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의 칼 루이스, 다시 뛰다

by 이종인

홈리스 월드컵은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 대회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선물하고, 그 경험에서 비롯된 행복감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홈리스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추구하는 대회 취지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또한 대회에서의 성적이 아니라 월드컵이 끝나고 난 후 스스로 일어서서 살아가는 것이다.


각국 코칭스태프 또한 선수들이 성적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롭기를 바라고 있다. 선수 개개인의 성향과 취향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코치진의 임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 선수들은 성적에 대한 나름의 목표와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월드컵에서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는 것이 준비과정에서 후원하고 응원해주신 분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승부욕과는 다르다. 스스로를 동기부여하고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얻기 위한 일종의 자기암시라고 하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우리 대표팀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에너자이저’인 영도 씨는 언제나 골과 승리를 갈망하는 선수다. 훈련을 실전처럼, 몸을 내던져서라도 팀과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수비하고 공격하며 2인분 이상의 몫을 해내는 영도 씨 덕분에 우리 대표팀은 훈련 내내 활기를 얻을 수 있었다.


레인을 벗어난 육상 유망주

학창 시절 영도 씨는 경북 지역에서 촉망 받던 육상 선수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중학교 졸업 후에도 특기를 살려 한 체육 전문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도 씨는 체고 입학 이틀 만에 자퇴서에 이름을 썼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체육부에서는 선배들의 구타와 욕설이 굉장히 심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럭저럭 참을 만 했는데 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까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소위 '군기'를 잡기 위해 입학 초부터 신입생들을 때리는 선배들과 계속해서 같이 생활할 자신이 없었어요."


자퇴 후 영도 씨는 중학교 시절 선생님을 찾아가 진로를 상담했다. 은사님께서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체육 특기생으로 계속 학교를 다니는 것은 어떻겠느냐?'며 조언해주셨고, 그로부터 얼마 뒤 영도 씨는 고향인 경상북도 봉화의 한 고등학교에 재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전학생에게 살갑게 구는 학교가 많지 않았다. 재입학한 학교에서도 선배들과의 마찰은 계속되었고 때문에 육상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 수 없었다. 영도 씨는 2년 만에 다시 한 번 자퇴를 결심한다.


그때부터 방황이 시작되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책상보다 운동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기에 영도 씨가 사회에 나와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 전국을 떠돌면서 먹고 살기 위해 갖가지 일을 했지만 어린 영도 씨에게 사회는 전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춥고 배고픈 나날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영도 씨는 아직 젊었다. 이렇게 살 거라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서울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청량리 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 도착한 후에는 닥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얼마 뒤 한 식당에서 홀 서빙 일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거리로 나와야만 했다. 거리에서의 삶은 추위와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영도 씨가 지금도 후회하며 반성하고 있는 일을 저지른 것도 그때쯤이었다.


"강도 사건 범인으로 체포되어 7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어떤 것도 면죄부가 될 수 없겠지만) 돈에 눈이 멀어 저지른 일이었어요. 출소한지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봉화의 칼 루이스, 다시 뛰다

사회로 돌아온 영도 씨는 첫 상경 후 잠시 신세를 졌던 영등포 광야 교회의 노숙인 자활 센터에 다시 찾아갔다. 수감 생활에서 깨닫고 생각한 것들을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센터 자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틈틈이 봉사활동을 다니며 지난 과오를 씻어 나갔다. 홈리스 월드컵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이곳에서였다.


영도 씨와 같은 시설 소속으로 2011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이 생생하고 즐거운 후기를 들려준 것이다. 영도 씨는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달리는 것이라면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태극 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뛸 수 있다는 이야기는 영도 씨의 가슴을 더욱 뛰게 만들었다.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 선발전에 나와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1차 선발전에 합격하고, 최종 명단에 들었을 때도요. 학창 시절 육상을 하면서는 절대 느껴본 적 없는 벅찬 감정이었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치러진 월드컵 대표팀 훈련에서도 영도 씨의 장점은 눈에 띄었다. 넘치는 투지와 체력으로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맹활약한 것이다. 대표팀 동료들 또한 영도 씨를 가리켜 ‘팀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런 영도 씨에게 홈리스 월드컵에서의 목표와 꿈을 물으니 몇 초 지나지 않아 ‘우승’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과연 영도 씨다운 대답이었다.


"꿈이 클수록 얻는 것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중요한 대회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누군가 한 명쯤은 우승이라는 목표를 품고 뛰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열심히 뛰는 것만이 저로 인해 상처 받았던 분들과 부족한 저를 도와주시고 다시 기회를 준 모든 분들에게 보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도 이름 석 자를 꼭 기억해주세요.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홈리스 월드컵은 그런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자신감, 그리고 깨달음을 주는 대회다. 영도 씨 또한 이번 홈리스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오슬로에서 돌아온 후에는 가장 시끄러운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나누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출발선에 놓인 영도 씨의 삶, 이번 달리기의 결승점에는 환희와 감동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의 바람처럼 대표팀의 앞에도 꽃눈이 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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