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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15. 2019

아빠랑 싸울 때

2019년 11월 24일

평생을 의류 사업에 종사하신 아빠. 재단부터 제작, 유통까지 이 분야에서 짬바(?)가 있는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옷을 사고 입을 때마다 아빠 눈치를 항상 본다. 핏이 어설프거나 재봉선이 잘못되어있거나 하면 그냥 넘어가지를 못한다. 꼭 한 마디씩 거든다. 나는 이쁘다고 사서 나름 마음에 드는데 별로라는 소리를 들어버리면 기분도 별로인 데다 정말 이상한가 싶은 마음에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그래도 아빠 의견 무시하고 옷은 다 자기의 스타일대로 입는 거다. 이게 품이 작게 입어야 스타일이 사는 옷이라도 크게 입고 싶으면 내 마음대로 입는 거지. 괜히 더 입씨름에서 이기려 한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만나서 거금을 주고 샀다. 집에서 입어보고 있는데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눈에 훤한 아빠의 표정. 아니나 다를까 기장이 어떻니, 품이 어떻지 저쨌니, 이렇게 만들어놓고 그렇게 비싸게 팔았니 어쨌니. 하. 한숨이 푹 나온다. 우기고 우겨서 입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고 방에 오니 영 마음이 안 간다. 이걸 입을 때마다 아빠가 별로 안 이쁘다고 생각할 걸 아니까 짜증이 나서 반품 신청을 해버렸다. 나쁜 말은 다해놓고 꼭 마지막엔 너 입고 싶으면 입어란다. 그게 뭐야. 병 주고 약 줘?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엄마랑 쇼핑 갔다가 또 마음에 드는 옷을 더 거금을 주고 구매했다. 마음에 드는 옷을 만났을 때, 고민하지 않고 바로 구매할 때의 그 짜릿함 다들 알 거다. 이러려고 돈 버는 느낌 있잖나. 자 이제 기분이 좋으니 두 번째 관문이 남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빠. 나 옷 샀어! 봐줘!"라고 선전포고를 하니 나를 빤히 보던 아빠가 하는 말. "아니... 안 볼래. 나 너랑 싸우기 싫어." 으하하. 아빠도 알고 있었던 거다. 우리가 맨날 옷으로 입씨름한다는 것을. 입고 나와 아빠 앞에 섰다. 괜찮다고 한다. 이렇게 가끔 괜찮다고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오히려 더 믿기가 힘들다. 나랑 싸우지 않으려고 거짓말하는 건 아닐까? 아빠가 이쁘다고 말해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이 옷은 나의 것. 앞으로 예뻐해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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