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월드컵 대표팀의 두 수문장 이야기
대한민국 홈리스월드컵 축구 대표 팀에는 두 명의 골키퍼가 있다. 문영수 씨와 정순만 씨가 그 주인공이다. 두 선수는 대표 선발전 때부터 눈에 띄었다. 모든 개인 테스트를 마치고 실시한 연습 경기에서 골키퍼를 자처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누구도 스스로 홈리스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순만 씨도 마찬가지였다. 유리업계에서 일하며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던 순만 씨는 갑작스레 찾아온 우울증을 극복할 수 없었다.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고자 했지만 의사들의 소견은 하나같이 ‘우울증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 암울한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시도한 적도 여러 번이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다섯 번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며 사느니 홀로 노숙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가장 먼저 정리한 것은 가족과의 관계였다. 살고 있던 전셋집은 아내에게 양도했고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것 대신 홈리스로 살아가는 것을 택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2014년 12월의 일이었다.
대표 팀의 맏형인 영수 씨도 남부러울 것 없이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나 그의 삶은 이십여 년 전 어느 명절을 기점으로 180도 바뀌고 말았다. 외출하는 처제를 차로 데려다주던 중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치고 만 것이다. 교통사고 합의금은 처갓집에서 처리해주었다. 하지만 그 일 이후 처가와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멀어져 갔다. 결국 영수 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지방에 두고 홀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사고 이후 삶에 대한 의욕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죄책감도 컸고요. 서울에 와서는 공장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방에 있는 처와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보내주어야 했으니까요. 매일 수십 톤의 철근을 옮기는 고된 일이었지만 아이들 얼굴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고가 영수 씨를 덮쳤다. 수백 킬로그램의 철근이 하필 영수 씨의 발 위로 떨어진 것이다. 사고는 영수 씨의 오른쪽 다섯 발가락을 모두 앗아갔다. 수차례의 수술과 지옥과도 같았던 재활을 거쳐 겨우 직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복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철근이 영수 씨를 덮쳤다. 다친 몸은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되었지만 연속된 사고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는 극복할 수 없었다.
이제 영수 씨는 어떤 일도 할 자신이 없었다. 술의 힘을 빌려 보내는 날이 많아졌고 해가 떠 있는 낮보다 어두운 밤이 오길 더 바랐다. 위험한 생각도 수차례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힘든 나날을 보내던 영수 씨의 눈에 한 TV 프로그램이 들어왔다. 빅이슈 판매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KBS 다큐멘터리였다.
순만씨가 생각했던 것보다 노숙 생활은 더 두렵고 힘든 일이었다. 행려자들 사이에도 사회가 형성되어 있고 모종의 서열이 있어 적응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제 막 시작된 겨울을 길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행려자들을 구호하기 위해 나온 홈리스센터의 직원들이 그에게 센터 입소를 권유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센터는 아늑했다. 따뜻한 물과 음식이 있었고 식구들의 심리 건강을 담당하는 의사도 상주해 있었다. 센터에서 지내며 순만씨의 상태는 호전되어 갔다.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올바른 약물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규칙적으로 운동도 시작했다. 순만씨를 괴롭히던 우울증도 운동과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센터 식구들로부터 홈리스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일생에 단 한 번, 홈리스들만 출전할 수 있는 국제 축구대회가 있다는 사실은 금세 순만씨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2015년에 처음 알게 되어 2017년 선발전에 참가했으니 꼭 3년이 걸렸네요. 그동안 다른 일정과 겹쳐 선발전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반드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미리 스케줄을 비워두었습니다.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힘들었던 지난 3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빅이슈 판매원이 된 영수씨의 첫 근무지는 부천 역곡역이었다. 처음에는 남들 앞에 서는 것과 소리 내어 빅이슈를 외치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웠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하루 대여섯 시간을 서서 근무하고 나면 사고로 다친 오른발이 욱신거렸지만 영수씨는 자신의 ‘빅이슈’를 구매해주는 고객들을 위해 흐트러짐 없이 성실하게 판매에 임했다.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유동인구가 더 많은 신도림역으로 근무지를 옮길 수 있었다.
홈리스 월드컵 주관사인 빅이슈 코리아 직원이라 홈리스 월드컵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영수씨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사고로 불편해진 몸과 축구 실력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었다. 하지만 빅이슈 식구들은 골키퍼라면 다르지 않겠느냐며 영수씨를 독려했다. 많이 뛰지 않아도 되니 발에 무리가 가지 않고 포지션 지원자도 적어 유리하다는 것이 그들의 조언이었다. 그렇게 영수씨는 붕대로 감은 발 위에 축구화 끈을 동여맸다.
"선발전에서 1차 합격하고 훈련을 거듭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붙었습니다. 이제 내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쉽게 포기하고 망가졌던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슬로에 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마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각오를 다졌죠. 국가대표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잖아요."
대한민국 대표 팀의 두 골키퍼는 자활과 자립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생업과 운동을 병행하며 바쁜 와중에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영수씨는 홈리스월드컵에 다녀온 후 캘리그라피를 배워 ‘글씨로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고(지금도 영수씨는 자신이 판매하는 빅이슈에 직접 쓴 손 편지를 넣어 판매하고 있다.) 홈리스 센터에서 운전 봉사를 하며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는 순만씨는 자신이 힘들 때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사회복지사가 되어 사람들을 돕고, 훗날 사회복지센터를 세우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은 국가대표로서의 책임감에 대해서도 뜻을 밝혔다.
"순만씨나 저(영수)나 이렇게 많은 지원과 도움을 받기에는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기회를 주신만큼 최선을 다해 훈련과 경기에 임할 것입니다. 오슬로에서 돌아온 후에는 과거의 저희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희망을 주어야겠죠. 누구나 도전하면 이룰 수 있고 포기하지 않으면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저희 둘의 출전은 기쁜 일이지만 홈리스 월드컵으로 인해 얻은 자신감을 다른 분들과 나누는 것이 진정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체계적으로 훈련을 소화하면서 축구 외에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팀워크에 대해서도 배우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홈리스 월드컵 덕분에 알게 된 영수 형님도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요. 8명 팀원 모두 하나가 되어 대회를 치르고 나면 모두의 삶에 새로운 목표와 비전이 생기리라 믿습니다. 월드컵 출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홈리스 월드컵 대표 팀의 두 수문장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이 생겼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골문과 삶이 생겼다. 힘들고 굴곡진 세월을 겪고 난 후의 깨달음일까? 이들은 입을 모아 돈과 승리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축구 경기를 하다 보면 상대에게 골을 허용할 때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더 잘해서 실점한 것이라면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포기하거나, 실점으로 인해 좌절하는 것은 열 골을 내주는 것보다 더 좋지 못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두 발로 세상에 다시 섰습니다. 이제 이 삶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