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2일
줄거리는 모르고 갔다. 포스터와 이 영화를 향해 쏟아지는 찬사들만 보았다. 가버나움은 실제 이스라엘의 마을로 예수가 많은 기적을 행하였지만 나중에는 마을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아 저주의 땅이 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빈민촌에서 시작한다. 아이들이 무차별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착취당하고 있다. 이 아이들의 주변에는 어른들이 있지만 그 아무도 이 상황의 '이상함'을 묻지 않는다. 아이가 길에서 물건을 팔아도, 약물 주스를 팔아도, 부모에게 맞아도, 여자아이가 나이 많은 남자에게 닭 몇 마리와 몇 푼에 물물교환을 당해도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고작 열 살, 열두 살이다. 어떻게 이 현실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모든 이상함은 실제이며 과거가 아니다. 현재 나와 같은 시간에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아동착취가 만연하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이집트,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이런 광경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처음에는 마음이 아팠다. 고작 500원짜리 팔찌를 사달라고 매달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불쌍했다. 한 달이 지나고 짜증 나기 시작했다. '너의 가난이 내 탓은 아니잖아. 왜 나한테 돈을 달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고 물건도 사주지 않았다. 달라붙는 아이들을 철저하게 무시했고 내 팔을 잡는 말라비틀어진 아이의 팔을 매정하게 뿌리친 적도 있다. 아이는 사랑받아야 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잘못을 해도 혼나지 않는 아이가 있다.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잘못 태어났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걸까. 왜 모든 불행은 모두가 함께 나눠가져야 할 몫이 아니라 혼자 짊어져야 하는 비극인 걸까.
"인생이 좆같아요."
자인이 마지막 법정에서 하는 말이다. 앞서 보여준 난민과 여성들의 현실은 슬프다기보다는 잔인했다. 자인의 여동생인 사하라의 매매혼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눈물이 나오는 슬픔이 아니라 화가 나는 참담함이었다. 그러다 자인이 인생이 좆같아요, 이건 지옥이잖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 펑하고 터졌다. 저 조그만 아이가 사랑받아본 적도 배불리 먹은 적도 원하는 것을 가져본 적도 없다는 것이 끔찍하게도 내 심장을 때려왔다. 고작 12년밖에 살지 않은 아이가 인생이 지옥이라고, 좆같다고 표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불행을 몸으로 겪었을까.
난민 문제는 고민이 필요하다. 나도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주장을 할 수 없다. 이 영화는 난민이 주인공이지만 비단 난민에게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결국 불행한 상황에서 제일 먼저 삶을 잃는 존재는 아이와 여성이라는 것과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쳤던 문제들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우리가 보고 지나쳤던 장면들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인간의 무관심이 사회를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쁜 것, 더러운 것들은 철저하게 외면해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 또한 우리의 현실이며 나는 운 좋게 그 지옥 같은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은 것뿐이다. 운이 좋았던 우리는 불운한 사람들을 적어도 외면하지는 않아야 한다. 모두를 구해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은 하루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