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나가는데 축구 실력이 뭐 그리 중요한가요?

KBS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 인터뷰

by 이종인
"월드컵에 나가는데 축구 실력이 뭐 그리 중요한가요?"


KBS 축구 해설위원이자 축구 마니아들 사이에서 높은 지지도를 얻고 있는 축구 전문가 한준희 위원의 말입니다.


의아함에 고개를 젓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한 위원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국제축구연맹 FIFA가 주관하는 월드컵이 아닌 대중문화잡지 빅이슈(THE BIG ISSUE)가 주관하는 홈리스월드컵을 주제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3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열린 1회 대회를 시작으로 오는 2017년 8월 제 15회 오슬로 대회를 앞두고 있는 홈리스 월드컵은 축구를 통해 빈곤과 노숙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해마다 열리고 있습니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대한민국 대표 팀이 참가한 첫 번째 대회였던 2010년 리우 홈리스 월드컵 때부터 홍보대사 겸 선수 선발위원으로 대표 팀과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대표 팀의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산 증인입니다. 그런 그에게 홈리스 월드컵과 대한민국 대표 팀에 대해 물었습니다.


Q. 홈리스 월드컵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제가 축구 해설위원이 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조현성 감독(대한민국 홈리스 월드컵 대표 팀 감독)이 먼저 손을 내밀어 준 덕분에 대한민국 대표 팀과 동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홈리스 월드컵은 오래 전부터 알렉스 퍼거슨, 아르센 벵거, 에릭 칸토나 등 축구계 명사들이 홍보대사로 참여해온 대회라 관심이 많았습니다. 부족하지만 작은 도움이나마 드리고 싶어 손을 잡은 것이 어느덧 8년이 되었네요.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꾸준히 발전해온 대한민국 대표 팀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Q.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선수가 있다면?

아무래도 모든 것이 열악하고 힘들었던 2010년 리우 대회 때가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오로지 열정 하나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봤으니까요. 결국은 익명의 독지가께서 기부해주신 덕에 극적으로 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출국 하루 전까지 비행기 티켓 비용을 온전히 마련하지 못해 가슴 졸이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당시 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의 얼굴도 생생합니다. 대표 선수 전원이 빅이슈 판매원이셨기에 지금도 길을 지나다 얼굴을 뵙는 일이 있습니다. 여전히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자활과 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더군요. 그럴 때마다 뭉클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낍니다.


Q. 2017 대한민국 대표 팀 선수 선발위원이셨습니다. 어떤 점을 주로 심사하셨나요?

저와 함께 심사에 참여하신 임은경 한국노숙인복지시설협회 사무처장과, 노숙인자활쉼터의 김도진 원장께서는 선발전에 참가한 대부분의 선수들과 안면이 있는 분들이셨습니다.


두 분이 오랜 시간 함께 알고 지낸 선수들의 인성이나 성격의 장단점, 자립 및 자활의지에 대한 것들을 주로 심사하셨다면 저는 조금 더 축구와 관련되고 스포츠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선수들의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키워드로 꼽자면 스포츠맨십, 팀워크 정도가 되겠네요.


평소 스포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혹여 팀 내에서 분란이 생긴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선호하는 포지션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포지션을 맡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와 같은 질문들로 선수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놀라운 것은 선수들이 홈리스 월드컵 선발전에 참가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선수들 대부분은 함께 지내고 있는 지인들이 이전 대회에 참가했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앞선 대회에서 뿌려 놓은 긍정의 씨앗이 열매를 맺고 있는 셈입니다. 새삼 우리의 첫 대회였던 리우 홈리스월드컵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Q.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대표 팀의 목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홈리스 월드컵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목표로 하지 않는 국제 축구 대회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회에서만큼은 1승을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때문에 저도 선수 선발 과정에서 축구 실력에 대한 부분을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홈리스들의 삶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대표 팀은 승리가 아닌 다른 것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목표는 건강하고 즐겁게 오슬로 현지 월드컵에서의 일정을 보내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세계 각국의 선수들과 우정을 다지고, 북유럽 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풍경과 견문을 넓히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두 번째 목표는 준비 과정과 대회, 월드컵에 다녀온 후의 삶을 더욱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월드컵의 추억을 꿈이나 추억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홈리스들에게는 자활과 자립에 대한 의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마지막은 선수들이 선발전에 참가한 이유처럼 긍정의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이번 대회를 성공적으로 건강히 잘 마치게 된다면 이 선수들의 존재 자체는 다른 홈리스들에게 꿈과 희망이 됩니다.


빅이슈가 홈리스 월드컵을 수많은 국가가 참가하는 행사로 기획한 것 또한 비슷한 맥락입니다. 선수들이 A ball can change the world and your life 라는 홈리스 월드컵 슬로건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나와 다른 이들의 세상을 모두 바꿀 수 있는 멋진 일이니까요.


Q.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입니다. 축구가 인간에게(혹은 홈리스 월드컵이 홈리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무엇일까요?

축구는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포함해 3~4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경기입니다. 때문에 자연스레 소통, 협동(팀워크)과 같은 덕목이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는 곧 팀워크를 와해시키니까요. 최근 내홍을 겪었던 축구 국가대표 팀의 문제도 소통의 부재로부터 발생했습니다.


때문에 축구만큼 소통과 팀워크에 대해서 잘 배울 수 있는 스포츠도 드뭅니다. 게다가 이 가르침은 경기장에서 직접 뛰면서 머리와 피부로 동시에 배우게 됩니다. 이렇듯 실력 외적인 요소가 존재하기에 축구 경기에서 ‘언더독의 반란’이 자주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홈리스 월드컵이 주는 긍정적인 요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축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스포츠입니다. 때문에 축구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홈리스들에 대한 범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정책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홈리스들의 삶을 실제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홈리스월드컵을 앞서 이야기한 선수들 스스로의 변화와 사회/정책적인 변화를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는 훌륭한 취지의 대회라고 생각합니다.


Q.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슬로 현지에서의 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나라를 대표해 월드컵에 참가하는 선수들이며 다른 분들이 부러워하는 기회를 부여 받은 선수들입니다.


모두가 한 팀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대회를 치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녀오신 후에는 희망의 씨앗을 이곳저곳에 뿌려주시고요.


항상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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