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미국에 살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높아진 자존감이었다. 네 딸의 첫째로, 모든 상황을 당신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엄마의 딸로 자라며 내 자존감은 늘 바닥이었다. 얼굴이 커서 보름달이라고, 피부가 까많다고 촌년 같다고, 코끼리 다리 같다고 하루도 내 외모에 대한 지적이 없는 날이 없었다. 더 힘든 건, 한 사람이 얘기를 시작하면 엄마를 포함 나머지 세 명이 거기에 살을 붙이는 거였다. 돌아보니 제일 힘든 건, 그 말들이 맞다고 생각했다는 거였다. 외모에 대한 낮은 자존감은 대학을 가서도 계속돼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보인다거나, 내 등이 넓어 뒤에서 딴짓하기 좋아 뒷자리에 앉겠다는 동기들의 말에 상처 받았다. 지금은 왜 그때 반박을 못했을까 후회하지만, 그때는 맞는 말이라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다이어트 강박증에 45kg까지 빼기도 했지만, 늘 피곤했고, 어지러웠다. 그래도 못 알아보겠다는 동기들이나 너무 날씬하다는 옷가게 사장님들의 말을 들으며 만족했었다.
대학교 때 내 자존감이 외모에 집중했다면,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는 기업인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기업인들과 비교하면 내 실력과 능력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하루는 지하철 속에서 SK 최태원 회장과 나를 비교하며,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데 저 사람은 한 기업을 이끌고, 나는 겨우 대리구나라는 마음에 자책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지만 당시 내 자존감의 수준은 딱 거기였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이상한 걸 느꼈다. 한 동료가 자기 목선이 너무 이쁘지 않냐는 것이다. 자기 목선을 너무 사랑한다며. 속으로, ‘쟤는 뚱뚱하고, 키도 작고, 하나도 안 예쁜데, 그중에 목선 하나 찾은 거야? 참 불쌍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것이다. 호수같이 파란 자기 눈 색을 너무 좋아해서, 머리나 액세서리도 그 색을 돋보이게 하는 것들로 하고, 종아리가 너무 예뻐 치마를 즐겨 입는다느니... 이상했다. 한국에서는 대중적인 외모의 기준과 비교해 부족한 것들만 찾았는데, 그래서 난 치마도, 소매 없는 여름옷도 못 입었었는데. 여기서는 다들 자신이 가진 좋은 것 하나만 있어도 기뻐했다.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나대로,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다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다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나도 변하기 시작했다. ‘어머, 언니는 머릿결이 정말 좋다, 언니 오늘 정말 멋져 보여요.’ 부족한 점만 찾다가 좋은 점을 보기 시작하니, 좋은 점은 넘치고 넘쳤다. 그러다 나를 보니 괜찮았다. 치마도 입고, 소매 없는 블라우스도 입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난 눈도 크고, 미국 사람들에 비해 그렇게 뚱뚱하지도 않고, 미소도 이쁘다잖아 하하하'라고 생각하면서 행복해했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은 상승했지만, 여전히 업무에서는 내 단점을 찾고 있었나 보다. 하루는 우리 제품의 주원료였던 해초가 기상악화로 몇 달간 생산 중단이 될 상황에 처했다. 비즈니스 전체에 영향이 막대해서 비상회의를 했다. 나는 내 제품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방안을 준비해서 미팅에 참석했다. 그런데, 같은 팀 남자 동료는 자기 제품이 아닌, 비즈니스 전체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관점으로 회의를 하는 게 아닌가. 서로 자기 이익을 위해 싸우는 그 순간,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중간 정리를 하고, 더 큰 그림을 보도록, 그리고 대안도 제시하며 회의를 진행하는 그 사람을 보며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동료의 리더십 덕에 우리는 회의를 잘 마쳤다.
회의가 끝난 후 존경하는 마음으로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며칠 후 밥을 먹으며 ‘네가 정말 존경스럽다. 내 이익이 아닌 전체를 보고, 전체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다니. 그 리더십을 정말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동료는 고맙다고도 수긍도 하지 않고, 밥을 먹더니 한참 후 내게 얘기했다. "너는 왜 늘 남의 장점을 너의 단점과 비교하니? 그러면 넌 언제 남보다 뛰어날까? 네가 나보다 잘하는 게 많은데, 그걸 한 번 보는 건 어때?"
말문이 막혔다. 어색한 분위기로 점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생각을 했다. ‘맞네, 난 그럼 평생 이길 수 없겠구나.’ 물러나서 보니, 그 동료는 나와 같은 상사 밑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상사가 그 동료가 무능하다고 말하는 걸 그도, 나도 알고 있었다. 전년 평가를 너무 낮게 줘서 인사부와 상사를 불러 미팅을 하던 그 시간, 그 동료가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는 걸 상사가 내게 얘기했었다. 그 사람은 상사의 인정을 못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동료의 회의실에 있던 사진들이 생각났다. 두 딸의 아버지인 그는 행복한 가족들의 사진을 여러 개 사무실에 뒀다. 저 행복한 아빠가 상사의 인정을 못 받으면서 얼마나 힘들게 지내고 있었을까? 그런 그 사람을 도울 생각은 전혀 안 하다가, 그 사람이 나보다 잘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 쪼르르 달려간 내가 많이 부끄러웠다. ‘엄마, 나 다른 장난감들 다 있어도, 저것도 갖고 싶어요, 사주세요.’라고 조르는 어린애 같아서 한없이 창피했다.
한참을 생각한 후, 내 장점을 적어보기로 했다. ‘그래, 단점 말고 장점을 적어보자.’ 적다 보니 장점들이 꽤 있었다. 추진력이 있다, 분석을 잘한다, 팀워크가 좋다, 전략적이다 등등.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 맞다, 세상에 단점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겠구나, 장점 없는 사람도 한 명도 없겠구나. 누구나 장단점이 있고,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단점은 없어질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많은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평생 노력해도 없어지지 않을 단점은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하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개선해나가면 되겠구나. 나는 장점도 있으니까. 나는 남들보다 덜 노력해도 잘하는 장점들이 있으니까. 단점을 고치려고 평생 애쓰기보다, 이 장점들을 더 많이 쓸 수 있는 일들을 하면 되는 거야.’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내 도구 상자에 넣을 수 있는 여러 연장들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관찰하고, 배웠다. 그러다 내 단점들을 더 보게 됐는데, 이제는 다름을 인정하고, 무엇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p.s. 외국 생활을 하다 가끔 한국에 들어오면, 가족들은 여전히 내 외모 비하를 계속했다. '얼굴이 까매졌다. 기미를 빼야겠다. 몸매가 미국 사람 같다 (이건 또 뭔 얘긴지), 더 못 생겨졌다.' 등등. 끊임없는 잔소리에 선언을 했다. '하고 싶으면 계속해라. 다만, 네가 하나를 얘기하면, 네 못난 부분 네 가지를 얘기해 주겠다. 나만 못난 게 아니라 너도 못난 게 있다. 하나에 네 개로 갚아주겠다.' 그 뒤로 우리 식구들은 더 이상 외모 비하를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한테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