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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영준 Dec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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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_소설의 힘

'소설은 그럴듯한 가상 스토리'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최근까지도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그럴듯하다'라는 표현에는 속이려는 의도가 있음을 말하고 있고, '가상'이라는 '거짓'이라는 개념과 통합니다. 말하자면 '소설'은 '거짓'이므로 그런 '거짓'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신 '사실'을 다룬 전공서적이나 인문학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얼마나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 책장의 책은 계속 바뀝니다. 새로 나온 책 가운데 꼭 읽고 싶은 책은 알라딘이나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주문하기도 하고, 매주 한 번은 들르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새로 사 온 책은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마음이 내키면 읽기 시작하기 때문에 책장에 있던 책은 책상 위로 옮겨집니다. 책을 다 읽으면 박스에 넣어 두었다가 다른 책과 함께 단단히 묶여 보관합니다. 책값이 부담스러운  요즘은 중고서점을 많이 찾습니다.  요즘 중고서점은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책의 보관상태도 괜찮은 편입니다. 또 '중고서점'에는 지금은 절판된 책이 많아, 잘만 고르면 이따금 횡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년쯤 전에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을 사려고 했는데 그 책이 절판이 되어 난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온라인 중고서적에 한 권이 있었는데, 새책 정가 1만 원인 그 책에 무려 15만 원 넘는 가격이 붙어 있었습니다. 선뜻 사기 어려운 값이었습니다. 3만 원 정도라면 중고책이라도 살 의사가 있었지만 15만 원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 책 원저자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어 재출판 의사를 물어본 적도 있는데, 그는 증보판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그게 언제쯤 완성될지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 책 사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 책'을 우연히 중고서적 알라딘에서 본 겁니다. 그것도 원가의 절반인 5천 원에 말이죠. 그날은 정말 횡재한 느낌이었습니다.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기 시작하면서 소설도 좀 더 읽기 시작했습니다. 새 책 값의 절반 이하로 살 수 있는 중고서점에서 소설을 사는 것은 부담도 되지 않았고, 필요한 책 여러 권에 소설 한 권쯤 끼워 사는 것도 그리 망설여지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후 나는 소설 읽기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작가 김훈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난중일기>에 기초한 이순신 장군에 관한 소설 <칼의 노래>는 이미 읽었지만 천재 음악가 우륵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현의 노래>가 그 소설입니다. 김 작가의 수필도 몇 권 읽었습니다. 특히 <라면을 끓이며>는 절절한 삶의 서글픔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존엄성은 잃지 않는 품위 있는 글이었습니다. 외국 작가의 소설로는 <개미>의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것이나 요즘 한참 유행인 귀욤 뮈소의 소설도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한 일본 소설가들의 작품도 무척 좋았습니다. 비소설류가 주로 팩트에 대해서 말한다면, 소설은 감정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 줄거리만 보는 것은 소설을 제대로 읽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의 고통과 행복을 표현한 것이나,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글로 옮겨 놓은 부분은 그것이 전체 줄거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주의를 기울여 읽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전에도 이야기했듯 나는 책을 읽으면서 노트를 하는 편인데, 요즘은 소설에서 발견한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행복감을 느낍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기발한 표현들은 언젠가는 내가 쓰는 책에서도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거든요.      


KBS 드라마 <본 어게인>의 작가인 정수미는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마흔이 넘어서 다시 이따금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인데, 수미는 나와 통화를 끊으면서 "이번 대화도 유익했어. 다음 회 드라마에 쓸 대사를 건졌거든."이라고 말합니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그걸 드라마 다음 회에서 주인공의 대사로 쓰겠다고 합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대화나 벽의 낙서에서도 인생의 묘미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작가가 고심 끝에 쓴 소설에 보석 같은 표현이 가득 박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보석은 찾는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산삼을 찾는 심마니 눈에는 산삼의 작은 이파리가 보이고, 조상의 유물을 찾는 이는 길 가에 굴러다니던 돌멩이 무더기에서 구석기시대 주먹도끼를 발견합니다.     


글을 찾는 사람의 눈에는 좋은 글이 보입니다. 더구나 실용서는 '사실'이나 '일화', '데이터'를 가지고 말합니다. "A는 B입니다."라는 구조의 문장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사람의 생활과 마음, 감정을 다룹니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설명이 쉬운 것은 없습니다. '감정'에 대한 것을 단어 한두 개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한두 단어, 한두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그려내기 위해 소설 작가들은 다양한 문장과 수사법을 동원합니다. 소설은 그런 다양한 노력이 들어간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온갖 표현과 기교의 백과사전인 셈입니다. 나는 이제 소설을 즐겁게 읽습니다. 시간이 아깝다며 소설을 읽지 않기로 했던 마음의 빗장이 풀려버리면서 국내소설과 번역소설을 많이 사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 책상에는 박상륭의 책이 펼쳐져 있습니다. 박상륭의 만연체 문장을 옮겨 적으려면 여간한 고역이 아니지만 이것도 또한 즐거운 노동입니다. 언젠가는 또 다른 문장 속에서 빛날 원석을 캐어낸 셈이니까 말이죠.     


소설을 읽을 때는 '줄거리'를 통해서 스토리텔링을 듣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장 하나하나에서 매력을 찾아 느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소설은 독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면 그게 무엇이든 좋습니다. 스토리가 너무 재미있어서 술술 읽혀 넘어가더라도 잠깐씩 멈춰 서서 문장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 줄거리만 읽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겁니다. 지금 소설을 읽는 분들은 그 소설을 계속 읽으셔도 됩니다. 한두 권 추천해달라고 하신다면 기담 소설을 한 번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조선의 홍길동전도 좋고, 청나라 사람 포송령이 쓴 『요재지이』도 좋습니다. 이런 기담류는 요즘 말하면 판타지 소설에 속할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스토리 배경에서 독자들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소설 말고 다른 책이라면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도 좋은 읽을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 역사는 그 이후에 만들어진 온갖 이야기에 영감을 주었으니까요. 서양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성서를 읽어 보는 것도 권합니다. 동양의 사고방식을 잘 담고 있는 불경이나 힌두 설화, 유럽 신화 등도 읽어 놓으면 좋은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나는 요즘 시친의 <지구 연대기>를 읽고 있습니다. 인류 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사실은 외계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내용의 책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시친의 글이 단지 해괴한 그의 상상을 담아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읽어 보니 나름 꽤나 진지한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역사 구성이었습니다. 시친의 책은 수메르 유적지에서 파낸 점토판을 해석한 끝에 만들어졌다고 하니까 그저 황당무계하다고 여기기만 할 것은 아닌 듯도 합니다. 특히 <지구 연대기>는 영화 <프로메테우스>에도 영감을 주었다고 해서 유명합니다. 조지 웰스 류의 공상과학 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는 아마 그 책의 진지한 서술방식에 실망하게 될 수 있지만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주장을 접하면서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독서의 목적은 '새로운 시각'을 얻는 겁니다. 각종 신화의 설화 등은 매우 좋은 읽을거리입니다. 그동안 자기 계발서에만 오랫동안 파묻혀 있었다면 잠시 눈을 들어 역사, 신화에 관한 책이나 소설을 읽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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