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가스포어 megaspore Dec 09. 2022

책장에 꽂아져만 있어도 안심이 되는 책

<백만번 사는 고양이> 의 작가 사노 요코를 좋아한다.  일본인 동료 작가는 그녀의 책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는데 딱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책장에 꽂아져만 있어도 안심이 되는 책“


그녀는 네살때 자신의 손을 뿌리친 엄마에 대한 미움에 대해서, 유방암을 선고 받고 검진을 받는 중 주치의인 남자의사의 손이 자신의 허벅지를 살짝 스쳤던 것에 대한 떨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는데 훈남이었던 병원장이 80대였던 일, 시한부라는 것을 알자마자 갖고 싶던 차를 당장 사고 집에 있는 티비를 엄청 큰 것으로 바꾼 일, 투병생활 중 그 큰 티비로 배용준 이병헌 등이 나오는 한류드라마를 너무 누워서 계속 봐서 목이 돌아가지 않았던 일,


2002한일 월드컵의 안정환의 잘생긴 얼굴을 보며 뿌듯해 하는 것, 유학생활에 알게 된 한국인 남자 교수에게 40년 가까운 편지를 보낸 것(사노 요코가 계속 좋아할 수 있는 남자는 어릴 적 세상을 떠난 본인의 남동생과 멀리 한국에 있어서 만날 수 없는 당신밖에 없다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음을 고백하는 편지를 썼었고, 임플란트를 하셔서 배용준처럼 멋진 미소를 갖기를 바란다는 말이 40년에 걸친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말. 참 위트 있는 것 같다)


그녀가 40대에 쓴 글이랑 세상을 떠나기전 70대에 쓴 글을 읽어보면 전혀 시간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녀구나 이렇게 생각될 뿐이다. 슬픈 마음도 현실도 그녀의 글을 통해 나오면 슬프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눈은 아련하지만 입은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웃게 된달까. 눈엔 눈물이 반짝이는데 풉 하고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면서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싶은 느낌이랄까. 슬픈 것을 슬프게만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가진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며 기록하고 유머를 잃지 않는..


그녀가 어머니에 대해 쓴 글을 보면서 내가 엄마한테 느꼈던 서운함 미안한 복합적인 감정이 이해되고 그럴 수 있다고 느꼈다. 그녀도 그랬었구나 나도 그런 감정을 느꼈었는데... 그래도 되는 거였구나..


미투 운동처럼, 나도 그랬었는데(그랬던걸 표현하면 안될 것 같아서 표현은 못했지만) 누군가가 본인이 그랬었던걸 담담히 부끄럽지도 그렇다고 자기확신에 차지도 않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다정하게 해주면 우리는 그를 보고 나 자신이 인식하지도 못했던 깊은 감정을 다시금 떠올리고 그 복잡한 감정을 그를 통해서, 그와 함께 ‘이해’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와 손을 잡는 느낌을 갖는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언제나 혼자가 아니었다고.


그녀가 투병생활 중에 신기한(?)대변을 보고 그것을 친구와 함께 젓가락으로 찔러보며 관찰하는 내용도 있는데 (대변을 자세히 묘사한다) 이걸 보며 정말 작가구나... 싶었다.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한다고 명품 스웨터를 달라고 했던 친구를 보며 (그해 겨울까진 안 죽고 살 수도 있는데) 오히려 이 세상의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것 같은,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무상함(?)을 깨닫고 해방감을 느꼈다는 내용도 있고 이래저래 시종일관 깊이 생각하게도 되면서 마냥 심각해지진 않도록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녀의 말 중에 이 말이 남는다.


“우리는 할일이 없는데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마치 귀신처럼 허공을 떠다니지 않으려면 깊이 통찰하고 나만의 무언가를 깨달아서 내가 이 허무한 가벼움에 쓸려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하고, 떠다니지 않으려면 중심을 잡아주는 누군가의 손도 놓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이면 가장 좋고 책이 될수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사놓으면 먹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