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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03. 2019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2019년 11월 18일

마츠코,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관객인 내가 그녀에게 달려가 말해주려 할 때, 그녀는 스스로 주문을 건다. "마츠코, 괜찮아."라고.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이전에 불량공주 모모코가 있었다. 이후엔 고백과 갈증을 연달아 히트시킨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의 대표 작품. 이 사람만큼 독특한 감독이 있을까. 나카시마 테츠야가 가진 독특함은 예술을 일상으로 치환시키는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그만의 표현 방식. 진지한 이야기를 무겁게 하지 않고 어쩌면 말도 안 되게 메스껍고 불편한 이야기들을 편하게 전하는 데에 있어서는 나카시마 테츠야를 넘어설 사람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스타일리시해.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가 기억이 난다. 제목에 홀렸고 포스터에 낚이고 뮤지컬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장르까지 세 번 낚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나를 이렇게나 낚아줘서 고맙다고 백번이고 절하고 싶었던 영화였다. 이 영화는 이상하게 가끔 생각나는 영화다. 그럴 때마다 봐도 지루하지 않다. 러닝타임도 두 시간이 넘어가지만 단 1분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모든 장면들이 그림이고 모든 대사들이 의미 있다. 


'어릴 땐 누구나 자기 미래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어른이 되면 자기 생각대로 되는 일 따윈 하나도 없이 늘 괴롭고, 한심하기만 하죠.'


아마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까. 마츠코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동시에 우리가 할 수 없었던 맹목적인 사랑을 갈구한다. 버림받고 또 버려지고 자신을 병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오직 사랑 하나만으로 자신에게 모진 사람들을 용서한다. 어쩌면 그녀는 사람이 아니라 성자일 수도. 


'인생의 가치는 말이야. 다른 사람에게 뭘 받았는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뭘 주었는가로 정해지는 거야.'


그래서 마츠코가 그랬나 보다. 모든 사람에게 진심이고 모든 순간에 자신의 전부를 던지는 그런 사람. 그런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여기서 더 이상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 싶을 때, 자신을 내던지는 그런 사람. 용감하지 않아서 용감한 사람. 잃을 게 없어서 무모한 사람. 그래서 받지 못하고 주기만 하는 사람. 마지막에 정말 그녀가 바닥에 다다랐을 때 도움을 주려는 소중한 옛 친구가 건네는 명함을 받아 들었을 때, 마츠코는 주기만 하는 삶에서 벗어나 누군가에게 받기도 하는 존재가 되려 했을 때, 그녀는 죽고 만다. 그렇게 예쁜 사람이 자신을 혐오하게 만든 세상이 그리고 사랑이 잔인하다. 우리 모두는 참 혐오스러운 세상에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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