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축구하자

왜 이겨야 하는가?

이번에도 당연한 이야기는 적지 않았다.

by 이종인

13. 왜 이겨야 하는가? : 단지 공을 차기 위해 모인다면 그것은 팀이 아니다.


TV에서 중계하는 축구경기를 보다 보면 경기를 하기에 앞서 열 한명의 팀원들이 동그랗게 모여 어깨를 두르고 파이팅을 외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축구를 해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과연 그 원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가고 무슨 멘트로 파이팅을 독려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축구를 즐기며 수도 없이 원을 만들어 소리를 질러온 이들조차도 왜 모이는 지 무엇을 위해 파이팅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저마다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행동한다. 목적과 목표가 없이 행동한다면 그것은 단지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할 것이며, 소중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체력을 낭비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토익 책과 씨름하고 있는 학생에게는 ‘토익 990점 획득’이라는 목표가 있을 것이고, 짐에서 자기 몸보다도 무거운 바벨을 들며 인상을 찌푸리는 이에게는 ‘건강’이라는 목적과 ‘아름다운 육체를 갖는다.’라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축구를 하면서 가져야 할 목적과 목표는 무엇일까?


앞서 사회인축구를 즐기는 진정한 프로페셔널 아마추어의 자세가, 즐거움이라고 했지만 이는 어느 때에나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승리를 추구 한다.’ 라는 전제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그리고 라커룸에서 감독이 해야 할 멘탈 게임 중 하나는 팀원들에게 바로 이 위닝 멘탈리티를 주입하는 것이다. 박지성은 7년간의 맨체스터 생활을 마치고 QPR로 이적한 12/13시즌에서 팀이 부진하자, QPR의 가장 큰 문제점을 스쿼드도, 구단주도, 감독도 아닌 선수 스스로의 위닝 멘탈리티 결여를 꼽았다.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하나의 목표로 나아가게 하는 목적의식 말이다. 우리가 상대에게 좋은 게임을 펼쳐 승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명예, 기쁨(즐거움), 만족감과 같은 것들을 상기시키고 개개인의 승리가 아닌 팀의 승리를 위해 뛸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어느 스포츠를 막론하고 감독이 해야 할 역할 중에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일이다.


필자는 지난 2년간 사회인축구팀 감독으로 ‘승리=돈’ 이라는 당근 없이 팀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왜 이겨야 하고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에 대해 수 없이 생각해보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기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 지지 않는 경기를 하자


우리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 즉 벽을 만났을 때 성장한다. 하지만 그 성장은 반드시 그 벽을 오르고 넘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인축구를 즐기다보면 조직력과 개인능력 그리고 팀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우리보다 한수 위인 팀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한마디로 ‘강팀’이다. 이런 팀들과 게임을 치른 후에는 라커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경기내용이 잘 풀리지 않아 상대선수와 공을 따라다니기에 바빴던 선수들은 한껏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고 대화조차도 적어지기 마련. 이런 경우에 짙게 드리워지는 것이 패배의식과 안티 위닝 멘탈리티가 되겠다. 일각에서는 그래도 할 수 있다며 전의를 불태우는 이들도 있겠지만 가쁜 숨을 헐떡이는 팀원들에게 올곧이 전달되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 팀원들에게 주지시켜야 할 목표는 바로 ‘이기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 지지 않는 경기를 하자!’이다. 일단 상대가 우리보다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저자세로 경기에 임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키보다 높은 파도를 온몸으로 버텨내기란 쉽지 않다. 자세를 낮추고 파도의 흐름을 차근차근 살피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파고들 틈이 보인다는 서퍼(Surfer)들의 말처럼 우선 수비에 집중하며 상대의 움직임과 스타일을 분석하는 것으로 경기를 시작한다면 ‘해야 할 것’은 분명해진다. 이럴 때를 위해서 평소에 가다듬어야 할 것이 바로 선 수비 후 역습전술이다. 상대를 우리진영 깊숙이 유인해 끈질긴 경기를 이끌어 간다면 전방에 위치한 우리의 공격수에게 공을 전달할 기회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패배하지 않는 경기가 팀에 엄청난 동기를 제공할 것이다.


앞서고 있다면 더욱 거세게 몰아쳐라


사회인축구계에 강팀이 있다면 우리보다 실력이 한 수 아래인 약팀 또한 존재한다. 이들과 게임을 치른 후에는 라커룸의 분위기도 한껏 밝아지고 감독 또한 로테이션을 더욱 재량껏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동기와 목적의식이 결여된 경기를 치른다면 팀은 강팀을 만나 패배하는 것보다 더욱 커다란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보통 하루에 대여섯 경기를 치르는 사회인축구리그에서 분위기가 다운되는 것은 상당한 문제다.


12/13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비결은 약팀을 만나 어이없게 승점을 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13/14시즌 리그 선두권 팀들과의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하고도 약팀과의 경기에서 승점을 챙기지 못한 첼시는 우승경쟁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4강전 브라질과 독일의 경기를 보자. 독일은 전반에만 다섯 골을 집어넣으며 승리를 확정짓는 듯 했다. 하지만 후반에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더욱 거세게 몰아쳐 브라질에게 1:7이라는 굴욕적 패배를 선사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독일이 7골을 넣은 장면이 아니라 후반 45분 브라질 오스카에게 득점을 허용한 독일의 수비수들에게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가 호통을 치는 장면이다. 진정한 강팀은 상대의 약점을, 약해진 상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확실하게 마무리 짓고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는 그 순간까지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팀이다. 사실 사회인축구에서는 너무 많은 점수차이로 이기는 것은 오히려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그에 앞서 이길 수 있는 팀에게 확실한 승리를 거두는 것은 그 날의 남은 경기와 앞으로의 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25분에 전력을 다해 상대의 덜미를 물지 않으면 도리어 남은 50분에서 덜미를 잡힐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조직에게 승리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성과이자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그것에 집착해야 한다. 프로선수들은 경기에 앞서 어깨를 둘러 만든 원 안에서 그들이 왜 이겨야 하고 어떻게 상대에 맞설 것인지 반드시 상기하고 나서야 경기에 들어간다. 이것은 프로선수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며 꼭 원을 만들어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공을 차기 위해, 즐거움을 위해 팀을 만들고 피치위에 모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더욱 재밌게 그리고 오래 그 즐거움을 향유하려면 승리라는 당근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왜 이겨야 하는가라 물을 것이 아니라 승리는 모든 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종인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출간작가 프로필
구독자 2,716
매거진의 이전글'왜' 페어 플레이를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