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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Jun 04. 2024

멀미의 시대

서울을 떠나 목포로 향하는 열차 안. 꼬리를 바라보며 앉은 까닭에 앞으로 두어 시간은 더 멀어지는 도시를 실감해야 한다. 옆 좌석에 아름다운 이가 앉은 것과는 별개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속이 울렁이는 까닭 또한 그 때문이리라.


멀미는 받아들이는 정보와 실제 감각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가 망망대해에서의 뱃멀미다. 파도로 인해 몸은 상하좌우로 요동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수평선밖에는 보이지 않아 몸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 것이다. 오랫동안 배를 탔던 사람이 땅에 발을 내디딜 때 느끼는 육지멀미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는 굳건하고 평온한 땅의 질감이 뱃사람들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기현상이다.


이처럼 고전적인 멀미는 대부분 정보가 감각을 따라가지 못해 발생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반대 경우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감각이 정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삼차원 게임을 할 때와 대화면 영화관의 앞 좌석에 앉았을 때 경험하는 어지럼증이 대표적인데, 미래 인류는 이와 같은 종류의 멀미를 더욱 자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몇 년 동안, 섬을 떠나, 서울에 착륙할 때마다 내가 실감했던 동요 또한 멀미의 일종으로 추측된다. 다섯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센트럴시티에 도착하면, 단 몇 분 만에 몇 달 동안 본 것보다 더 많은 숫자의 사람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힘을 주지 않으면 넘실거리는 사람의 파도에 휩쓸리고 말 거라는 공포도 농도 짙은 향수와 함께 밀려왔다.


이와 같은 두려움은 도시에 어둠이 내리고 거리가 한산해진 후에야 겨우 잦아들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 눈과 입을 다물고 소란의 가운데에서 찾아올 적요를 기다렸다.


멀미를 극복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거나 눈을 감는 것으로 시각 정보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감각과의 괴리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폐가 존재하는데, 피곤하거나 잠이 오는 것 또한 멀미의 한 증상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마침내 떠나기를 각오하고 결심했다는 어느 섬사람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굳게 쥐고 있던 무언가를 놓아버리고, 현실을 순순히 인정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가 드디어 눈을 감아본 건 아닌가 생각되었다. 언젠가 이야기했듯, 눈을 감아야만 보이고 떠오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때 나의 상사였던 강연가는 언젠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몸과 마음이 한 곳에 있어야 편안함을 느끼는데 대부분은 그러지 못하다. 현대인들의 불행도 대부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오늘, 그때의 그 만큼 나이를 먹은 나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더 덧붙인다. 몸이 마음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있는 곳으로 우리의 육체를 가져다 놓아야 한다고. 이 게임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순서의 방정식을 푸는 문제라고.


한편,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소설 <싯다르타>에서 사문 싯다르타의 입을 빌려 ’내가 되는 일‘의 어려움과 숭고함을 언급한 바 있다. 세존이라 불리는 고타마를 만났음에도 그를 따르지 않고 오직 자신의 경험과 마음에서 길을 찾으리라 결심한 싯다르타를 통해 우리가 직면하고 줄여나가야 할 괴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다.


다시 오늘, 지금, 나는 각오한다. 정보와 감각 중 하나를 제한하는 것으로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멈출 수 있다면 나는 몇 번이고 눈감는 일을 택하리라고. 몇 번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면의 감각과 소리에 눈을 뜨게 된다면 굳건한 육지에도 파도가 넘실거리고 고요해 마지않던 수평선도 춤을 출 것이라고.


’곧 목포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열차에 울려 퍼진다. 울렁이던 마음은 어느새 잔잔하게 꼬리 아닌 머리를 향하고 있다. 이 열차에서 육지로 내딛는 걸음은 또 다를 것이라 다짐하며 잠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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