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축근무 중인데 링크드인을 자꾸보고 일을 키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근무, 월-수는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목요일은 12시 45분까지. 의무 쉬는 시간 15분 포함. 월급은 풀타임의 50%.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내 정규직 계약서에 한 장짜리 한시적 추가 업무시간과 조건을 다룬 종이 한 장을 끼워 넣은 지 두 달 반.
덕분에 컨디션은 점점 좋아지고 있고 열의에 찬 로봇동료가 중요하고 어려운 업무 대부분은 기꺼이 들고 갔다.
쉬는 시간 제외하면 하루 4시간 정도 힘들게 집중해서 여러 일들을 끝내는데 지난 이 주간 내가 수 차례 느꼈던 감정이 있다.
아 이거 궁금하다, 아 이거는 위에서 좋아하겠는데? 아 이거는 우리가 못 하고 있는 건데 와 이걸 몇 년 동안 안 챙겼다고 회사 엉망이네
자꾸 떠오른다. 생각들이 그리고 일 거리가...
앞으로 최소 한 달간은 바쁘고 중요한 일정들이 칼렌더에 가득하고 9월 10월도 그리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11월부터는 다시 100%인데... 내 정신과 몸이 그때의 100% 근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일단 지금은 일보다 잘 쉬는 게 가장 중요한데.. 커리어는 어차피 뒷전으로 밀린 상태인데.. 자꾸 컨디션이 좋아질수록 일을 벌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멈추거나 정말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 또는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일만 추가적으로 진행한다.
그래도 헷갈린다.
나는 지금 커리어 상에서 어디에 서 있는 거고 어디로 가는 중일까?
일을 효율적으로 잘 해낸다고 한들 단축근무와 그로 인한 "쟤는 애도 없는데 일 100% 안 하는 특이한 인간"이라는 이미지 혹은 뒷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저 친구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서 컨디션 기복이 큰 친구"라는 낙인이.. 상쇄될까?
월급을 반틈만 받는 와중에 추가근무는 안 하지만 (추가근무는 절대 절대 안 한다. 불가피하게 했을 경우 1분까지 시스템에 올리고 조금 조용한 주에는 바로바로 차감해서 일찍 퇴근하고 있다. 더 쌓이면 연말에 무조건 휴가에 붙여서 며칠 더 쉬어버릴 예정.) 일을 예상보다 빨리 끝냈거나 어쩌다 조용한 날에는 그냥 좀 더 놀아도 되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자꾸 일관련 된 무언가를 기어코 찾아서 공부하고 물어보고 to-do 리스트에라도 적어놓는 나를 보며... 월급도 적고 커리어비전도 당장은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나는 이러는 걸까 혼란스럽다.
이게 그 매슬로 욕구피라미드에서 말하는 자기실현의 문제일까?
내가 느끼는 성취감, 성취를 하지 못했더라도 탐색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의 문제일까?
그러기엔... 일이 너무 재미가 없는데?
이 혼란스러움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 내린 결론은 그냥 내가 느끼고 하고 있는 대로 계속하자. 단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우울증의 악화, 불필요한 야근생성 등).
지금 시각 독일 목요일 오후 14시 55분. 주말이라 감사하다. 단축근무 좋다. 무기력은 아직 꽤 있지만 우울증은 확실히 많이 좋아졌다. 살맛이 다시 난다.
살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