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일기 (5)

동업 108일 차

by 이종인


#1

요즘 살롱에 오는 손님들이 부쩍 외로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입버릇처럼 외롭다는 말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명이 한꺼번에 같은 감정을 호소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장마가 한창인 걸 보니 봄이나 가을처럼 계절을 타는 건 아닐 테고, 주변에서 새로운 커플이 생겨 상대적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아닐 텐데. 무엇이 그들을 외롭게 만들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도 외로워졌다. 외롭지 않으려고 그리고 외롭지 않게 하려고 만든 공간인데, 모두가 외롭다고 말하니 그럴 수밖에.


#2

오늘 아침에는 오랜만에 피아노 학원에 다녀왔다. 라라랜드의 라이언 고슬링을 따라잡고자 야심 차게 등록했는데 최근 이런저런 일이 겹쳐 이 주 만에 출석한 것이다. 역시 악기는 요행이 없었다. 부족한 연습량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땀만 뻘뻘. 지난밤늦게까지 마신 술까지 좋지 않은 컨디션에 한몫을 했다.


머리카락 한 올을 이마 앞으로 아무렇게나 늘어 뜨리고 멋들어지게 미아와 세바스티안의 테마를 연주하고 싶은데, 나의 게으름에 채찍질을 해야겠다.


#3

오늘은 기분 나쁜 일이 두 가지나 있었다. 모두가 타인의 무례함으로 비롯된 것이었는데, 자세히 설명하자면 입이 너무나 아프고 기껏 덜어낸 스트레스가 다시 생길 것 같아 생략하겠다.


#4

요즘 동업자 K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것 같다. 마음을 쏟을 곳이 생겨서 그런지, 아니면 서울에서 어머니가 내려오시면서 생활에 안정감이 생겨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잘 된 일이다. 이와는 반대로 살롱의 매출은 우리가 기대하던 만큼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계좌에 구멍이 나서 새는 것이 아니라면 쌓이고 모였어야 할 돈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주제넘고 오만한 이야기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매출은 나보다 K에게 더 예민한 문제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든다. 나는 돈을 만들 수 있는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고, 부양할 가족도 당장은 없으며 아직 커다란 소비 계획도 없다. 그에 반해 K에게는 살롱 매출이 수입의 전부다. 둘로 나눈 파이가 커지려면 내 몫을 떼어줄 것이 아니라면 전체 파이의 크기를 늘려야만 한다.


그에게는 어떤 고민이 있고, 어떤 계획이 있을까?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가장 우려했던 것은 장사가 '모자란 듯 적당히'되는 것이었다. 아주 잘되는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차라리 장사가 아주 안되면 폐업하거나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볼 텐데 이렇게 '모자란 듯 적당히'되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우리는 잘 되는 쪽으로 수렴하도록 방향을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나가겠지만, 어찌 일이 마음먹은 대로만 진행되랴.


이제 겨우 창업(그리고 동업) 100일을 넘겼는데 10000일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밤. 어지러운 머릿속을 야식으로 달래 보려 했으나 나는 이곳이 11시면 모든 음식점과 상점이 문을 닫는 완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늘 가던 편의점에 새로운 것이 없는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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