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받게 된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전 세계 리더 모임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비즈니스 대표 (GM, General Manager)가 나를 더 알고 싶다고 했다. GM에게 내 업무를 1시간 동안 발표할 기회가 생겼다.
어려운 상사였고, 처음으로 얻은 기회여서 잘하고 싶었다. 준비를 많이 했다. 예상 질문 리스트와 답을 만들었고, 슬라이드도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수정했다. 미팅 시간이 되어 넓디넓은 GM 사무실에 들어갔다. 미시간 동문이라는 걸 서로 알아 학교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발표를 시작했다. 출력한 자료로 한 장 한 장 열심히 설명해 나갔다. 얼마 안가 GM의 얼굴색이 변하는 걸 알게 됐다. 잘못되고 있나 싶었지만, 다른 방법도 없어서 계속했다. GM의 표정은 점점 더 나빠졌다. 어두운 얼굴을 마주한 채 40여분의 발표를 끝냈다. 40분 동안 혼자 얘기한 것이다. 불편한 마음으로 질문이 있냐고 물으니,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다. 준비한 슬라이드로 다시 돌아가 이 데이터, 저 데이터를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을 했다. GM의 안색은 이제 흙빛이었다. 1시간을 겨우 마치고 GM 사무실을 나오며 큰일 났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사가 오더니 뭘 어떻게 했길래 GM이 그렇게 화가 났냐고 물었다.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정말 몰랐으니까.
커뮤니케이션 코치를 만나 미국식 대화 방법을 배우면서, 이유를 알게 됐다. 미국식 대화 방법은 한국식 (또는 아시아식)과 많이 다르다는 걸 배웠다.
- 첫째, 우리 뇌는 많은 양의 정보를 수용하고 처리하는 데 익숙하나, 미국인은 많은 양의 정보를 감당 못한다. 그러기에, 내 노력을 정보의 양으로 보여주려 애썼던 내 발표는 GM을 정보의 바다에 빠뜨린 것이다. 얼마나 싫었을까. 40여분 동안 정보의 홍수 속에 있었으니.
- 둘째, 우리는 구체적 사례나 상황들을 설명 후 결론에 도달하는 귀납법을 많이 사용하는 데, 미국인은 결론을 먼저 말하는 연역법에 익숙하다.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설명하는 상황들을 듣다가 얘기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는 것이다.
- 셋째, 고위직인 GM에게 나는 말단 사원의 대화를 했다. 큰 그림과 전략, 아주 중요한 일들을 얘기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에게 저 아래의 디테일들을 설명했으니. GM의 눈높이도 못 맞췄고, 대화 방식도 많이 어긋나 있었다. 대기업 사장님에게 말단 사원이 ‘사장님, 오늘은 비가 많이 옵니다. 미세먼지도 많다고 합니다. 내일도 이렇답니다. 대기 오염이 심각해져서 정말 문제입니다’라고 얘기한 격이다. 지금의 나라면 ‘사장님, 대기 오염이 많이 심각합니다. XX 사의 환경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에는 지구의 반이 아열대 기후로 바뀐다고 합니다. 당사가 기후 변화 대응에 앞장서면 어떨까 싶은데, 사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라고 말하겠다.
코치는 내게 몇 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1. PIE-Q를 이용하라.
My Point is…. The Impact (implication) of X is… For Example, …. Any Questions (or how do you think)?
이 방법을 쓰다 보니, 내가 핵심 포인트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PIE-Q를 쓰다 보니, 쓸데없는 것들을 얘기하고 있다는 걸 알게 돼 말이 줄었다. 하지만, 콘텐츠가 좋으니 사람들이 더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궁금하거나 생각나는 걸 말하는 건 효과가 적었다.
2. 일벌이 아닌 전략적 사고가로 포지셔닝해라 (Position Yourself not Work-bee but Strategic thinker).
우리는 주어진 일을 정말 잘한다. 많은 아시아인들의 공통점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됐다. 미국 사람들과 일하다 보면 느린 속도, 질 낮은 결과물에 실망할 때가 많았다. 또한 나는 죽어라고 일하는데, 미국애들은 매일 말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들고 얘기만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혀를 차며 쟤네는 저렇게 말만 하니까 일이 진행이 안 되지 싶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들은 미래, 전략, 또는 개선 방안 등을 상의하고 있었다. 내가 하나의 데이터를 더 볼 시간에, 미래의 먹거리, 팀의 생산성, 새로운 경쟁사의 저가 정책 대처 등 전략적인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중요한 생각과 결정은 자기네가 잘하고, 그 일 처리는 아시아인들에게 시킨다는 걸. 주어진 일을 빨리, 잘 해내니까. 종종 아시아인을 일벌 (work-bee)라고 부르는 걸 몇 번 봤었고, 그게 칭찬이 아니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개선책으로, 코치는 내가 하는 말을 적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대화 내용의 몇 %가 사실, 업무, 결과에 관한 건지, 나머지 몇 %가 미래나 전략에 대한 건지 살펴보라고 했다. 보니 대부분 내용이 이거 저거 끝났다는 결과나 상황 보고였다. 의도적으로 대화의 반을 미래, 전략, 새로운 아이디어로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의식하니 대화 내용은 점점 바뀌어갔다.
- 셋째, 생각을 크게 하라 (Think Big)
하지만 업무가 대부분 일처리인 상황이라면, 미래나 전략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썼던 방법은 나를 내 상사나 회사의 최고 경영자라고 상상하는 것이었다. ‘내가 상사라면 뭐가 제일 고민일까? 지금 CEO에게는 뭐가 제일 중요할까?’ 이 방법도 안 될 때는 이게 내 사업이라면 어떻게 할지 물으면 대부분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영어에 Helicopter view라는 표현이 있다. 헬리콥터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보인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상황에 빠져 나무만 보지 않고 더 큰 그림과 더 중요한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받고 다시 GM에게 발표할 기회가 생겼다. 지난번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디테일은 별첨으로 보내고, 결론을 먼저 말하고, 중요 안건들을 곳곳에 포지셔닝해서 GM의 의견도 물었다. 처음이 일방적 발표였다면 두 번째는 GM과의 비즈니스 대화로 방향을 완전히 바꿨고, GM은 만족하며 코칭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