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일기

참 달라진 명절

2019년 2월 4일

by 제인

내 어릴 적의 명절과 오늘날의 명절. 20년 만에 참 많이도 달라졌다. 나의 '시골' 당진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찾지 않은지 5년이 넘었다. 어릴 적 명절이 생각난다. 확실하게 해 두고 가지만 그립지는 않다. 거의 반나절을 차 속에서 시달리던 귀경길, 꽉 막힌 도로에 서서 먹는 김밥, 과일 등의 주전부리는 참 맛있었지. 당진에 가면 반갑게 맞아주시던 할머니의 얼굴. 할아버지와는 땔감 앞에 앉아서 키우시던 백구 얘기를 했다. 백구가 새끼를 낳으면 나를 주신다고 했는데 아빠의 반대로 결국 못 가져봤다. 어릴 때는 큰 고모가 끼고 있던 반지가 그럴게 예뻐 보였다. 자줏빛의 루비였는데 명절에 만날 때마다 내가 커서 이 반지가 손에 맞는 날이 오면 주겠다고 해서 매년 반지를 껴본 기억이 있다. 동생은 애기 때라서 불쏘시개로 장난치다가 불에 덴 기억. 할머니가 직접 두부를 만드시다가 솓에 신발을 빠뜨리고는 모르쇠로 일관했던 웃긴 장면들. 다 같이, 아니 이 가족의 여성들은 부엌에 모여 전을 부치고 남성들은 안방에서 티브이를 보던 기억이 난다. 엄마를 도와주고 있을 때면 늘 듣던 말까지도.


"이쁘게 부쳐야 시집가지."


참 이상한 말과 이상한 장면이다. 나의 엄마, 지금부터 그녀라고 칭하겠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결혼해 이 가족이 되었다. 부엌에서 전을 부치고 상을 차리려 결혼을 한 걸까. 그나마 요즘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저 말이 너무 생생하다. 그래도 나의 그녀는 "너 하지 말고 가서 오빠들이랑 놀아"라고 말해주었다.


누군가에겐 즐겁고 누군가에겐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 신나지만 누군가에겐 참 가혹한 것이 명절이다. 나에게 명절은 가혹할 것도 없고 즐겁지도 않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쉬는 날 정도의 의미이다. 우리 4인 가족 외의 사람들은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굉장히 매정하게 들릴 순 있겠지만 사실이다. 명절이 없었다면 한 번도 얼굴을 보지 않을 사람들이 어떻게 내 경계 안에 들어올 수가 있을까. 매일 대화를 나누고 만남을 가지는 주변인들도 서로에 대해 알기가 힘들고 흘러가는 상황을 백 퍼센트 알지는 못한다. 근데 일 년에 한 번 보면 자주 보는 사람들이 대체 뭘 안다고 늘 불필요한 조언이며 시간낭비인 잔소리를 늘어놓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생각할수록 참 웃긴 장면이다. 이쯤 되면 모두가 싫어하는 명절은 왜 아직도 우리 곁에 붙어 있나 모르겠다. 내 어릴 적 명절의 좋은 장면들은 잊으래야 잊히지 않는다. 나쁜 장면들은 벌써 머릿속에서 사라졌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명절을 폄하하여 미안하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견해이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이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과거엔 슬픈 명절이었으나 점차 바뀌고 있듯 우리 모두 좀 더 명절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가길. 얼굴만 붉히는 불필요한 훈계가 아닌 서로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주는 날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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