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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가가일 Jul 03. 2023

우울로 인한 한시적 단축근무 그 두 달 후

일벌레 한국인은 '너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아직 힘들다

6월도 지나갔다.


6월도 "병가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한 달간 글을 쓰지 못할 만큼 바쁘게 다른 우선순위들을 해 내며 살았는데 그 우선순위 중에는 조깅, 요가, 정원 깻잎 관리 그리고 등산으로 가득했던 휴가가 있었다.


은퇴 후 노년시간을 보내는 사람인 냥 평일 대낮에 열심히 잡초를 뽑고 깻잎에 물을 주고 동네를 뛰고 요가학원에 갔다.


이 행위들이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 것보다 내가 중요하게 다가왔다.


나는 아직 우울증 약을 먹고 있고 50프로의 월급을 받으며 50프로의 업무시간 동안 일을 하고 있기에 내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 일보다 지금 당장으로서는 더 중요하다.


가끔 이 사실을 잊을 때도 있었다.


업무 중 몰입상태일 때에는 서너 시간 동안 휴식 없이 일을 하고 녹초가 된 후에야 난 한 시간 일했으면 꼭 5분은 쉬어야 하는 상태의 공식적으로 아픈(?)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주곤 했다.


일 중독이자 일잘러인 (나보다 나이가 어린 93년생) 우리 팀 팀장 (그렇다 독일은 철저한 능력제이다.)이 모처럼 이 주간 휴가를 떠난 동안 내가 해보지 않았던 주제로 사장님 디렉트 중요한 업무가 갑자기 주어진 경우가 있었는데 이 때는 한 달 반 만에 처음으로 숨쉬기가 어려울 만큼 당황스러웠고 힘들었다.


단축근무를 하는 나는 목요일 오후 1시면 주말이 시작된다. 한 주를 잘 마무리 지었다고 한숨 돌리고 있었던 지지난 목요일 12시 50분쯤 사장직속 전략부서에서 전화가 왔다. 독일어로 유선상 다다다다 5분 만에 받은 과제를 영어메일로 나보다 한참 높은 세일즈 담당자들에게 짧은 기한을 두고 요청했어야 했는데 갑자기 동료와 해결방향을 논의를 하던 중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내 목소리는 떨리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적이 흐르고 나는 겨우

"나 지금 심장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으니 내가 한 한 시간 뒤에 다시 연락 줄게"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고도 심장은 계속 빠르게 뛰고 눈물이 계속 흐르는데도 나는 미련하게도 계속 모니터 앞에 앉아 메일을 어떤 식으로 어느 범위의 사람들에게까지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다행히 홈오피스를 하는 날이었고 프리랜서인 남편은 집의 다른 층에서 일을 하다 마침 패닉에 빠진 나를 발견하고는 발코니 의자에 데려다주며 딱 10분만, 정말 딱 10분만 타이머 맞춰놓고 눈을 감고 호흡해 보라고 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절대 쉬지 않았을 미련한 나.


조금 쉬고 휴대폰 타이머를 보니 아직 3분이 남았다.


뭐가 그리 급하니?

오늘 내로 해야 하는 일은 맞지만 촉각을 다투는 일은 아닌 것을... 뭐가 그렇게 초조하니?


3분을 억지로 더 쉬고 찬찬히 아주 작은 접근을 하나 둘 하며 중간중간 동료들에게 도움도 구하며 3시간에 걸쳐 일을 일단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주말로 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큰일이 아니었는데 그 순간에 스트레스 정도는 최고조가 되어 패닉이 왔었다.

조금만 자진해서 한 박자 숨 돌리고 쉬고 진행했더라면 울 정도의 일은 아니었는데.


메일 대상과 내용이 그리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텐데.


다른 사람들도 ㅈ같이 일 많이 하는데 나는 왜 늘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일로 인한 스트레스로 숨도 잘 안 쉬어지고 눈물이 흐르는 경험을 해야만 하는 걸까?


그로부터 2주가 지난 오늘.

취합하고 수정한 프레젠테이션 샘플을 사장직속에게 전송하고 나는 칼퇴를 했다.

조금 모자라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일단 대충 볼만하니 전송했다.


입사 2년 차가 50프로 단축근무를 반년간 한다는 것은 일단 당분간 커리어 욕심은 없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문제였고 그로 인해 일을 줄이기로 약속한 반년 중 이제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이다.


꼭 필요한 일만 하자, 잘 하진 못하더라도 못 하지만 말자, 데드라인만은 꼭 지키자, "Done is better than perfect" 완벽주의 말고 완료주의를 택하자 고 스스로에게 되뇌면서도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굳이 하지도 않아도 되는 작은 일까지 보고해서 또 일을 키우고, 일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욕심에 스스로를 아직도 가끔 몰아붙이는 나는 지금 참 혼란스럽다.


단축근무를 하는 한 커리어는 당분간 어차피 없어.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니기만 하는 걸로 나는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야.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식으로 열심히만 살아온 나는 지금 독일에서 너무 열심히 하지 않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너무 열심히 하고자 해서 아파진 나이기에.


일단 내가 아프지 않은 것이 우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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