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필라델피아에서 근무한 지 3년째, 내 생활은 참 만족스러웠다. 회사 업무도 적응되고, 인정도 적당히 받고, 무엇보다 친한 동료들이랑 친구들이 생겨서 행복했다. 필라델피아는 역사로 가득한 도시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어디를 가도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었고, 동부 다른 도시들로의 접근성도 좋았다. 뉴욕과 워싱턴 D.C. 도 차로 두 시간 거리로, 종종 뉴욕 한인타운에 놀러 가기도 했다. 또한 부자도시가 아니기에 생필품 가격이 비싸지 않았다. 다운타운에서 다양한 공연들도 늘 개최되었고, 가격도 저렴해서 즐기기에 부담이 없었다. 평일 저녁에는 동료들과 여러 레스토랑들을 다니거나 공연을 보러 다녔고, 주말에는 멋진 야외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3년째의 내 생활은 많이 행복했다. 예술, 문화, 먹거리를 부담 없는 가격에 즐기고, 회사 업무도 할 만하고 참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회사 첫 상사였고 지금은 다우 케미컬로 이직하신 분이 전화를 하셨다. 다우 케미컬에 자리가 하나 생겼는데 관심 있냐고. 여러모로 만족하고 있었기에 관심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만나나 보란다. 이 업계 연봉이 얼마인지도 알면 좋지 않겠냐고. 딱 잘라 거절하는 건 예의 없고, 업계 연봉은 알고 싶다는 생각에 만나는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대는 말라고 하면서.
루크레스(Lucrece)를 그때 처음 만났다. 키도 크고 아름답고 무엇보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난 이직 생각이 없고 옛 상사의 부탁으로 나온 거다라는 얘기도 했다. 며칠 후, 자기는 마음에 드니 이제는 다른 사람들하고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단다. 꼭 안 와도 좋으니 경험상 인터뷰나 해 보라고. 그 말에 난 또 홀딱 넘어갔다. 부담 없이 여러 명과 인터뷰를 했다. ‘그래 경험 쌓는 거야. 안 간다고 얘기했잖아’라고 생각하며. 3주 정도의 인터뷰를 다 마치고, 루크 레스에게 전화가 왔다. 나를 채용하고 싶다고. 고민이 많이 됐다. 새 포지션이 승진의 기회였다면 덜 망설였겠지만, 약물의 부형제라는 시장도 같았고, 글로벌 마케팅을 한다는 것도 같았기에 고민했다. 승진도 아닌데, 다른 회사를 가서, 여기서 했던 고생들을 다 다시 하고, 무엇보다 가서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뭇거렸다. 생각해 보겠다고 한 후 시간이 흘렀다. 필라델피아와도 여기 사람들과도 정말 친해져서 이 곳을 떠나기 싫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한 달 후 Lucrece가 전화를 해서 아직도 고민 중이라면, 자기가 있는 스위스 유럽 본사에 견학 와서 보고 결정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여행 비용은 다 회사에서 부담하겠다면서. 이직은 안 해도 스위스 여행은 해 보고 싶었다. 가서 거절해도 된다는 답을 받고, 유럽 본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휴가를 내고 스위스행 비행기를 탔다. 스위스에 도착해 공항 밖으로 나오니 상쾌한 공기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2010년 1월이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미국과는 달리 다들 날씬해 보이는 사람들이 공항에 가득했다. 약간은 두려운 마음으로 택시를 탔다. 앉자마자 라디오에서 “Yeah, Yeah, God is great. Yeah, yeah, God is good.*”라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택시는 출발했고 지지직 거리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게 뭐지 싶었다. 스위스에 발을 내딛자 이런 소리를 듣다니, 어리둥절했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여기로 와야 하는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게 뭔 소리인가 싶겠지만, 여러 번 주님의 임재를 경험한 당시의 나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리로 부르시는 거구나 싶었다.
취리히 근처의 호르겐 (Horgen) 역 앞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회사 방문은 다음 날 일정이었기에 그날은 쉴 수 있었다. 역 앞 취리히 호수를 바라보며 ‘왜 이리로 부르시는 걸까?’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결국 나는 이 땅에 오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다음 날 아침 루크레스가 호텔로 픽업을 왔다. 호수를 따라 회사를 가는 길도 예뻤고, 도착한 회사 건물의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루크레스는 팀원들을 소개해줬고, 팀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게 됐다. 회사 구내식당에 도착하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잘생긴 유럽 남자들이 너무 많았다. 다들 날씬하고, 키도 크고, 왜 그리들 잘 생겼는지. 내가 좋아하는 빨간 머리 남자도 있었다. 천국이 여기구나 싶었다. 유리로 된 식당 벽을 통해 취리히 호수와 푸른 초원이 보였다. 이 사람들은 이런 환경에서 사는구나 싶었다. 밥을 먹기도 전에 여기로 와야겠다 싶었다. '여기 살아봐야겠다. 저 멋진 남자들과 같이 일해야겠다. 물론 하나님이 날 부르셨으니 난 여기로 오는 거다'라고 생각하면서.
일정이 다 끝나고 다시 루크레스를 만나서 오겠다고 했다. 루크레스가 이미 준비한 연봉 package에 시원하게 사인을 했다. 루크레스는 필라델피아 다우 사무실과 여기 스위스 사무실 중 어디든 괜찮으니 원하는 곳을 선택하라고 했고, 나는 네가 있는 여기서 배우고 부대끼며 일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도전으로의 주사위가 또 던져졌다.
*Joan Osborne의 One of Us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