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 87일 차
아직 영업을 시작한 지 채 100일도 되지 않았지만
가히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하루가 얼마 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세 가지 사건들이 단 6시간 만에 연달아 벌어졌는데,
1.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 승합차가 가게로 돌진해 정문을 박살 냈고
2. 술에 만취한 부랑자가 들어오더니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3. 이웃이랍시고 찾아온 손님이 기약 없는 외상을 하고 가는 바람에 기분을 잡쳤다.
<사건 1의 개요>
차주는 같은 건물 2층에 살며 교회도 운영하는 목사로, 자동차의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고 기어도 주차가 아닌 중립에 놓고 내린 것이 화근이었다. 아무런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천만다행. 차가 밀고 들어오면서 가게 앞에 세워두었던 동업자 K의 자전거가 에어컨 실외기에 박혀 망가졌고, 입구의 철제 정문이 휘고 창유리가 부서졌다.
대물 보험으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작은(?) 사고. 하지만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원만히 해결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사고 발생 당시 제대로 사과를 받지 못한 것도 열이 받는다. 잘못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저질렀는데, 우리가 전부 보상과 수리에 대해 알아봐야 하고, 영업 일정을 조절하며 스트레스를 떠안아야 한다니. 보험이 무슨 깡패인가?
<사건 2의 개요>
사건 1로 인해 보험사 직원이 다녀간 후, 예약 손님을 응대하고 있었는데 웬 취객이 들어와 난동을 부렸다. 평소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는데 왜,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린 건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그의 동선은 상당히 치밀했다. 이곳에 처음 온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집기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뻔히 보이는 바 의자가 아닌 책을 올려 둔 스툴을 꺼내 앉았다는 것이 방증.
욕설과 신고만은 피하자는 생각에서 잘 타일러 보내고 가게 정문을 잠가버렸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잠시 후 다시 방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이 잠겨 있어 그는 들어올 수 없었다. 잠긴 문에 놀란 그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아까 본 취객의 흐리멍덩한 눈빛이 아니었다. 그는 누구였고, 왜 와서 난동을 피웠을까? 정말 술에 취해서 온 것일까?
<사건 3의 개요>
완도살롱 맞은편 건물의 2층에 산다는 남자가 찾아왔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불이 켜져 있어 들렀다고. 평소 한 번은 꼭 와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와서 미안하다며 사족을 붙인다. 첫 두 잔은 현금으로 미리 내고 마시길래 그를 완벽하게 믿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첫 두 잔을 제외한 나머지 3잔을 외상으로 마셨다.
그는 집이 코앞이니 어디 도망갈 일도 없고, 외상값도 나중에 와서 주겠다 했다. 응? 애써 수상함을 어필하는 건 뭐지? 그럼 집이 코앞이니 지금 들어가서 돈을 가지고 오면 되지 않겠느냐 물었더니 지금은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단다. 자기는 신용카드도 없고, 직업도 없다나. 그렇게 말하고는 나중에 벌어서 갚겠다고 하는 그의 말에 하루 동안 쌓아온 분노가 폭발했다. 이쯤 되면 어른이고 뭐고 동네 이웃이고 나발이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차마 글로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다음 주까지 안 가져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으름장을 놨다.
채무인이 살롱 바로 앞에 살고 있으니 아마도 그전에 집으로 찾아가서 담판을 짓겠지. 이럴 때는 내 키가 190cm인 것과 꽃미남처럼 잘생기지 않은 얼굴이 자랑스럽다.
이 모든 일이 하루, 아니 여섯 시간만에 벌어졌다니 충격적이다.
사건 1 덕분에 나와 K는 아직도 보험사를 비롯 통신사와 보안회사, 에어컨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돌려 일정과 방법을 조율하고 있고, 사건 2 덕분에 매일 밤을 불안과 의심으로 보내고 있다. 사건 3을 통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무조건 선불 구매'라는 교전 수칙을 영업 방침에 추가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나 혼자 이 꼴을 모두 겪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두 명이 동시에 이 일을 겪었으면 스트레스도 두 배가 되었겠지. 그래도 혼자가 아닌 둘이 이 난관을 헤쳐갈 수 있어 다행이다. 언젠가 벌어졌어야 할 일들이 조금 일찍, 그리고 한 번에 벌어진 거라고, 사고가 아니라 더 큰 악운을 막아준 액땜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
일요일이면 사건 1을 통해 박살 났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상처입은 살롱을 생각하니 하루가 길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