어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가족들과 나란히 꽃을 들고 걷는 시간만으로도 행사가는 길이 좋았다.

학교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그땐 몰랐다. 오늘의 예의 있는 의식이 대체 얼마나 긴 여정이 될지. 각 반의 소개 영상이 틀어지고, 교장선생님의 말씀으로 이어지고, 전교생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씩 호명되며 졸업장이 전달된 후 축하공연까지 끝나고서야, 학생들이 다시 각자의 교실로 돌아와 선생님 종례를 마치고 식이 끝났다. 무려 세 시간이 걸렸다. 밤샘 연습을 끝내고 동생의 졸업식에 참여한 나의 첫째아들은 교장선생님께서 ‘제가 읽었던~’이라고 운을 떼시던 부분부터 바닥에 널부려졌다. ‘고’씨나 ‘권’씨로 시작해서 ‘하’씨나 ‘황’씨로 끝나기까지, 예의 바른 아이들이 졸업장을 받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200명이 지나갔다. 여느 졸업식과 같은 졸업식이 드디어 끝났다 싶었을 때, 급식 먹고 종례 후 귀가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니, 졸업식 끝나면 가족들이랑 외식하는 게 국룰아닌가!?”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아쉽게도 나의 아이의 학교는 여느 졸업식과 다르게 센스가 좀 부족했다. 급식을 먹으러 가라는 방송은 배경에서 계속 울려 퍼지고, 강당에서 쏟아져 나와 부모를 만난 아이들은 꽃다발을 건네받자마자 잽싸게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사진을 찍고 오늘을 기념하느라 모두가 들뜨는 그 시간이 드디어 도래했다.

나도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고 알아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참 반가웠다. 그들도 나를 반가워했다. 그 재회의 감각이 참 좋았다. 아쉽게도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까먹고 말았다. 누구 엄마더라. 누구 아빠더라. 내가 저 아이를 어떻게 알더라.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짝꿍이었는데. 축구부 같은 팀이었는데. 같은 학원에서 만났는데. 얼굴은 분명 낯이 익었다. 이름은 기억해내는 데는 더 깊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만남은 그 노력이 결실을 보기 전에 서로를 호명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곤 했다. 몇 년 만에 만난 아이들을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져 있었고, 엄마, 아빠들은 흰머리의 수와 허리둘레가 달라져 있었다. 딸이 없는 나를 ‘다빈이 엄마!’라고 부르면서 멈춰 세우는 분을 나는 모두가 들뜬 그 공간의 분위기와 반가운 마음에 얼싸 안고 말았다. 아이고 반가워요. 이렇게 건강하시니 좋네요. 나도 분명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우리에겐 과거의 친분이 분명 존재했다. 근데 누구더라… 나는 그녀를 끝내 이름 부르지 못했다. 그녀도 내가 다빈이의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었다. 우리 옆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들 정신없기에 우리도 정신을 놓고 다시 서로의 건강을 빌며 헤어졌다. 우리는 아이들의 고등학교 졸업식 때 또 만나지 않을까.

나의 남편도 재밌는 행사의 정점에 있었다. 세상에나, 대학교 동기를 만났다. 아까부터 교실 맞은편에 서 있던 사람이 자신의 20년 전 동기를 닮았다고 하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설마~’ 했다. 우리가 같은 동네 살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고? 우리의 아이들이 17살이 되어서야? 우리 가족은 10년째 여기 살고 있는데? 여기가 자신의 딸네 반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눈치챈 그가 교실을 떠나려 할 때 남편이 얼른 쫓아가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 남편은 그와 반갑게 인사했다. 한국 하늘은 아주 좁다.

반가움의 계속 이어졌다. 아이의 배구부 형 다섯이 꽃 한송이를 대표로 사 들고 방문 왔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나의 아들과 가까운 관계를 지속하는 형들이 친한 동생의 졸업을 축하해주러 왔다는 사실에 나는 울컥했다. 또 얼싸 안았다. 당황한 고등학생 무리가 어이쿠야 하며 나를 다독였다. 졸업식이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아줌마가 밥 사줄 게, 꼭 먹고 가. 배구부의 덩치 큰 아이들이 나의 아들에게 몰려가더니 멋쩍게 인사한다. 그리고는 꼭 헹가래를 해야 한다며 번쩍 들어 던졌다. 2층 높이까지 던져진 아이의 ‘으아아아~악!’하는 소리가 운동장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형들이 재밌어 죽겠다며 아이를 사뿐히 내려 놓았다.

나의 아이와 가족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확인하니 나는 활짝 웃고 아이는 표정이 없다. 꽃다발도, 손님도, 인사도. 훨씬 더 좋아하고 있는 쪽은 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아이는 몹시 바빴다. 선생님들께 편지도 드리러 갔다 오고, 여러 친구 무리들과 사진 찍는데도 열심히 뛰어다녔다. 우리가 사온 꽃다발은 아이 손에 있지 않고 나에게로 다시 남편에게로 옮겨졌다.

나와 남편은 그간 아이가 가장 가깝게 지냈던 방과 후 선생님을 찾아갔다. 아이에게 3년간 말로만 들었던 인물을 직접 뵈다니 셀럽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익히 전해 듣던 대로, 미간을 찡그리면 아이들이 바로 바짝 쫄 것 같은 기상을 가진 체육선생님께서 공손하고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우리는 아이를 열심히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하다고 진심으로 인사했다. 선생님은 오히려 아이가 성실하고 착해서 수업이 즐거웠다고 하셨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아이를 밝게 키우실 수 있으시냐는 예의 바르시고 예상하지 못했던 선생님의 질문에 나와 남편은 3초 간의 정적이 흘렀다. “아, 학업스트레스가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라고 남편이 대답했다. 껄껄껄 정답이라고 맞장구치며 내가 예리한 남편의 진단을 칭찬했다. 이보다 화기애애할 수 없는 시간이 그렇게 또 흘렀다.

‘이제 우리 정말 밥 먹으러 가는거야?!’ 참을성 있게 동생을 기다리며 추위에 몸을 떨던 배구부 형들이 이제 사진 좀 그만 찍고 식당 가자며 아이를 꼬시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에게 얼른 형들과 밥 먹으러 가라며 카드를 쥐어 주었다. 아이들이 편안하게 밥 먹으며 깔깔거리도록 나와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다. 라면을 끓였다. 따뜻한 국물이 학교 운동장에서 동동거리는 동안 얼었던 몸을 풀어주었다. 꿀맛이었다. 다 먹고 설거지 할 때 즈음 문자도 도착했다. 띵동. 무한리필고기집에서 결제되었다. 다들 밥은 먹었구나.

저녁이 다 되어서야 아이가 집에 돌아왔다.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준 착한 형들 이야기, 혼이 쏙 빠지도록 이리저리 밀려 친구들과 사진 찍었던 이야기, 자이로드롭보다 백배는 무서웠던 헹가래 경험담이 쏟아졌다. 엄마를 붙들고 끝없는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보따리 안에 별로 남은 것이 없을 즈음에는 이미 밤 11시였다. 반짝이던 하루가 지나갔다. 축하한다 아들아. 너의 보석 같은 중학생활을. 오늘 보니 지난 3년간 너의 모든 삶은 참 반짝반짝했더라. 엄마와 달리 너는 너의 삶을 살고 있어서 엄마가 참 기뻤다. 너의 오늘 졸업식과 나의 과거의 졸업식은 모양은 비슷한데, 그 안의 사람들은 참 다르더라. 우리가 멋진 삶을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각자에게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건 맞는 거 같구나. 올해도 응원한다. 가장 너 다운 사람이 되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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