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생각은 이상한거라고,
넌 지금 충분히 감사한거라고,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다고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얼마나 추웠는지,
나는 영원히 이 공허함에서 살아갈 것 같은 절망의 늪에서 얼마나 오래 혼자 떠다녔는지 안다면,
객관적인 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이다.
그때, 너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고, 너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내가 나는 이런 생각과 마음 때문에 힘들다고, 사실은 당신과 잘 지내고 싶다고 먼저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내가 괜찮은 척 하지 않고, 억지로 웃지 않고,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나는 좀 달라졌을까.
객관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없다. 상황은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상황에 대한 내 해석은 통제할 수 있다. 그것도 온전히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누군가에게는(그게 한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어떤 것이든) 사랑 받는 존재라는 확신이 있어야, 상황을 사랑할 수 있는,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의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기왕이면, 누군가를 깍아내리면서 나는 너보다는 낫다는 우월감을 느끼기를 선택하기 보다는, 누군가를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면서 '나는 너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라는 건강한 자존감을 선택하자.
목적은 같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필요하고 사랑 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
어떤 방식으로 사랑 받을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지만, 어떤 방식이 더 효과적일지는 누구나 안다.
사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눈치가 아닌 배려를,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을,
경쟁이 아닌 협력을,
집착이 아닌 사랑을,
우리가 함께 하기에 세상은 더 아름다워진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