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_칠조어론
글에는 고유한 리듬이 있습니다. 리듬은 글을 읽는 것을 수월하게 만들어줍니다. 과거에는 리듬을 형식으로 정해둔 경우도 있었죠. 한시漢詩의 경우 고체시古體詩는 글자 수에 따라 사언고시, 오언고시, 칠언고시 등으로 나누었고, 당나라 때부터 유행한 근체시의 경우도 한 수가 네 구로 된 절구絶句가 발달했습니다. 한 수가 네 구로 되면 절구라고 했고, 여덟 구로 된 것은 율시, 열두 구 이상으로 된 것은 배율排律이라고 했습니다. 서양에서도 라임을 맞추는 표현으로 리듬감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글자의 수에 일정한 제한을 두어 글의 리듬을 살리곤 했습니다. 글에서 리듬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나는 글의 리듬감을 익히기 위해 박상융의 소설 『칠조어론七祖語論』을 이따금 읽습니다. 『칠조어론』에는 전통 신화와 무속巫俗의 시선視線이 녹아 있죠. 이 책은 문체가 특이해서 처음에는 쉽게 읽히지 않지만 분석적으로 읽지 않고 글의 리듬을 느끼다 보면 소설 읽기가 일종의 ‘휴식’이 될 수 있음을 느낍니다.
대기업 홍보실에 근무하는 C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은 그럴듯한 거짓’이라는 부정적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C 씨는 정기적으로 글쓰기를 하면서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 일부러 소설을 찾아 읽습니다. 그는 소설을 통해 스토리텔링의 ‘힘’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七祖語論』 스타일이 불편하다면 다른 소설도 좋습니다. 행복하게 빠져들어 읽을 수 있다면 어떤 소설도 상관없습니다. 보도자료를 쓰기 전이라면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기욤 뮈소의 소설을 읽는 것도 추천할 만합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이나 수필집 『라면을 끓이며』와 『자전거 여행』은 제가 누구에게라도 추천하는 책입니다. 김훈의 소설은 단문이 많은 명문名文입니다. 문장을 많이 꾸미지 않을수록 강한 힘을 품는다는 것을 김훈의 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보도자료> 스타일도 대개 단문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긴 글을 쓰기 위해 짧은 리듬의 글을 읽고, 짧은 글을 쓸 때는 장편소설을 읽곤 합니다. 좋은 소설가의 글은 뚜렷한 리듬을 담고 있습니다. 리듬이 있는 글이 쉽게 읽히죠. 출판업자들은 그런 책을 ‘책 넘김이 좋다.’라고 합니다. 책이 술술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장편소설의 복잡한 스토리라인이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은 스토리가 흥미진진해서이기도 하지만 글의 리듬이 경쾌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욤 뮈소의 만연체 문장을 읽는 것은 <보도자료>처럼 단문을 쓰기 전에 좋은 '몸풀기 독서'가 됩니다. 흰색을 바라보다 검은색을 보면 검정이 더욱 검게 보이는 데, 이것은 색의 대비 효과 때문입니다. 문장도 대비 효과의 덕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