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일기

어리다, 어려

2019년 1월 16일

by 제인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 싫다. 사람을 부리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더 싫다. 거기다 인정없는 사람은 더 더욱 싫다. 바로 여기 사장. 친해질 일도 없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런 류의 사람은 늘 멀리두고 싶다. 여지껏 살면서 이런 상향의 사람들은 주변에 아는 지인으로도 안놨다. 제대로 걸렀지. 눈 앞의 이익만 보는 사람, 자신이 최고인 사람,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뒤에서 씹는 사람. 욕하는데에 내 시간을 할애하는 것 조차 싫다. 그냥 거른다. 그냥 눈 감고 넘어가주질 못하겠다. 싫은 건 싫은 거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나.


엄마는 저녁 약속, 아빠는 야근으로 나와 동생은 목살스테이크를 해먹기로 했다. (사실 제안은 내가 했고 동생은 토를 달지 않은 것일 뿐이지만) 그러다 엄마가 약속이 취소됐다고 집으로 온다고 하니까 얼마나 반가운지. 역시 집에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 우리 엄마 너무 좋아. 엄마가 사고 내가 구웠다. 동생은 옆에서 왜이렇게 잔소리를 해대는지 그럼 지가 해먹지! 같은 식탁, 같은 집인데 엄마의 존재유무가 이렇게나 큰 영향을 미친다. 언제 독립하고 언제 결혼해서 언제 엄마와 헤어지게 될까. 벌써 어지럽고 눈가가 빨개진다. 인정한다. 난 서른이 된 지금도 어리다.


갑자기 나의 어린 이십대를 점령했던 싸이월드가 생각맜다. 오랜만에 로그인하니 나의 이십대 초반이 가득 담겨있다. 페이스북이 나오기 전, 우리는 도토리를 사고 홈에 bgm을 깔곤 했다. bgm으로 싸이 주인의 음악 취향과 센스를 알 수 있었다. 온갖 감성과 중2병이 난무하던 그 시대의 내 다이어리를 열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제대로 열어버렸다. 성인이 되고 친구들과 남이섬에 놀러가 양 옆방 커플의 우렁찬 소음(?)에 지배당한 우리가 있었고, 태양의 컴백을 기다리던 나, 스물두살 주제에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듣고 울던 내가 있었다. 지금 와 돌아보니 어리다 어려. 몇 년 후의 나도 지금의 내 서른기록을

보며 이렇게 얘기하려나. "어리다, 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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