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불평등 없는 세상을 꿈꾸는 남자

by 이종인

대한민국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에는 전담 코치나 트레이너가 없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이벤트이기에 정규 코칭스태프를 운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속성 없이, 매해 바뀌는 코칭스태프는 선수단 운영에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


특히 더 취약한 부분은 팀의 체력과 건강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트레이너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선수들은 다년간의 홈리스 생활, 혹은 적지 않은 나이로 인해 몸 이곳저곳이 아픈 경우가 많다. 이들이 전문적인 상담과 관리 없이 준비되지 않은 몸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는 것은 항상 부상 위험을 안고 뛰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하는 우리 대표팀은 그 어떤 대회 때보다 훌륭한 컨디션으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한때 국가대표 선수들의 피지컬 트레이닝을 담당했을 정도로 전문성을 갖춘 이우연 트레이너가 팀에 합류해 훈련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선수들은 스트리트 사커(Street Soccer : 홈리스 월드컵 종목)를 위한 몸 관리뿐 아니라, 평소에도 쉽게 체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이 트레이너의 코칭 철학은 선수들이 대회에만 ‘반짝’이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거나 체력을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 자활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홈리스 월드컵 조직위원회의 슬로건과도 정확히 일치했다. 이 트레이너의 합류로 우리 대표팀은 비어 있던 마지막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불꽃과 맞서 싸우는 방법

이우연 트레이너는 대학 시절 전자 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서 숫자와 씨름하는 것보다 코트에서 하는 농구 시합이 더 재미있었고, 사회적 기업이나 NGO 같은 ‘세상을 바꾸는 멋지고 의미 있는 일’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대학 졸업 후 IT 회사에서 12년간 기술 영업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가치(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일)와 적성(운동)을 좇았다.


그런 그가 ‘피지컬 트레이너가 되어야겠다.’라 결심한 것은 한 가정의 가장이자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삼십 대 후반의 일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틈틈이 공부하며 전직을 준비한 덕분에 마흔이 되기 전에 퍼스널 트레이너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트레이너로 일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실전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돈벌이는 쉽지 않았고 몇몇 고객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과연 지금 내가 돈을 받고 서비스를 판매해도 괜찮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수강생의 질문에 말문이 막히는 것보다 부끄러운 것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 트레이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몸과 사람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필요하다면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배우기도 했다. 어느덧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힘들고 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의 응원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어요.”


이 트레이너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배와 만난 후의 일이었다. 소방대원이었던 선배의 몸이 3교대 근무로 인한 피로와 강도 높은 진화작업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건강과 체력관리를 스스로 해야만 하는 소방관들의 처지는 그보다 더 안타까웠다.


"분명 가장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인데, 대우는 그와 같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곳곳이 아프고 쑤신 선배의 몸을 보니 저라도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우연 트레이너는 선배가 근무하고 있던 소방서 대원들의 트레이닝을 자청했고, 그로부터 10개월 동안 대원들의 체력과 건강이 나아지도록 도왔다. 좋아진 것은 대원들의 건강뿐만이 아니었다. 이 트레이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살아났고 소개와 입소문이 꼬리를 물어 이후 다른 소방서와 사회적 기업에서 예방과 교정을 위한 트레이닝도 진행할 수 있었다.


건강 불평등 없는 사회

이우연 트레이너가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하게 된 것도 자원봉사로 인연을 맺고 있던 비전트레이닝센터의 소개 덕분이었다. 마침 팀 닥터와 트레이너가 부재했던 우리 대표팀 상황과 맞물려 이우연 트레이너의 합류는 대표팀에게도 반가운 일이었다.(서울시립 비전트레이닝센터는 알콜릭과 홈리스의 자활/자립을 돕는 시설로 지금껏 다수의 홈리스 월드컵 대표 선수들을 배출했다.)


"저에게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국가대표 축구팀의 트레이닝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비전트레이닝센터에서 봉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분들이 축구 선수가 되어 뛴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많이 고민했는데요. 막상 훈련장에 나가보니 선수들의 상황은 제 예상보다 더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제가 도움 드릴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대표팀 합류 이후 이 트레이너는 전지훈련에 참여하고, 모든 주간 훈련에 가장 먼저 도착해 선수들의 다친 몸을 다스리는 한편 부상 방지를 위한 워밍업과 정리 운동을 도맡아 진행했다. 필요하다면 선수들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 그라운드에 서기도 했다.


나중에는 생각지 못했던 선순환이 생겨나기도 했다. 오전 9시 훈련 스케줄에 앞서 일찍 경기장에 도착한 선수들에게 퍼스널 트레이닝과 통증 치료를 해드리기 시작한 것이, 모든 선수가 경기장에 일찌감치 도착하는 문화를 만든 것이다. 이우연 트레이너의 적극적인 스킨십은 선수들과의 정서적 교감으로 이어졌고 결정적으로 선수단의 팀워크와 케미스트리가 더 좋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노력 덕에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하는 우리 대표팀은 최종 선발된 8명 모두 아무런 부상 없이 튼튼한 몸과 마음으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훈련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고생했던 지난 일곱 번의 대회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 올해로 여섯 번째 우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조현성 감독 또한 "전문성을 갖춘 트레이너와 진심어린 코칭의 위력을 실감한 순간"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이우연 트레이너에게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해 묻자,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것 같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우리 선수단의 여름을 뜨겁게 만들었던 사람은 이우연 트레이너 본인이라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을까.


이우연 트레이너는 월드컵이 열리는 오슬로 현지에서 함께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표팀의 진짜 영웅이자 ‘닥터’였던 그가 선수들에게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와 건강은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을 넘어 앞으로도 선수들 삶의 곳곳에서 활약할 것이다.


아래는 이우연 트레이너가 우리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보내는 이야기,


"여러분과 함께 한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아주 즐거웠습니다. 현지에서는 함께 하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응원하고 또 응원하겠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후회 없이 모든 순간을 즐기고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절대 워밍업 소홀히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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