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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Feb 15. 2018

이방인들의 사교 클럽 (1)

완도 랭귀지 익스체인지 모임 이야기

이방인(stranger)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지만, 이번 글에서는 조금 더 폭넓게 고향이 아닌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다른 지역으로부터 유입된 사람들을 일컫도록 하겠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도 지난 10년 동안 이방인이었습니다. 대학 진학과 함께 고향을 떠나 서울에 입성했으니까요. 서울에 전입신고가 되어 있어서 '나는 서울 사람이야!'라 여겼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서울에 연고가 없어 타인의 집에 세 들어 살아야 했던 것부터, 그들의 문화와 생각에 적응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인 일, 결국 튕겨 나오기까지 서울에서 지내며 여러 '진입 장벽'을 실감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시 겪게 될 것을 알면서도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요.


2년 남짓의 시간이 남아 있는 완도에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방인들에게 사교 클럽이 필요한가?


이곳 완도에도 다양한 출신과 성분을 가진 이방인들이 있습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배에 오르거나 공장에서 땀 흘리는 외국인 근로자들, 도시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귀농 혹은 귀어를 선택한 이들, 초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원어민 교사들부터 디지털 노마드 가이드북이라는 책을 쓰기 위해 먼저 그렇게 살아보기로 마음먹은 저를 비롯한 여행자들까지.


이들 또한 앞서 제가 서울에서 겪었던 것처럼 다양한 어려움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관계의 외로움입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일만도 힘든데,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이 더 힘들어질 테니까요. 편하게 연락해서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지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더 크고, 때로는 타향살이의 종료를 고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 여행을 위해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면 동호회나 커뮤니티를 찾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여러 노마드 베이스캠프에 밋업(meet-up)이라는 이름의 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일과 여행을 병행하며 살아가는 노마드들에게 사람을 사귀고 정보를 얻는 일은 라이프 스타일의 지속, 즉 '생존'과 관련된 일이니까요.


이제 소개할 완도 랭귀지 익스체인지 모임은 디지털 노마드로만 멤버가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출신과 성분이 다양한 이방인과 현지인들이 매주 모여 교류하는 사교의 장입니다.


완도 랭귀지 익스체인지 모임(가죽 자켓이 접니다.)


완도 랭귀지 익스체인지 모임


이 언어 교환 모임은 완도에 근무하고 있는 원어민 교사들이 현지 친구들을 사귀고 주변 여러 곳을 여행하며 타국에서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현재는 매주 10~15명이 참가하는 모임으로 발전해 있는데요. 처음에 랭귀지 익스체인지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와! 완도에 이런 모임이?'하고 놀랐지만, 이곳에서 지내며 몸소 겪고 상황을 알고 나니 놀라울 일이 아니었습니다.


완도는 지역 특성상 20~30대의 비율이 적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이곳에서 나왔더라도 교육 환경이 더 좋은 외부로(완도에는 대학이나 대기업이 없습니다.) 유학을 떠나는 일이 잦고, 그들이 농, 수산업이 주요 먹거리인 완도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 반복되면서 현지 젊은이들의 유출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소위 '젊은이들'이 즐길거리나 커뮤니티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젊은 이방인들(이곳 출신이지만 오랜 시간 고향을 떠나 살다가 돌아온 경우도 포함)에게는 상황이 더 좋지 못합니다. 때문에 완도의 젊은이들은 주말마다 왕복 이동에 드는 시간을 감수하면서 광주나 목포와 같은 주변 대도시로 떠나곤 합니다. 이런 환경들로 말미암아 랭귀지 익스체인지가 완도의 외국인들과 젊은이들의 가려운 부분을 그나마 채워줄 수 있는 커뮤니티였고 또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랭귀지 익스체인지이니, 모임에 오려면 반드시 영어를 잘해야만 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기본적인 틀과 구성은 원어민 교사들이 근무(또는 한국 생활)하는 것에 필요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인들은 그들로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이지만 그에 앞서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편하게 만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진입 장벽을 낮춘 덕에 10대 학생부터 50대 주부까지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임이 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선해 나가야 할 점이 많습니다. 영어와 외국인의 존재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쉽사리 모임에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이 이방인 커뮤니티가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온 젊은 이방인이자, 디지털 노마드 가이드북이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는 제가 어떤 책임감을 느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저 스스로를 위해서 더 다양한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부지런히 모임에 참석해 이방인들의 생각을 듣고 이야기 나누며 이곳에 더 다양하고 새로운 사교 모임이, 그리고 그를 가능케하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목요 위클리 매거진 '디지털 노마드 가이드북'의 다음화 '이방인들의 사교 클럽 (2)'에서는 약 100일 동안 직접 살고 겪으며 파악한 베이스캠프 '완도'의 특성과 제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공유할 예정입니다. 디지털 노마드인지 아닌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새로운 베이스캠프에서 '관계와 여가'에 대한 막막함을 느끼고 있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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