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막내인 희태는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2000년에 태어나 우리 나이로 올해 열여덟, 한창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 나이에 희태는 왜 학교가 아닌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에 와 있는 걸까?
희태가 처음 축구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방과 후 수업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축구는 밤낮으로 해도 질리는 법이 없었다. 흥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희태에게는 축구에 대한 재능과 소질이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방과 후 축구 수업을 지도하던 선생님께서 운영하는 유소년 축구팀에 스카우트되어 조금 더 전문적으로 축구를 배울 수 있었다.
유소년 팀에서 뛰는 것은 즐거웠다. 희태의 축구 실력도 점점 더 향상되어 갔다. 선생님은 이 팀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면 더 전문적인 축구를 배울 수 있는 중학교로 진학할 수 있다고 했다. 가슴이 뛰었다. 그때쯤 희태는 처음으로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희태의 양육 책임자였던 고모가 있는 곳으로 집과 학교를 옮겨야 했던 것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모는 그 곳에서도 축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사실이었고 희태는 새롭게 옮긴 학교에서도 방과 후 축구 수업을 들었다. 이번에도 방과 후 선생님은 희태를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유소년 팀으로 데려가 더 전문적인 축구 수업을 받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국 대회 출전을 코앞에 두고 발목이 잡혔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고모가 희태의 전국 대회 출전을 만류한 것이다. 희태는 남아 있는 한 쪽 날개마저 꺾여 버린 기분이 들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희태는 축구를 계속했다. 지금껏 쌓아온 실력이 있었기에 기회도 계속해서 찾아왔다. 이번에는 인천 *미들스타리그 출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희태가 스스로 축구를 포기했다. 아니, 축구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미들스타리그 :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인천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축구 리그. 지난 2004년 처음 시작되어 인천 지역의 축구 저변을 확대하고 유망주를 발굴하는데 힘써왔다.
아버지는 희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술에 취해 있었다. 그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희태를 낳아준 친어머니는 희태가 다섯 살일 때, 새어머니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희태와 아버지의 곁을 떠났다.
중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희태는 평소보다 아버지의 목이 부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식사는커녕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아버지를 부축해 급히 근처 병원으로 갔지만 의사는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과도한 음주로 인해 지병이었던 간경화가 식도로 전이되었다고 했다. 목뼈가 부러져 있어 꼬리뼈를 이식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수술이었으나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다행이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희태는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축구 연습을 계속했다. 축구를 하지 않으면 무서운 생각을 떨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수술 후 아버지의 병세는 차츰 호전되었고 희태도 얼마 뒤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는 불량한 친구들과 그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희태는 자퇴서에 이름을 썼다.
"다시 축구를 해보고 싶어서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원서를 냈어요. 기숙사도 있고, 지역에서 나름 축구로 유명한 학교였는데 축구 외에 다른 것들이 저랑은 너무 안 맞더라고요. 불량한 친구들도 많고... 직업학교 같은 곳에 들어가 보면 어떨까 싶어 자퇴서를 냈어요."
하지만 울타리가 없는 학교 밖 생활은 더 위험했다. 직업학교에 들어가서 남들보다 빠르게 돈을 벌겠다던 결심도 금세 흐릿해져 버렸다. 머지않아 희태는 집을 나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그들을 따라 문이 열린 자동차와 그 안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잘못은 영원히 숨길 수 없었다. 경찰서, 법원 등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곳들을 전전하며 수개월이 흘렀다. 법원은 희태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집이 아닌 청소년 위탁 시설(세상을 품은 아이들)에서 지내며 반성하고 봉사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이 끝나는 9월 초가 되면 희태는 지금 지내고 있는 위탁 시설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희태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한다.
"이 곳(세상을 품은 아이들)에서 지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우고 있어요. 홈리스 월드컵에서 돌아온 후에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곳과 연계된 다른 위탁 시설에 들어가서 검정고시 공부와 축구 트레이닝을 시작하고 싶어요."
"제가 했던 잘못에 대해서는 처벌로 모두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반성해야죠. 지금은 이렇게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월드컵이 열리는 오슬로에서 최선을 다하면 한 번 더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지내야 했던 가정환경, 타의로 꺾여야 했던 축구에 대한 꿈, 그리고 잘못된 선택과 해서는 안 될 실수까지. 희태는 너무나도 소중한 10대의 시간들을 아프게 보냈다. 하지만 열여덟 희태는 아직도 어리다.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과 적절한 교육이 더해진다면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에도 전혀 늦은 나이가 아니다.
"어쩌면 잊어버릴 뻔 했던 축구에 대한 꿈을 홈리스 월드컵을 통해 다시 꾸게 되었어요. 인생에 한 번,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걸 잘 알아요. 오슬로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요."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를 한다. 허나 실수를 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이다. 성실한 태도와 결연한 의지로 훈련에 임하며 삼촌 혹은 아버지뻘 동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희태는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즐겁다.
한참 사랑을 받으며 자랄 나이에 거리의 추위와 외로움을 알아 버린 희태. 하지만 희태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다.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 동료들, 아니 희태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삼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희태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