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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간이 MeganLee Mar 18. 2021

생일이 복잡한 여자

서른두살의 연어 카나페


나는 생일이 복잡한 사람이다. 


태어나기는 3월 17일에 태어났지만 음력 생일로 등록이 되어서, 여권을 보면 2월 10일로 표기되어 있다. 이 2월 10일 음력이라는 것은 매년 바뀌기 때문에 음력-양력 생일 변환을 해 보아야만 그 해 내 생일을 언제 축하할지 알 수 있다. 가족들은 이 수고를 자처하기 때문에 오는 3월 22일에 생일 축하를 해줄 예정이다. 


내가 살고 있는 유럽에서는 아무도 음력, 즉 lunar calendar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이 태반이다. 그러므로 공식적으로 표기된 2월 10일에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페이스북에 등록되어 생일임을 알려주는 날이 이 날이기 때문에, 친하게 지냈든 얼굴만 알고 지냈든 간에 이 날 가장 축하를 많이 받는다.


그런데 가끔 별자리에 목매는 친구들이 있다. 2월 10일은 물병자리다. 물병자리는 주로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와 이상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으로 특징지어지는데, 나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그러니까 네가 그 멀리 한국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온 거야, 너처럼 여행 좋아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딨니?" 사실 좋은 말은 맞는데, 나는 물병자리가 아니다. (또 타인의 시선에 아주 얽매여 산다.) 내 진짜 별자리는 창의성, 공감능력, 표현력이 풍부하고 감정적이라고 알려진 물고기자리다. 별자리를 믿지 않는 데다가, 사실 모든 별자리에는 내가 꼭 갖고 싶은 좋은 특징이 두어 개 들어가 있어서 나는 이 별자리도, 저 별자리도 다 되고 싶은 사람이다. 아무튼 이런 경우 3월 17일로 정정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내 생일을 2월로 알고 있었던 친구들에게는 이 모든 사정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게 된다. 그러면 친구들은 뭐가 그렇게 복잡해, 하는 표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복잡한 내 생일을 좋아한다. 올해 2월 생일에는 집에서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폭설이 내린 바람에 한 블록 거리에 사는 친구와 집에서 와인 한 잔 하는 게 다였다. 이게 내 유일한 생일이었다면 조금 억울했겠지만, 3월에 축하하면 되니까 괜찮았다. 이렇게 백업 생일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은 암스테르담은 여전히 손님 초대 인원수 제한에 저녁 9시 통금도 있어서, 세 여자가 대낮부터 모였다. 특별한 날이라 모엣 샹동을 사 두었는데, 여기에 어울리는 핑거푸드 중 내가 자주 만들고 좋아하는 것은 바로 연어 카나페다.  

 


사워크림과 크림치즈를 섞고 레몬즙을 뿌린다. 후추를 갈아 넣고 마른 딜이 있다면 소량 넣는다. 바삭한 크래커에 완성한 크림을 슬쩍 바르고 훈제 연어를 대충 말아 얹는다. 포인트는 '대충'이다. 너무 정성을 다하면 촌스럽다. 미리 씻어 키친 페이퍼에 말려둔 싱싱한 딜을 손끝으로 똑 따서 얹으면 카나페 완성이다. 


바삭함과 연어의 짭짤함, 크림의 부드러움, 딜의 향긋함이 입 안에서 맛있는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샴페인 한 모금. 이렇게 서른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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