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만든 두 번의 기적

by 이종인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거리에서 생활하며 지금껏 맺어온 관계의 끈이 모두 끊어진 홈리스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의 문순 씨와 진순 씨는 대표팀의 소문난 ‘절친’이다. 훈련장에 올 때도 함께, 그리고 훈련을 마치고 나서도 함께 걷는다. 어렵고 힘든 훈련들을 소화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두 사람의 믿음은 유독 돈독해보였다.


한 지붕 아래서

문순 씨를 거리로 내몬 것은 신용 문제였다. 십여 년 전 급박한 상황에 돈을 빌려다 쓴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보려고 해도 언제나 발목을 잡는 빚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영등포역에 있는 안동네(노숙인들이 모여 지내는 뒷골목)까지 오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버티기 힘들어 위험한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조금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안동네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던 중 누군가 건넨 생수가 저를 살렸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그냥 생수가 아니라 생명수였어요."


문순 씨에게 손을 내민 것은 노숙인들을 자활센터에 입소하도록 권유하기 위해 순찰하던 간사였다. 그는 문순 씨를 영등포시장역 근처에 있는 햇살보금자리센터로 데려갔다. 그 곳에는 밥이 있었고, 따뜻한 잠자리가 있었다.


자존심을 내려놓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센터 입소 후 문순 씨는 새로운 삶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센터에서 주최하는 자활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체육활동(축구)에도 재미를 붙였다. 축구는 여태껏 단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스포츠였지만 지금껏 해본 그 어떤 일보다 재미있었다. 그렇게 축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진순 씨는 10여 년 전 친형을 도와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형과의 성격 차로 인해 인쇄소 생활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독립을 선언, 허나 사회에서 진순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식당의 주방 보조로 들어가 수 년 동안 일했고, 주방을 나와서는 흔히 '현장'이라고 부르는 막노동판에서도 일을 해야 했다. 허나 작은 체구는 무겁고 힘든 일을 견뎌내지 못했다. 나중에는 일하는 시간보다 병상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 무렵의 답답한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술에 기대기 시작한 것이 진순 씨를 거리에서 지내게 만들었다.


"저도 문순이와 비슷한 계기로 센터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영등포역에서 지내던 중 센터 직원께서 나눠주시는 전단지를 보고 곧바로 찾아갔어요. 좋지 않은 몸과 불안한 정신으로 길에서 지내다가는 큰일을 치를 것만 같았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비슷한 시기에 한 지붕(안동네) 아래에서 또 다른 한 지붕(자활센터) 아래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문순 씨와 진순 씨가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여름에 열린 서울시 자활체육대회에서였다. 자활센터는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제공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온전히 구성원들의 몫이었고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은 이상 말 한마디 섞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나 두 사람은 축구를 좋아한다는 공통분모 덕분에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얼마 후부터는 자활체육대회 축구 부문 우승을 목표로 매주 함께 공을 차기 시작했다. 건강하고 건전한 취미인 축구, 목표가 있는 삶,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할 친구가 있다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혼자였다면 해내기 힘들었을 자활 프로그램도 친구와 함께 하니 훨씬 수월했다. 덕분에 두 사람은 이른 시간에 각자의 보금자리를 찾아 센터를 떠날 수 있었다.


우정으로 다잡은 손

두 사람의 우정에도 돌발 상황과 위기 상황은 있었다. 1년 전, 진순 씨가 갑작스레 센터를 떠났을 때가 우정이 갈라질 수 있었던 첫 번째 위기였다. 모두에게 세세한 이유를 밝힐 수 없지만 아주 괴롭고 힘들었던 것은 분명한 진순 씨의 상황, 허나 문순 씨는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친구가 다시 길거리로 향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무작정 길을 나섰고, 어렵사리 진순 씨를 찾아 센터로 돌아오도록 설득했다. 진순 씨 또한 친구가 내민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두 번째 위기는 2017 대한민국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 2차 선발전에서 진순 씨가 최종 선발된 8인의 명단에 들지 못했을 때였다. 하지만 문순 씨는 내년, 아니 자활체육대회를 위해서라도 진순 씨가 훈련에 나오길 바랐고 설득을 시작했다. 진순 씨 또한 그 뜻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진순 씨는 탈락 후에도 최종 선발 선수들의 원활한 훈련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훈련에 참여했다. 그리고 결국 2차 선발 선수 1명의 갑작스런 이탈로 인해 최종적으로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었다. ‘절친’ 문순 씨와 함께 오슬로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종 선발에 대해 묻자 진순 씨는 고맙고 벅찬 마음을 모두 문순 씨에게 돌렸다.


"두 번 모두 문순이가 제 손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문순이는 제 생명의 은인, 아니 그 어떤 고마운 말로도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제가 힘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거리에서 지내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누군가 내가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몰라주는 일만큼 서운한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더는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진순이를 찾아간 것이지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습니다."


고독과 맞서 싸우는 일

홈리스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외로움이라고 한다. 거리에서 지내며 사람들로부터 받는 따가운 시선, 아무 곳에도,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주는 무력감과 고립감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버려졌다고 느껴지게끔 만든다.


하지만 문순 씨와 진순 씨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가 옆에서 의지가 되어준다면 외로움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내뿜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에너지는 대한민국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의 다른 팀원들 또한 물들이고 있다. 우정의 힘이 곧 팀워크로 이어지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 홈리스 월드컵에 다녀온 후에는 어떤 삶을 살아갈 예정이며,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물었더니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에 나가는 우리 대표팀 선수들 모두 좋은 친구가, 좋은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흔하지 않은 기회에, 다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이곳까지 온 만큼 대회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두 명의 친구로서 대표팀에 왔지만 다른 여섯 명의 형 동생들이 생겨서 너무 좋습니다. 가늘고 길게, 앞으로 오래도록 이 팀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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