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나이프

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by 켈리황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천국인 스위스에서 내 생활이 지옥으로 바뀌는 데 보름이 걸렸다. 새 회사에 열심히 적응 중이었는데, 상사가 부르더니 3개월 후인 8월 중순 마케팅 플랜을 General Manager (GM) 포함 회사 리더십팀에게 발표하란다. 나는 두 제품군을 담당했기에 두 개의 플랜을 발표해야 했다. “그건 무리인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만드는 플랜을 쓸 수가 있겠는가? 효용성이 없는 발표가 될 것이다. 차라리 남은 3개월을 시장을 더 아는 데 집중하고 싶다. 제대로 배워서 사람들을 제대로 리드하는 플랜을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상사의 대답은 단호한 No였다. 입사 전에는 한없이 좋아 보였던 사람이 그렇게 단호할 수가 없었다. 웃는 얼굴로 'No. You need to do it. (안 돼~~~ 해야 해~~~)'라고 말했다.


정말이지 너무 막막했다. 부당하다는 생각, 제대로 된 플랜을 만들 수 없다는 생각으로 투덜투덜 대던 어느 날, 독일에 있는 GM이 스위스에 방문했다. 돌아보니 나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GM은 키도 크고, 엄청 잘 생긴 데다 목소리도 좋았다. 거기에 스마트하기까지. 내가 좋아할 요인들은 넘치고 넘쳤다. GM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식사를 하면서 불편한 게 없냐고 하길래, 입사 3개월 만에 발표하는 마케팅 플랜이 믿을만하겠냐고 물었다. GM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아무 플랜이든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나아 (Any plan is better than no plan). 부족해도 플랜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플랜이 없으면 사람들은 어디로 갈지를 몰라. 각자 가고 싶은 데로 갈 거야. 부족한 플랜은 가면서 수정할 수도 있고.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에겐 플랜이 없어."


할 말이 없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말도 잘하나 보다. 내가 좋아하는 GM이 잘못된 플랜이라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낫다고 하니, 죽을힘을 다해서 제대로 된 플랜을 만들고 싶었다. GM에게 “오케이. 그럼 최선을 다해 만들어 볼게. 하지만, 잘할 거라고 장담은 못 하겠다."라고 말했다. GM은 웃더니 내가 잘 해낼 거라 믿는다고 했다. 쪼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점심을 먹으며 마음을 굳혔다. ‘그래, 어떻게든 해 보자.’라고.


당시 회사에는 여러 종류의 마케팅이 있었다.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전략 마케팅 (Strategic Marketing), 전략을 각 나라의 상황에 맞게 실행하는 필드 마케팅 (Field Marketing), 시장과 고객에게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팀 (Marketing Communications), 판매와 생산을 연결하며 제품군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Product Marketing으로 나뉘어 있었다. 내 역할은 Global Strategic Marketing이었기에 10년 계획을 세워야 했다.


마케팅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우리가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데이터를 보면 이리로, 저 데이터를 보면 저리로 가야 했다. 데이터는 갈팡질팡인데, 고객들도 직원들도 다 다른 소리를 한다. 그 안에서 시장을 예측하고, 집중할 고객군을 택하고, 그들에게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분석력 (Analytical Skill)과 비즈니스 통찰력 (Business Insight)이 중요한 게 마케팅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 앞길을 찾아야 했기에 정말 많은 생각도 해야 한다. 여러 개의 시나리오도 만들어, 어떤 시나리오가 우리에게 가장 많은 돈을 벌게 할 지도 고민해야 했다.


스위스에 대해 알게 된 또 하나는, 직원 해고가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언제든 해고할 수 있었고, 해고 통보를 받으면 3-4개월 안에 스위스를 떠나야 했다. 이게 유럽 본사가 스위스에 많은 또 하나의 이유 중 하나이다. 법인세가 낮은 것도 이유지만. 특히 프랑스는 노조가 강하고, 해고가 어려우며, 몇 년치 연봉을 제공해야 했다. 하지만, 스위스는 이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웠다.


후회를 정말 많이 했다. 미국에서 느꼈던 해고에 대한 불안감이 스위스에 와서도 반복됐다. 아무리 사람들을 만나고, 아무리 많은 자료들을 읽어도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가끔 사람들이 어떤 계기로 기독교인이 됐느냐고 묻는다. 주님을 알고 나서 내게 최선은 주님께 구하는 것이었다. 극도로 강한 의지와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기에 나는 너무 약했다. 3개월 동안 많이 울었다. 방법을 모르니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아무리 써도 머리만 아팠다. “주님, 저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제 머리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생각을 주십시오. 이 일은 주님의 일입니다.”라고 울면서 기도했다. 신기하게도 내 머리로는 답이 안 나왔지만, 주님께 맡기니 차차 생각들이 나기 시작했다. 기도하면서 플랜을 만들어 갔다.


3개월 후 10년 계획을 리더십 팀에게 발표했다. 상사는 잘했다고 칭찬했지만 의례 하는 말이겠거니 했다.


2주일 후, GM이 스위스에 방문해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약간은 두려운 마음으로 식당에 앉은 내게 GM은 '너는 스위스 나이프네.”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스위스 나이프는 다기능 칼이잖아. 그 칼처럼 여러 가지를 잘하네. 발표 정말 잘했어. 우리가 사람을 잘 뽑은 거 같네.”


드디어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비싼 초밥집에 가서 먹고 싶은 걸 맘껏 먹었다. 이제 안 잘릴 것 같았으니까 ㅎㅎ.

swiss_knife.jpg?type=w1600 Photo by Patric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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