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성역이 어디 있으랴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경기장이자 1974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이었던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Azadi Stadium)에는 두 가지 별명이 있다.
첫 번째 별명은 '원정팀의 무덤'이다. 경기장이 해발 1200m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데다, 8만 명의 홈팬들이 일방적인 응원전을 펼치는 통에 상대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단 한 차례도 승리해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아자디 스타디움이 가지고 있는 두 번째 별명은 '금녀의 구역'인데, 이는 이란 정부가 종교적 이유, 그리고 남성들의 외설적인 언행과 행동으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이란 여성의 스포츠 경기장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서 유래된 것이다.
자파르 파나히(Jafar Panahi) 감독의 2006년작 '오프사이드(Offside)'는 이란의 남녀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영화 시작과 함께 카메라는 아자디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는 한 소녀를 쫓는다. 남장까지 한채 비장한 표정으로 버스에 앉아 있는 소녀에게는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이란과 바레인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TV가 아닌 경기장에서 직접 응원하며 보고 싶다는 꿈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경기장. 소녀는 암표상에게 웃돈까지 얹어주며 티켓을 구매하지만, 검색대를 지키고 있던 군인들에게 정체가 발각되어 경기장 한켠에 억류되고 만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남장여자 축구팬들을 만나게 된다.
아자디 스타디움의 원래 이름은 아리아메르(Aryamehr) 스타디움이었다. 아리아인의 빛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아리아메르는 이란 팔라비 왕조의 샤(왕)을 일컫는 칭호였다. 허나 1979년 혁명을 통해 팔라비 왕조가 축출되고 종교 지도자인 루홀라 호메이니가 집권하면서 자유(Liberty)라는 뜻을 가진 아자디 스타디움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혁명 정부는 이란 여성들의 스포츠 경기장 출입은 물론 TV 시청까지 완전히 제한하는 법령을 세워 그녀들의 자유를 박탈했다.
혁명으로부터 8년이 지난 1987년, 여성들의 TV 시청금지에 대한 법률이 해제되면서 이란 여성이 텔레비전을 통해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스포츠 경기장에 그녀들이 출입하는 일은 여전히 금기시되었다. 이란 내의 일부 외국인 여성들만이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정부를 대변하는 군인과 억류된 여성 축구팬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여성이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면 안되는 것인지' 묻는 그녀들의 질문에 그녀들을 감시하고 있던 군인들은 고함을 지르거나 대답을 얼버무리는 것으로 대응한다. 이란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멀리서 들려오고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은 '적정선을 넘어 오프사이드(Offside) 반칙을 저지른 것은 과연 누구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2000년 이후 이란 정부는 여성들에게 부분적으로 경기장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2003년 사상 처음으로 '이란 혁명기념 체육대회(이란의 전국체전)'에 1만 명의 여성들이 경기를 관전한데 이어, 2005년 독일 월드컵 예선전에서는 여성 축구선수들의 경기장 입장을 허용한 것이다.
허나 긍정적인 걸음 뒤에는 어두운 단면도 존재했다. 2005년에 치러진 월드컵 예선에서 이란이 일본을 이기자 이에 흥분한 관중들이 통제에 따르지 않은 채 한 번에 경기장을 빠져나가다가 7명이 압사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이란 정부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7명 중 한 명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사망자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다.'는 추측이 불거지면서 커다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5년 국제 축구연맹 FIFA는 이란의 스포츠 관전 차별에 대해 강력한 성명으로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국제 여성단체들 또한 점점 거세게 이란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간 이란내 여성계들의 목소리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이란 정부도 국제 정세가 이쯤 되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2015년 이란 체육부 부장관이었던 압돌라미드 아흐마디는 "순차적이고 부분적으로, 종목에 따라 여성들의 입장을 허용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것이 단지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술책이었는지, 아니면 진심에서 우러난 발언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영화 오프사이드가 잔잔한 호수에 파장을 일으킨 조약돌이었다는 것이다.
스포츠, 그리고 축구에 성역이 어디 있으랴.
아자디 스타디움에 여성과 남성이 함께 어우러지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 오프사이드는 2006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