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회인축구판 칼레의 기적을 꿈꾼다.'
23. 축구는 기적이다. : 나는 사회인축구판 칼레의 기적을 꿈꾼다.
축구는 미담(美談 : 아름다운 이야기)을 참 많이 낳는 스포츠다. 슈퍼스타들의 선행과 기부는 물론, 축구를 보며 질병이 치유되었다거나, 사제(감독과 선수)지간의 끈끈함을 다룬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축구팬인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할 정도.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감동적이고 벅차오르는 것은 무명의 선수들로 구성된 하위리그 팀들이 FA컵에서 각나라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한 프로팀을 연이어 꺾고 토너먼트의 상위에 오르는 감동적인 스토리다.
칼레의 기적
칼레의 기적은 가장 유명하고 극적인 이야기 중 하나다. 칼레는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인구 8만의 해안도시로 지역을 연고로 하고 있는 '칼레'축구팀은 여지껏 1부리그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약체클럽이다. 그러던 칼레가 99/00시즌 쿠프 드 프랑스(프랑스 FA컵)에서 16강에 이름을 올랐다. 사실 16강 정도는 운이 좋다거나, 아니면 운이 좋다거나, 뭐 운이 좋을 경우에 하위리그팀들이 종종 올라오는 무대였고 16강 상대가 당시 리그앙(프랑스 1부리그)에 속해있던 AS 캉 이었기에 칼레의 돌풍은 여기까지라고 보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공은 둥글고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승부차기까지 가는 긴 경기 끝에 칼레는 캉을 누르고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칼레의 승리는 르퀴프(Lequipe)와 같은 프랑스 유명지 1면을 장식하기도 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칼레의 8강 상대가 또 다른 1부리그 팀인 스트라스부르로 정해지자 칼레의 돌풍은 여기까지라고 보는 시선 또한 많아졌다. 그러나 칼레는 8강에서 정규시간 90분 안에 2:1로 스트라스부르를 누르고 4강에 진출하고 말았다. 프랑스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돌풍은 거센 태풍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얼마 뒤 열린 4강전. 칼레의 준결승 상대는 축구팬이라면, 또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들어봤을 지롱댕 보르도로 정해졌다. 칼레와 보르도의 준결승 경기는 팽팽했다. 90분 내내 치열하게 맞붙은 두 팀은 연장에 가서야 승부를 가릴 수 있었는데, 연장 전반에 두 골, 후반에 한 골을 묶은 칼레가 3:1로 승리하며 쿠프 드 프랑스 결승에 진출했다. 칼레 전역은 벌써부터 우승이라도 한 듯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연속으로 세 팀의 1부 리그 클럽을 물리치고 오른 결승, 모두가 이 기적의 끝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해 했고 FIFA도 군소클럽 칼레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토너먼트의 반대쪽에서는 1부 클럽 낭트가 차례로 강팀들을 꺾고 결승에 올라와 있었다. 결승전이 열리는 2000년 5월 7일. 프랑스 축구의 성지인 스타드 드 프랑스에 7만 8천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이 중에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있었다.) 프랑스 축구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세상에! 칼레는 전반 34분만에 선제골을 터뜨리고 말았다. 프랑스의 모든 국민이 너나 할 것 없이 칼레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된 연장승부를 치른 탓에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진 탓일까? 아니면 운이 다한 것이었을까? 칼레는 후반전에 동점골과 역전골을 차례로 내주며 1:2 패배, 준우승에 그쳐야만 했다. 하지만 이 날 더 많은 박수를 받은 것은 당연히 패자인 칼레였고, 낭트 대표 선수와 칼레 대표 선수가 우승컵을 함께 들어올리는 것으로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경기 후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는 "오늘은 승리자가 두 팀이다. 결승전의 승자는 낭트, 정신력의 승자는 칼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칼레는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의 수호신'이라는 헤드라인을 내걸었다. 슈퍼스타 감사용과 박철순의 대결처럼 칼레의 기적은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끝이 났지만, 프랑스와 세계의 축구팬들에게 칼레의 이름을 강력하게 각인시킨 순간이었다.
미란데스의 기적, 알코르콘의 기적
프랑스에 칼레의 기적이 있다면 스페인에는 미란데스의 기적이 있다. 당시 스페인 3부 리그 클럽이었던 미란데스는 칼레와 마찬가지로 11/12시즌 스페인 국왕컵 코파 델 레이에서 프리메라리가 1부리그 팀이었던 비야레알, 라싱 산탄데르, 에스파뇰을 차례로 꺾고 준결승에 올랐으나 아쉽게 빌바오에 패배하며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연이어 멋진 골을 넣으며 인기를 모았던 미란데스의 '에이스'이자 '은행원 축구선수'인 파블로 인판테는 상위리그 클럽들의 영입제안을 받기도 했다.
09/10시즌 같은 대회에서 은하수군단 레알 마드리드를 무려 1,2차전 합계 4:1로 꺾으며 돌풍을 일으킨 알코르콘의 승리도 빼놓을 수 없다.
버튼 알비온의 기적
잉글랜드 5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던 클럽 버튼 알비온은 홈 경기장의 개보수를 자기 손으로 한 주장에서부터 공인중개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버튼 알비온은 힘든 승부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05/06시즌 잉글랜드 FA컵 3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3라운드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 호날두, 루니, 박지성 등이 속해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경기전 퍼거슨 감독은 주전급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는 것과 동시에 실험적인 경기를 하겠다고 여유를 부렸으나 5부 리그 팀을 상대로는 그마저도 잔인해보였다. 하지만 퍼거슨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버튼 알비온의 홈에서 열린 1차전 경기에서 맨유는 답답한 경기를 치렀다. 후반 어느 시점이 되자 벤치에 앉아있던 호날두와 루니까지 투입하며 승리를 노렸지만 골을 터뜨리지 못했고, 0:0으로 비기며 2차전으로 승부를 끌고 가게 되었다. 여러 대회를 병행하던 맨유에게는 최악의 결과였으나 맨유의 홈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경기를 치르게 된 버튼 알비온 선수들과 지역 팬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얼마 뒤 OT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는 결국 맨유가 5:0으로 승리하며 자존심을 챙겼다. 하지만 1부리그 팀의 경기장에서, 수 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를 치른다는 것 그 자체로도 5부 리그 팀 버튼 알비온에게는 커다란 영광이었다. 버튼 알비온의 선수들은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기분을 만끽했다. 이 경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위기론이 불거질 만큼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삼성SDI 축구팀의 기적
때는 바야흐로 2002년. 월드컵 출전을 위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던 우루과이 대표팀은 숙소가 있는 에스원 천안연수원 숙소 축구경기장에서 컨디션 점검 차 지역의 사회인축구팀과 경기를 치르게 된다. 비록 평가전이고 경기력을 점검하는 차원의 경기였지만 우루과이는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었던 알바로 레코바, 다리오 실바, 디에고 포를란 등을 모두 내보내며 컨디션을 가다듬었다. 결과는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의 5:2 승리. 허나 전후반 30분씩 1시간 동안 펼쳐진 경기에서 2골이나 집어넣은 삼성 사내 축구팀의 저력은 우루과이 대표팀을 놀라게 만들기에에 충분했다. 알고 보니 우루과이와 평가전을 가졌던 팀은 사내 대회와 천안지역 30개 팀이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한 팀으로, 경기 후 외신 기자들이 한국 사회인축구팀 선수들의 이름과 부서를 묻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그란 공 덕분에 축구는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스포츠다. 사회인축구팀 감독을 맡아 매주 경기를 치르며,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수준 높은 상대를 만나 호되게 당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꿈은 그 너머에 있다. 우리팀이, 아니 꼭 우리 팀이 아니더라도, 사회인의 이름을 내건 클럽이 FA컵에서 프로와 맞붙어 대등한 승부를 벌일 수 있다면, 칼레의 기적을 재현할 수 있다면!
아직은 이를 뒷받침해줄 시스템도, 우리팀의 실력도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잉글랜드 축구협회와 같이 체계적으로 10부 리그 이상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그에 맞추어 성숙된 사회인축구 의식과 실력을 갖추는 일은 유소년 시스템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많은 자본과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14/15시즌 프리미어리그 QPR에서 인생역전 드라마를 써낸 찰리 오스틴이나 잉글랜드 최다경기 연속 득점기록을 갈아치운 제이미 바디처럼 하부리그를 전전하다가 최상급 리그에 오게 된 이야기를 국내에서 보게 된다면 축구에 대한 관심은 전국민적인 이슈로 바뀔 것이다. 반짝하고 끝날 관심은 월드컵과 올림픽으로 족하다. 이제는 원년의 그 열기와 같은 국내 프로축구리그의 열기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더 이상 프로야구의 인기와 열기를 부러워하고 싶지 않다. 그것을 위해 사회인축구가 더욱 성장해야 한다는 것에, 필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