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메이트

가장 사랑하는, 가장 사랑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 나의 전부를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에게 만큼은 사랑 받고 싶기에 그에게는 나의 나쁜 모습이 보일까봐 전전긍긍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결국 공허하고 외로워진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에게 만큼은 나의 전부를 보여야 한다. 찌질한 모습, 망설이는 모습, 살짝 비겁해지는 모습, 이기적인 모습 등. 우리 자신이 느끼기에 썩 매력적이지 않은, 하지만 우리 자신이 늘 느끼고 부끄러워하는 그런 우리 말이다.

소울메이트라는 말이 있다. 영혼이 통하는 관계라는 말이겠지. 서로를 백프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고 백프로 알 수도, 알 필요도 없겠지만 소울메이트라고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너를 이해해’

내가 감동으로 기억하는 순간은, 주름진 얼굴의 늘 무뚝뚝하던 경비 아저씨의 보일듯 말듯한 미소. 엄격하던 여선생님의 발그레해진 뺨.

무엇이든 의외의 모습을 그에게서 발견했을 때, 그가 나에게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허락했을 때, 우리가 서로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꼈을 때이다.

우리가 서로 가까워진다면, 세상에 계속 웃고 있는 사람도, 계속 화내고 있는 사람도, 계속 슬퍼만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언제나 나에게 웃음만 보여주던 그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보여줬다면, 그것은 내가 상처를 받을 일이 아니라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는 이제 나를 가깝게 느꼈기 때문에 그의 진심을 조금 내비친 것이다. 이 순간에 그를 내쳐 버린다면, 그는 이제 나에게 마음을 닫게 된다.

마찬가지로, 나의 슬픔, 나의 분노, 나의 불안함 이 모든 것들을 다 묻어둔 채, 그저 즐거움과 포용으로만 사람을 대하려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상대를 믿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니, 우리는 상대가 느꼈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도 그 느낌 안다.

이러한 구절을 보았다.

“기쁨은 사람을 멀어지게 하고 슬픔은 서로 가까워지게 한다.”

결국 사람을 한층 가까워지게 하는 것은 의외로 우리가 드러내기 가장 두려워 하는 부분을 드러냄으로써이다.

무조건 화날때마다 화내고 슬플 때마다 감정의 배출구로 사랑하는 그를 이용하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우리는 그를 그렇게 이용하고 싶지 않다. 간혹 나도 모르게 이용하게 되기도 하지만.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기본으로 적절한 말투와 과격하지 않은(?)행동으로 나의 감정을 그에게 표현하고,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그런 감정을 나에게 드디어 보였을 때 내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드디어 받아들여질 때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을 가질 때), 우리는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한걸음 나아간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결국 이것이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결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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