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7일
가장 오래된 친구로부터 청첩장을 받았다. 내가 전학을 가고 서로 사는 곳이 계속 달라졌지만 꾸준히 인연이 닿았다. 끊길 법한데 끊어지지않는 것이 진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이어져있는 관계는 운명이라고 말이다.
인사동에 있는 관훈맨션에서 저녁을 먹었다. 8090의 경양식집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곳에서 친구의 청첩장을 건네받았다. 주된 이야기의 주제는 결혼준비와 예비 시어머니다.
청첩장 맨 앞면에는 보라색 수국이 작게 박혀있었다. '진심'이라는 꽃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렇지, 결혼이라는 21세기에는 말도 안되는 제도와 여자에게는 너무나 부조리한 현실이 '진심' 하나로 다 봐줄만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 진심이 있으면 어떤 역경도 상대와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 콩깍지가 씌어버리는 것. 이렇게 진심이 통하는 나의 상대는 어디에 있을까. 나의 청첩장에는 어떤 상대의 이름과 어떤 꽃말이 어울릴까. 절대 예상할 수 없어서 묘한 기분이 올라온다.
얼마전 친구와 대화를 주고 받다가 상대가 가졌으면 하는 조건을 딱 세가지로만 요약해보자고 했다.
나 SSS (Sweet Smart Sexy)
친구 TFS (Tall Funny Sensitive)
나는 다정하고 지적이고 섹시했으면, 친구는 키가 크고 재밌고 감성적인 사람이었으면 했다. 확연히 다른 취향이다. 저정도는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다고 쉽게 생각해버릴 수 있지만 역시 사소한 한 끗에서 우주가 흔들릴만한 차이가 발생한다. 이 한 끗이 연애, 결혼 이 모든 중대한 일을 결정하게 만든다.
다정과 감성은 다르다. 키와 같은 외적 조건은 정확한 수치로 정해져있는 것이지만 다정함이라든지 자상함이라든지 이런 것은 개개인의 포인트가 다르다. 감성도 어떤 감성이냐에 따라 다르고, 결국은 조건을 갖췄어도 그 조건이 누군가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나의 트리플에스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제일 먼저 다정해야 한다. 나의 다정의 조건은 '말투'와 '사용 단어'이다. 일단 사용하는 단어의 따스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단어를 다정한 어투로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종일 뭐했어?" 이 간단한 문장을 나의 다정함으로 바꾸면 "오늘 하루 뭐하고 지냈어?"이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한 끗이다. 이런 남자가 나타나면 난 주저하지 않고 청첩장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언젠가는 전해볼 수 있겠지, 내 청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