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클럽 스포르팅 리스본의 머플러를 메고 돌아다니며 겪은 일
지난 2016년 11월 포르투갈로 첫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유럽 대륙으로의 첫 여행도 설레는 일이었지만 리스본에서 열리는 스포르팅 리스본과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직관하는 것이 여행 일정에서 가장 기대되는 이벤트였습니다. 스피커로만 들었던 챔피언스리그 테마송과 월드클래스 선수들의 플레이를 귀와 눈으로 직접 경험하다니!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리는 것 같습니다.
리스본 시각으로 19시 45분.
드디어 꿈의 경기가 시작됩니다.
점유율을 지배한 레알 마드리드와 한 방의 역습을 노린 스포르팅 리스본의 치열한 경기는 벤제마의 역전 결승골을 지켜낸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허나 시종일관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스포르팅 리스본 팬들의 놀라운 열기는 패자의 것이 아니었는데요
경기장을 가득 메운 5만 명의 홈팬들이 스포르팅 리스본의 머플러와 유니폼을 걸치고 온 덕분에
마치 '초록 물결'을 보는 것 같은 장관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외국인인 저조차도 위압감이 드는데 원정팀인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과 팬들은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일방적이고 열광적인 응원은 경기 내내,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새삼 홈빨(!?)의 강력함을 체감하며, 첫 챔스 직관을 기념하기 위해 근처 노점에서 5유로짜리 스포르팅 리스본 머플러를 구입했습니다.
다음 날은 꽤 쌀쌀했습니다.
껴입을 거리가 필요했던 저는 지난 밤에 구입한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숙소 문을 나섰는데요.
하지만 저는 그때 알았어야 했습니다.
리스본, 아니 포르투갈에서 특정 축구 클럽의 머플러가 얼마나 대단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는지.
다음은 포르투갈에서 머플러를 메고 다닌 일주일 동안 제가 겪은 일들입니다.
. 행인 중 최소 20명 이상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거나 등을 툭 치고 지나감
. 스포르팅의 라이벌이자 리스본을 연고로 하는 벤피카의 팬이 '너를 죽여버리겠다.'며 장난스레(!?) 협박
. 도로를 지나가던 젊은 운전자가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스포르팅!'을 크게 외치고 지나감
. 스포르팅 팬들로부터 'Sporting is best club in the world'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음
. 스포르팅 리스본의 팬인 버스 기사가 차내 방송으로 '아시아에서 온 스포르팅 팬'을 언급
. 리스본 시내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포르투갈 경찰이 '이 친구 우리 팀이네!'라며 친한 척
. 골목에서 낮맥 타임을 즐기고 있던 포르투갈 청년들과 갑작스런 스포르팅 응원 파티
. 벤피카 팬으로 추정되는 포르투갈 어르신이 기분 나쁜 손가락질과 함께 비난을 퍼부음
. 스포르팅 리스본 팬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서비스 제공
. 벤피카 팬으로 보이는 리스본 공항 직원이 검색대에서 "머플러를 풀지 않으면 통과시킬 수 없다."며 장난
. 그 외 셀 수 없이 많음
벤피카, 벨레넨세스 등의 연고 클럽들을 보유하고 있는 리스본 시민들은 물론 포르투갈에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축구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Do you like football?"라 묻는 제 질문에 모두가 자신이 응원하는 클럽의 이름을 댔고,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열렸던 주제 알발라드 스타디움(스포르팅 리스본의 홈 경기장)으로 저를 데려다주었던 택시 드라이버는 에스타디오 다 루즈(벤피카 홈 경기장, 주제 알발라드로부터 약 5km 이내에 위치)가 가까이 있으니 여행 일정 중에 반드시 스타디움 투어를 해보라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이 친구가 앞이 아닌 조수석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축구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여러 차례 사고가 날뻔 했던 것은 함정...
유럽의 축구 열기는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5유로짜리 머플러 하나로 저는 첫 유럽 여행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었고,
일주일만에 포르투갈 국민들, 그리고 스포르팅 리스본의 광팬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리스본에 가면 반드시 머플러를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