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영준 Dec 03. 2020

글쓰기법칙

17_필사와 문장 수집

명문名文을 넘어서는 묘문妙文을 가급적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나는 책을 읽다가  훌륭한 글을 발견하면 노트에 옮겨 두었다가 적절한 글 연습 재료로 삼곤 하죠. 명문은 그 자체로 “참 잘 쓴 글이다.”라는 찬탄讚歎을 자아냅니다. 매일 책을 읽고 좋은 글을 찾아내는 것은 피아니스트가 매일 하농과 캐논을 연습하듯, 작가가 매일 해야 하는 일입니다. 좋은 글을 수집하는 일이 바로 작가가 하루도 거르지 않아야 할 일입니다. 좋은 글은 아름답습니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그런 아름다운 문장의 향연饗宴입니다. 나는 책을 읽다가 만나는 기막히게 좋은 글을 ‘묘문妙文’이라고 부릅니다. 묘문妙文은 사전에서는 “매우 뛰어난 문장”이라고 풀어놓고 있는데, 나는 묘문을  ‘기가 막힌 글’이라고 정의합니다. 별 것 아닌 듯 무심하고 조촐한 단어를 단조롭게 나열해 놓았을 뿐인데도 잘 읽어보면 이보다 더 적합하게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찬사讚辭가 저절로 나오는 글이 바로 묘문입니다. 그런 글은 마치 서너 수 앞을 내다보는 바둑고수의 행마行馬처럼 기묘합니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해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남이 써놓은 글을 베끼곤 했습니다. 많은 소설가 지망생이 황순원의 『소나기』를 필사筆寫하죠. 황순원의 문체를 체득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입니다. 『소나기』를 백 번 넘게 필사한 작가도 있다고 합니다. 유명 작가의 글을 필사하는 노력은 그저 연습演習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가 한 백 번 넘는 아마도 필사는 종교적 리추얼ritual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가들은 선배 작가의 빼어난 문체를 가지고 싶어 합니다. 좋은 글을 필사하는 연습 작가의 모습에서 용감한 적의 심장을 먹으며 용사의 영혼이 자신의 몸에 깃들기를 기원하는 원시부족 전사戰士의 바람과 같은 간절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소나기』는 어린이의 시선에서 느끼는 따뜻하고 아련한 첫사랑의 조심스러움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황순원의 문체에는 단순하면서도 부족하지 않게 풍부한 감정이 우러나지요. 그의 문체는 단조롭고 담담하게 써 나가다가도 어느 부분에서는 울컥하는 감정을 일으키곤 합니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절제되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독자의 감정을 더 강하게 자극합니다. 그의 글은 작가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만합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다른 작가의 글을 베끼는 연습을 권하지 않습니다.      


다른 작가의 글을 필사한다고 해서 그가 글 속에서 만들어 낸 감동이 그대로 만들어진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문장은 소재인 『소나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글의 잔잔한 감동은 작가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단어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콘텍스트입니다. 감동은 글이 묘사하는 상황이나 서술 순서, 스토리의 전개에서 만들어집니다. 물론 좋은 글을 필사하는 것이 아무 소용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필사筆寫는 분명히 작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소설 작품 한 편을 반복해 필사를 할 정도로 좋은 문장을 체득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는 작가라면 반드시 언젠가는 그런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은 더 이상 황순원 소설을 필사하지 않지만, 여러 사람의 글을 수집해 두었다가 수시로 다시 읽고 베껴 쓰기는 계속합니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면 줄을 긋고 노트에 옮겨 적었다가 시간이 될 때 워드로 쳐서 간직합니다. 내가 고른 좋은 문장은 장황하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김동리의 소설처럼 만연체 문장도 아닙니다. 바둑이나 장기에서 몇 수 앞을 내다보며 두는 고수의 행마처럼 좋은 문장은 경쾌한 리듬이 있습니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이 좋은 문장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한 문장이라도 독자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 이상 다른 말로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적절하게 묘사된 한 마디 글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것이 좋은 문장의 힘이지요.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책에서는 어떤 문장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하게 됩니다. 전에는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지금은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습니다. 자기 계발서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소설은 상황을 설명하는 글로 가득합니다. 좀 더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의 땀이 배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자기 계발서의 문장은 밋밋합니다. 많은 설명과 묘사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어떤 책에서는 한 마디도 그런 묘문妙文을 건지지 못합니다. 나는 하루에 한 마디가 아니라 열흘에 한 마디라도 그런 문장을 건질 수 있다면 낚시꾼이 월척越尺을 낚은 것처럼 기쁩니다.     


좋은 작가의 글을 통째로 베끼기보다는 좋은 문장의 부분을 따로 적어 멋진 표현방식을 수집하는 것이 낫습니다. 누구의 것이라도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노트에 적어 두고 (누가 쓴 어떤 책에서 발견한 문장이라고 함께 적어두면 나중에 사용할 때 편리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필사하며 외우다 보면 스스로 문장력이 늘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요즘 서점에는 좋은 문장만 모아 엮은 책이 나와 있습니다. 말하자면 198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명언집’이란 것이 이런 종류인데, 남이 찾아 놓은 글로 채워진 이런 책을 구매하는 것보다는 작가 스스로 그런 노트를 한 권쯤 만드는 것을 더 낫습니다. 좋은 문장을 적어 둘 때는 그 문장뿐 아니라 그 문장을 발견했을 때의 감동이 함께 노트에 묻어 둡니다. 남이 찾은 명문名文에는 그 문장을 찾으면서 느꼈던 그런 감동이 없습니다. 맥락을 알 수 없이 한두 줄로 된 문장이기 때문에 어째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없을 때가 많지요. 쉽게 얻은 것은 아무리 양이 많더라도 내가 힘들여 찾은 것만 못합니다. 좋은 문장을 수집할 때도 이 말은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법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