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씨는 대한민국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의 어머니 같은 존재다. 늘 살가운 말과 행동으로 동료들을 챙기는 한편 가장 일찍 운동장에 나와 가장 마지막에 운동장을 떠난다. 이런 따뜻함과 책임감 덕분에 태수씨는 우리 대표팀의 부 주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선수들도 태수씨를 무척 좋아하고 따른다. 따뜻하고 깊은 속을 가진 동료에게 마음이 더 쉽게 열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허나 태수씨는 현재 모습과는 달리 지금껏 살아낸 세월이 무척이나 외롭고 힘들었다고 이야기한다.
태수씨의 외로움은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부모님의 이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학업도 도중에 그만두게 되면서 어울리고 의지할 친구조차 많지 않았다.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던 꿈도 자연스레 아스라졌다.
상처는 성인이 되어서도 벌어져만 갔다. 일반적인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경제적으로 안정될 수 없었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그리움과 외로움도 잊을만하면 다시 나타나 태수씨를 괴롭혔다. 그때부터 태수씨는 힘든 속을 술로 달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태수씨를 다운(Down)시킨 것은 술이 아니라 서른 살에 당한 불의의 교통사고였다.
"커다란 사고였어요. 겉으로는 크게 다치지 않았는데, 심각한 내상을 입고 후유증도 오래 가는 바람에 병상에서만 10년을 보냈죠. 입, 퇴원을 반복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마흔이 되었더라고요. 세상도, 세월도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음을 도둑맞았다는 생각에 다시 술을 찾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얼마 뒤 또 한 번 커다란 슬픔이 찾아왔다. 태수씨가 병상에 있을 때 찾아와 병간호를 해주셨던 친모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이다. 가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태수씨는 대소변을 받아내고, 여자 병실에서 먹고 자는 등 헌신적으로 어머니를 간호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모신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태수씨의 좌절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저를 간호하다가 얻으신 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죄스럽고, 살아생전 효도 한 번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깊은 좌절감에 어머니를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두 번째 다운은 술로 인한 것이었다. 태수씨는 친모께서 세상을 떠난 후 교회에서 봉사하며 지내기도 하고, 다시 일도 시작했지만 깊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습관처럼 마시기 시작한 술만큼은 도저히 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술은 태수씨의 아픈 마음을 조금도 달래주지 못했다.
2014년 어느 날. 모텔 방에 쓰러져 있는 태수씨를 지인이 발견했다. 태수씨의 기억에 의하면 한 달 반 가까운 시간을 다른 무엇도 먹지 않고 술만 마셨다고 한다. 스스로 다리가 풀려버린 두 번째 다운은 첫 번째 보다 더욱 타격이 컸다.
태수씨는 무서웠다. 병원에 실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상황도 무서웠지만, 문득 이렇게 세상을 떠나면 주변 사람들이 과연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 정신을 차렸다. 귀엽고 예쁜 조카 세 자매의 얼굴도 떠올랐다. 빌어먹을 술만 끊을 수 있다면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들어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태수씨가 회복세에 접어들었을 때쯤, 지인이 알콜 중독 자활 시설인 비전트레이닝 센터 입소를 권유했다. 다른 알콜릭(Alcoholic)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중독도 치료하고 자활 프로그램에도 참가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태수씨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스스로 알콜 의존자임을 인정하고 술과 싸우기로 다짐했다.
센터 입소 후, 태수씨는 총 두 번 단주(술을 끊는 일)에 도전했다. 첫 번째 도전은 약 300일 만에 마무리 되었다. 잠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술에 손을 댄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두 번째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첫 번째 실패 후 다시 독하게 마음을 다잡고 1년 가까이 술을 마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태수씨는 지금까지 단주를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다른 무엇도 아닌 축구에서 찾았다.
"첫 실패 후 재도전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는 중에 홈리스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앞선 대회에 국가대표 선수로 다녀온 센터 동료들의 후일담이었어요. 그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제 어릴 적 꿈이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 순간부터 태수씨의 목표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뾰족해졌다.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차근차근 실력과 체력을 기르는 것이었다. 단주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자활 센터 축구 동아리에 가입해 실전 감각을 기르는 한편, 틈틈이 홈리스 월드컵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꿈을 키워 나갔다.
태수씨의 준비는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선발과 부 주장 임명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축구를 병행하니 단주도 더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태극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다는 것은 지금껏 경험한 것보다 더욱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태수씨를 기쁘게 만드는 일은 사랑하는 조카들에게 처음으로 떳떳하고 멋진 삼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조카들이 창피해할까 싶어 도전을 고사할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금세 생각을 고쳤습니다. 좌절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서 도전하는 삼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직 도전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 떳떳하고 멋진 삼촌이 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권투에는 한 라운드에 세 번의 다운을 당하면 패배가 선언된다는 규칙이 있다. 하지만 인생은 권투와 다르다. 몇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그만인 것이다. 교통사고와 알콜 중독으로 인해 이미 두 번의 다운을 빼앗긴 태수씨에게도 앞으로 많은 기회가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제는 링 안과 밖에서 태수씨를 응원하는 동료들도 생겼다. 힘이 들면 같이 힘을 보태고, 쓰러질 것 같이 숨이 차면 대신 링에 들어가 싸워 주는 우리 대표팀 선수들 말이다.
이제 태수씨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