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은 뜻밖에도 ‘갑상선 항진증 진단’이었다.
처음엔 선물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혈압은 150까지 치솟았고, 이유 없는 피로와 무기력함이 매일을 눌렀다.
일정도, 일상도 예전처럼 감당이 되지 않았고 아무리 정신력으로 밀어붙여도 몸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그러다 진단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이제는 내 몸의 한계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순간부터 내 삶은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10개월 동안 요가를 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14시간 동안 공복을 유지했다.
6개월 동안은 출판을 목표로 글을 썼다.
그리고 또 6개월 동안, 매주 한 번씩 밤 12시 반, 때로는 서머타임 때문에 새벽 1시 반까지 수퍼비전 수업을 들었다.
돌이켜보면, 이 네 가지는 모두 “잘해야 한다”가 아니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들, 그리고 계속할 수 있는 것들만 남겨 선택한 결과였다. 병을 계기로 많은 것들을 의도적으로 걸러야만했고, 그 과정에서 억지로 밀어붙이는 일들은 모두 빠져나갔다.
남은 것들은 이상하게도 나를 지치게 하지 않고, 오히려 회복시키는 것들이었다. 몸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진심으로 이어가고 싶은 일들만 남겨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쌓아 올린 시간이었다.
병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내려놓게 했다. 일을 줄였고, 만남을 줄였고, 늘 켜져 있던 긴장의 안테나를 내려놓았다. 예전엔 이런 ‘멈춤’이 실패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것이야말로 내 삶을 지켜주는 경계이자 호흡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뒷목이 땡기면 멈추고, 몸이 피곤하다고 말하면 쉬고, 마음이 꽉 조여오면 속도를 늦췄다.
처음엔 어색하고, 두렵고, 불편했다. 그러나 속도를 늦추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었다.
열심히 달리는 동안에는 ‘해야 하는 일’밖에 보이지 않았다면,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지속하고 싶은 것’이 보였다.
몸을 소모시키는 일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나를 살리는 일들만 남았다.
요가의 호흡, 공복의 가벼움, 글쓰기의 집중, 수퍼비전의 성찰.
이 모든 것은 나를 닳게 하지 않으면서 나를 더 깊게 확장시켰다.
나는 올해, 100미터 스프린터처럼 살던 사람에서 장거리 마라토너가 되어가는 과정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경험했다. 돌아보면, 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몸이 먼저 말했다.
“이제 그만.”
그리고 마음이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그래, 이제는 다르게 살아보자.”
나는 실패가 아닌 새로운 삶의 속도를 배웠다.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시작이라는 것을 배웠다.
올해 나는 더 멀리 가기 위해 다르게 걷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