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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영준 Nov 20. 2020

글쓰기법칙

15_속내를 숨긴 글

건조한 글을 읽어야 건조한 글쓰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도자료 글쓰기는 상당히 건조하지만 그런 건조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오히려 감상적인 글 읽기가 도움될 때가 많습니다. 건조한 글을 쓰기 위해 소설과 시를 읽는 작가도 있습니다. 건조함은 감성을 절제해서 얻어지는 것이지 감성을 배제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글은 읽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런 수분도 없는 나무껍질을 씹는 느낌이랄까요. 독자를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감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동을 끝까지 내면으로 갈무리해야 합니다. 감동보다 저 깊은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캐나다에서 커뮤니케이션/마케팅 회사에 다닐 때 회사 근무를 마치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들르던 동양요리 퓨전음식점과 카페가 몇 군데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역역스코미디클럽’이라는 곳인데 여기서는 밤마다 한 시간짜리 스탠딩 코미디 공연이 열립니다. 점잖은 것부터 B급 코미디까지 프로그램도 다양합니다. 내가 생활했던 캐나다의 텔레비전 방송은 우리나라보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많지 않습니다. 좀 수위 높은 코미디를 보려면 코미디클럽에 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나는 이따금 저녁때 친구들과 약속을 여기서 잡아 저녁식사부터 한 곳에서 해결하곤 했습니다. 친하다고는 해도 오랜 시간 마주 앉아할 말이 그리 많지 않은 친구들과의 만남 장소로는 이런 공연이 있는 곳이 아주 편리합니다.  

   

코미디클럽 무대에 오르는 공연자는 코미디 공연을 전업으로 하는 이도 있지만, 낮 시간에는 다른 직장을 다니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만 공연하는 투잡족도 있습니다. 코미디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관객을 웃게 만들면서도 공연자 본인은 절대로 웃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코미디 프로그램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코미디는 설정극設定劇이 많습니다. 설정극은 출연자가 먼저 웃으면 설정 자체가 깨어져 버립니다. 설정이 깨어지면 관객의 몰입도가 떨어집니다. 설정극 속의 코미디언은 감정을 절제하고 상황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글 속에서 작가의 감정을 너무 드러나면 독자는 감동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설명하고 묘사하면, 독자는 글을 머릿속에 상황의 이미지를 그려냅니다. 그리고 그 설명이 감동하기에 합당할 때 비로소 감동을 느낍니다. 작가의 감정이 드러나는 글은 작가의 한풀이에 불과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있는 많은 글은 대부분 이런 감정풀이 글입니다.    

 

글을 제대로 쓰려는 작가는 상황을 독자가 상황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해야 합니다. 묘사에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작가의 입장이 표현되고 독자의 감정을 유도합니다. 작가는 설명하고, 그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지요. 좋은 글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좋은 글이 어떤 것이냐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기보다 상황에 맞는 글이라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어떤 경우에는 단어 한두 개 만으로도 좋은 글을 쓸 수도 있으니 글의 길이도 좋은 글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글은 경제적으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가급적 길지 않을 때 더 좋은 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것이 좋은 글이다 하는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적합하고 작가의 리듬에 맞아야 좋은 글이 된다는 말이 정답일 것 같습니다. 한 마디 덧붙인다면, “어떤 글이 좋은 글이라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어떤 글이 나쁜 글이냐고 묻는다면 명확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작가의 감정이 글 속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글은 모두 나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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