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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영준 Nov 18. 2020

글쓰기법칙

14_스케일과 캐논, 그리고 하농

나는 베이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력이 생각보다 빠르게 늘지 않는 것 같아서 매우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음악 전공자들과는 달리 진지함이나 연습량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악기 연주에 재능이 전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좀처럼 쉽게 늘지 않는 것이 악기 연주기술이라는 걸, 그리고 계속해서 연습하면 분명히 나아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세상 어떤 일도 한두 달 만에 성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뭔가를 만들어 내려면 발전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계속 지속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차르트에 관한 영화 <아마데우스>에는 모차르트가 작업 중인 악보를 살펴보던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차르트의 악보에는 잘못 써서 고친 흔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살리에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 모차르트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열등감에 몹시 괴로워하는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역사적 사실은 이와는 무척이나 다릅니다. 살리에리는 이미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고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살리에리는 벌이에 비해 늘 사치스럽게 살았기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렸던 모차르트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줄 정도로 우호적이었습니다. 모차르트도 살리에리의 음악이 모든 공연을 가져가서 벌이가 막막하다고 괴로워하며 아버지에게 투덜댔다고 하니 사실 모차르트 시대에는 살리에르가 갑甲이었던 셈입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은 또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천재였고 게다가 연습벌레였다는 사실입니다. 모차르트는 “사람들은 내가 쉽게 작품을 쓴다고 착각하지만 선배들의 음악 가운데 내가 연구하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연습도 없이 공짜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파가니니 이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히는 스페인 출신의 연주가 겸 작곡가 파블로 데 사라사테(1844-1908)는 바이올린의 모든 기교를 완벽하게 사용하는 연주자로도 명성이 높습니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그를 타고난 천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정작 사라사테는 그런 명성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노력하는 것은 모르고 그 실력이 그냥 하늘에서 주어진 것으로 안다는 게 사라사테의 불만이었습니다. ‘천재’는 지독한 연습으로 만들어진 끈기 있는 보통 사람의 뒷모습입니다.     


"37년 동안 하루 14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습했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천재라고 부른다."    (사라사테)    


취미로 베이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2년 동안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도 빼지 않고 크로매틱 스케일이라는 연습을 합니다. 기타의 1번 프랫부터 4번 프랫까지 네 손가락을 번갈아 짚으며 소리를 냅니다. 1-2-3-4의 순서에서 시작해서 1-2-4-3, 1-3-2-4, 1-3-4-2로 손가락 순서를 바꿔가며 4-3-2-1로 줄을 튕긴 다음 아랫줄로 넘어가 똑같은 연습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첫 번째 줄 첫 번째 프랫에서 시작한 연습을 마지막 줄 마지막 프랫까지 반복하면 비로소 한 사이클이 완성되죠. 이 연습은 연주자가 빠르게 지판을 눌러 정확한 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줍니다.     


피아노 연주자들도 매일 하농(Hanon)과 캐논(Canon)을 연습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런 연습을 하는 것은 연주 기교를 무뎌지지 않게 유지하거나 향상해주기 때문입니다. 작가 중에도 이런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좋은 글은 그 자체로 감상하기에 좋을 뿐 아니라 글쓰기에 필요한 리듬을 유지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연습으로 ‘문장 수집’을 권합니다. 좋은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할 필요는 없지만, 좋은 구절을 따로 뽑아 두고 틈틈이 베껴 쓰는 것은 정신적인 안정에도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작품 소재를 찾는 방법으로 이만큼 쉽고 확실한 것이 없으므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문장 수집’을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합니다.     


아침에는 일종의 루틴처럼 ‘필사筆寫’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워드 파일에 타이핑을 한다. ‘의식의 따라감 없이 관절의 움직임만으로 시간이 채워지는 충만함을 느껴보는 것’이다.... 약 6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필사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독서의 한 과정이 되었다.   (이유미, 『문장 수집가, 소설에서 카피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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