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한달에 한번 찾아오는 그 기간이 다가오는건지, 코로나로 인한 일년반동안의 애기 아빠의 부재 덕분인지(이건 더 좋은 거 같은데),
뭔지 모르지만 아이를 요며칠 아주 달달 볶았다.
아이가 밖에 비 오냐고 나와 어떻게든 소통을 하고 싶어하면,
"밖에 비 오는지 안 오는지 보면 몰라? 근데 엄마한테 왜 물어봐!" 하면 다섯살 아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언젠가 아이가 잠들기 전 나에게 그랬다.
"난 엄마가 화내도 안 무서워^^"
근데 그 순간 왠일인지 너무 고마웠다.
나 사실 너가 있어서 너무 행복해.
나 사실 너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 받은 느낌을 받았어.
나 너가 있어서 오늘도 웃을 수 있었어.
너는 나에게 그런 존재야.
나도 소중한 존재인가? 내 존재를 긍정하고 싶게 만들어 준 그런 존재. 아무도 신경 안 쓰던 먼지 같았던 나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준 너.
나에 대한 너의 관심이, 나를, 세상에 없었던 것만 같았던 나를, 내가 이 세상에 엄연히 있었던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켜준거야. 너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내 사랑을 바라는 너의 간절한 눈빛이.
그것이 나를 닦아줬어. 세상의 먼지에 쌓여 보이지 않던 나라는 존재를. 나를 바라는 너의 눈빛이.
그것이 단순한 너의 필요였는지, 그저 욕망이었는지, 사랑이었는지 난 몰라.
그저 너가 나를 발견해주었다는 것.
너가 나를 주목해주었다는 것.
그것이 나를 바꾼거야.
나 세상에 많이 화를 냈었어.
그것도 눈치 보면서 조용하게 분노했지.
착한 척 하지만 알고보면 사람을 못 믿기 때문에 착한 것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뭐 그런.
모르는 사람들은 착하다고 평하지만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런 얘기 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사람.
세상에 화를 내면서도 또 이런 나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말도 안되는 바램이 있었던 거 같아.
애기가 막 운다고 해서 우리가 애기가 무섭지 않은 것처럼. 그 모습이 어떨 때는 더 귀여운 것처럼. 그래서 우는 아기를 안아주고 싶은 것처럼.
어쩌면 내가 울고 화낼 때 나도 그렇게 누군가가 나를 봐주었으면. 안겨봤으면 싶었는지도.
그래서 막 울고 화냈는데 그러니까 상황이 더 심각해지더라. ㅎㅎ 내가 웃으면 모든게 평화로운 것 같은데 내가 화내고 우니까 상황은 더 심각해져.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았던 사람들도 나에게 등 돌리는 것 같고.
그런데도 난 또 너에게 화를 냈나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나의 짐을 같이 지어주고 싶은건가? 나 힘드니까 너가 좀 같이 나의 짐을 들어주길?
이런 내가 무섭겠지. 나를 이제 사랑해주지 않겠지.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 난 자꾸 왜 이럴까.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더 잘해줘야 하는데. 왜 난 소중함을 모를까. 등등 한심한 내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는데 너가 말해준거야.
내가 화내도 넌 무섭지 않다고.
왜 그때 너무 고마웠을까.
넌 왜 내가 무섭지 않다고 했을까.
너는 이미 나의 사랑을 언젠가 느껴봤기에?
이 모습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확신했기에?
우리 세상이 무섭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이 언젠가 나에게 많이 화를 내도,
세상이 나에게 주는 사랑을 단 한번이라도 느껴봤다면,
우리는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라는 확신으로 다시금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까?
다시 서로 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