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살롱 오픈 1050일 차
바텐더의 일은 서점원과 정반대입니다. 서점원이 글자로 기록된 이야기를 소개하고 파는 것이라면 바텐더는 사람들의 말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수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완도살롱을 운영하려면 두 가지 일을 모두 잘 해내야 합니다. 오늘은 이야기 수집가로서 보낸 하루를 적습니다.
지난 2020년에 수집한 최고의 이야기는 500일 넘게 만났지만 아직 서로의 나이를 모르는 커플의 연애스토리였습니다. 두 사람은 늦은 봄에 완도살롱을 찾아온 손님으로, 훗날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각오(!?)를 남기고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벌써 정해둔 책의 제목도 알려주었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우리는 오래 만나기 위해 나이를 모르기로 했습니다'가 제목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어느 서점에서 이런 제목이 붙은 책을 발견하신다면 저에게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2021년 수집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완도살롱을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도 커플의 이야기입니다. 범상치 않은 빛깔을 가진 머스탱에서 내린 남녀는 자신들을 '노마드'라 소개했습니다. 한때 브런치와 다음에서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브런치북 디지털 노마드 가이드북을 연재하기도 했던 저는 스스로를 노마드로 부르는 두 분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지 너무나 궁금해졌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이집트의 한 국제 어학원. 한쪽은 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하다가 어학연수를 떠났고, 다른 한쪽은 미래 투자의 일환으로 아랍어를 공부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을 만나기 쉽지 않은 도시에서 같은 어학원을 다녔고, 도시의 값비싼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 함께 택시 카풀을 하며 자연스레 가까워진 두 사람은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가족인 동시에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원하는 곳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멋지게 사는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문득 몇 년 전 이 섬에 도착한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바로 언젠가 발리, 치앙마이, 그리고 유럽으로 떠날 것이며 여기 완도는 베이스캠프에 불과한 곳이라며 호언하던 30대 초반의 접니다. 오늘 방문한 '이집트 커플'의 사는 이야기가 꽤나 매력적으로 들렸던 것도 어쩌면 과거의 제가 그리던 삶의 모습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스스로 만든 공간에 갇혀 다른 이야기 수집가들의 가슴을 뛰게 할 만한 이야기를 많이 만들지 못한 제 모습이 애석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2020년의 어느 봄날, 그리고 오늘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를 수집하는 날에는 이 일이 참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제와 오늘은 우주 곳곳의 이야기들을 모았지만 내일은 다른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히치하이커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