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스위스에서 일하는 건 미국보다 훨씬 편했다. 서른 살에 경험한 미국 문화가 한국과 180도 달랐다면 스위스에 오니 차이가 90도 정도였다. 미국인과는 사고방식도 많이 달랐는데, 유럽에 오니 서로 이해가 더 잘 됐다. 왜 그럴까 싶다가 유럽이랑 아시아가 같은 대륙이라 그런가 생각하기도 했다. 좋았던 점들은,
첫째, 시간대 (time zone)이 글로벌 일을 하기에 최고다. 스위스의 오전은 미국의 오후였고, 오후는 아시아의 오전이었다. 낮 동안 미국과 아시아를 다 커버할 수 있어서, 저녁 회의가 거의 없었다.
둘째, 다양성과 포용 (Diversity & Inclusion)이 이미 자리 잡혀 있다. 스위스에 와서 놀란 건, 다양한 인종들이 산다는 것과 사람들이 기본 세 개에서 다섯 개의 언어를 한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보니 국경들이 접해 있고, 서로 교류가 많아서였다. 스위스도 세 개국이 접해 있으니, 그 작은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거였다. 미국에서 나는 소수민족인 아시아인이었는데, 여기 오니 다들 소수 민족이다. 그래서 서로를 다르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다. Melting Pot이라는 뉴욕이 노력으로 다양성을 포용하는 느낌이라면, 여기는 나면서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살기에, 주류 민족도 소수민족도 없이 그냥 서로를 인정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이었다면, 여기서는 그냥 사람이었다. 아주 편했다.
셋째, 일하는 방식이 아시아와 닮아 있다. 미국에서 일할 때는 어떤 일을 할 때 왜 해야 하는지 설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시키는 일은 무조건 잘 해내던 한국에서의 방식과 달라서, 뭐 하나를 해도 타당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스위스에 오니, 오히려 아시아와 비슷했다. 왜 해야 하는지는 잠깐, 어떻게 더 잘할까를 더 고민했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싫어하는 미국인과 달리 유럽인들은 데이터도 더 편하게 생각했다. 일하는 방식이 미국과 아시아의 중간 정도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하기 훨씬 편했다.
물론 유럽에서도 나라별로 문화 차이는 있었다. 예를 들면, 독일은 기초가 굉장히 탄탄했다. 어떤 일이든 기초부터 생각했다. 기초에 그다음 층을, 그다음 층을 쌓는 방식이어서 어떤 일이든 초반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기초를 묻기에 독일 사람들과 일 할 때는 더 긴장을 했다. 하지만, 기초가 탄탄하기에 프로젝트 중후반을 지나면 가속이 붙었다. 금방 부서질 모래성이 아닌, 탄탄한 성벽을 쌓는 느낌이었다. 독일차가 견고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한편 프랑스인들은 굉장히 창의적이었다. 독일이 사치 하나 없이 검소한 느낌이라면 프랑스에 가면 세상이 그렇게 칼라풀했다. Zara 매장도 스위스, 독일, 파리가 달랐다. 샹젤리제 거리의 Zara를 가면 총 천연색의 옷들을 볼 수 있었고, 색깔도 그렇게 고급스러웠다.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자유롭고 창의적이었다.
네덜란드 히딩크 감독이 우리에게 유명한데, 네덜란드 사람들과 일하면서 우리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사람들 우리처럼 굉장히 직설적이다. 앞에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뒤끝이 없다. 이 스타일을 다른 나라 사람들은 불편해했고, 욕했지만, 나는 그러려니 했다. 한국에서 많이 있었던 일이니까. 덴마크와 노르웨이 사람들도 직설의 끝을 달린다고 한다. 예전 미국 회사에서 노르웨이 공장을 인수해서 미국 사람에게 관리를 맡겼다가 그렇게 싸웠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번은 덴마크 학회에 갔다가 대학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께서는 반가운 마음에 밥을 사주신다고 해서 코펜하겐 한인 삼겹살 집을 갔다. 16명 예약을 했는데, 다 와 보니 17명이었다. 한인 주인은 불같이 화를 내더니 한 명이 나가야 하다는 것이었다. 16명 테이블에 의자 한 개 더 놓겠다고, 한국에서 어렵게 여기 왔으니 한 번만 봐달라는, 어떤 말도 소용없었다. 결국 그 한 명은 바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헤어졌다. 매정하다고 욕이란 욕은 다했는데 삼겹살은 또 그렇게 맛있었다. 욕하다 감탄하다를 반복하다가 나왔던 기억이 있다.
물론 불편한 것도 있었다. 내가 있던 곳은 독일어를 썼는데, 독일 사람들이 Swiss German이라고 놀렸다. 왜 그런가 보니, 여기 독일어는 뱃속에서 끌어올려 목을 통과해 침을 ‘캬~~~ 악’ 뱉는 것처럼 말한다. 그 소리가 독일 사람들에겐 억세고 촌스럽게 들렸나 보다. 키 큰 스위스 사람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억세게 침 뱉듯 말하니 처음엔 너무 무서웠다. 주눅이 들었다가 물어봤다. ‘나한테 화냤나고’ 웃으며 아니란다. 말하는 게 세게 느껴졌으면 조심하겠단다. 그래서 나도 방식을 바꿨다. 목소리는 크게, 말은 카악 내뱉는 것처럼. 억세 보여도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여기 방식이니. 가끔 밖에서 보면 저 사람들 싸우나 했을 거다 ㅎㅎ.
다양한 문화를 보며 스위스에 점차 적응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