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천국이다

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by 켈리황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스위스는 천국이다.


2010년 5월 1일 다우케미컬 스위스 호르겐 (Horgen) 사무실에 첫 출근을 했다.


스위스는 천국이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상쾌한 공기가 뼛속까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공기가 보약이었기에 운동이 필요 없었다. 집에서 회사는 차로 5분, 버스로 15분 거리였다. 스위스 버스는 분까지 정확하게 늘 정류장에 도착했다. 취리히 호수, 눈에 덮인 알프스, 푸른 들판의 소들을 보며 출근했다. 첫 일정은 늘 칸틴 (canteen) 방문이었다. 캡슐을 넣고 내리는 에스프레소가 그렇게 맛있었다. 대용량의 아메리카노가 아닌 아주 작은 컵의 에스프레소였다. 처음엔 이게 뭐야 싶었지만 점점 그 진한 커피맛에 중독되었다. 냉장고에 구비된 탄산수 또한 최고였다. 알프스 빙하수이며 천연 미네랄이 들어있다는 걸 알고는 비타민이라 생각하고 수시로 마셨다. 더없이 상쾌한 공기, 최상의 커피, 알프스 빙하수와 함께 사무실에서 내다보는 바깥의 경치 또한 훌륭했다.


swiss2.jpg?type=w1600 Tanathip Rattanatum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스위스는 물가가 아주 비싸다. 하지만, 연봉도 높다. 더 좋은 건 세율도 낮다. 필라델피아에서 state tax, city tax도 모자라 single tax까지 거의 40%를 미국 정부에 바쳤다. 스위스, 부자들이 많은 이 나라는 세율이 낮다. 나도 20%가 안 되는 세금을 내면 됐다. 세금을 제하고 남는 돈이 미국보다 많으니 아껴 살면 저축을 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낮은 세율 덕에 스위스에는 전 세계 부자들이 모였고 (물론 스위스가 살기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많은 글로벌 회사의 유럽 본사가 스위스에 있었다.


사무실이 있는 호르겐에서 취리히는 차로 30분 거리였다. 처음 집을 구할 때 취리히에 구하려다 놀라운 광경을 접했다. 집을 보러 가니 사람들이 15명 넘게 와 있는 게 아닌가. 부동산 관계자에게 물으니 취리히는 경쟁이 치열하단다. 신청서를 내면, 집주인이 직업, credit history, 취리히 거주 이력 등을 보고 고른단다. 스위스에 이제 막 온 나는 경쟁에 밀린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계속 신청서를 넣으면 언젠간 되지 않겠냐며. 어이가 없었다. 두 군데를 떨어지고, 취리히를 포기했다. 사무실 근처인 호르겐은 신청서를 낼 필요가 없었다. 호수가 앞에 보이고, 세계 최고 테니스 선수 페더러가 다닌다는 헬스장이 코앞이고, 사무실도 가까운 곳으로 선택했다. 평일에는 회사에 집중하고, 주말에 취리히를 즐기기로 맘먹으면서.


주말의 취리히는 너무 좋았다. 백화점 야외에 앉아 맛 본 아이스크림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맛이었다. 미국 음식이 양념을 많이 써서 맛을 낸다면, 스위스 아이스크림은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원재료의 신선한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런 걸 먹고사는구나 싶었다. 커피맛도 최고였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가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한 노인분들을 볼 수 있었다. 진짜 부자는 저렇게 우아함이 넘치는구나 싶었다. 하이네켄 맥주 맛도 달랐다. 미국에서도 그렇게 마셨는데 맛이 달랐다. 나중에 보니 스위스 물로 만든 맥주라서 그렇단다. 신선한 자연이 주는 맛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EC%8A%A4%EC%9C%84%EC%8A%A41.jpg?type=w1600 H. Emre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것도 있는 법. 언어가 제일 힘들었다. 스위스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3개국이 맞닿은 나라로, 세 나라 언어를 사용한다. 취리히는 독일어권이어서, 어딜 가도 영어가 아닌 독일어였다. 길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사람들보다 영어를 못 했다. 독일어를 못 하는 나는 회사 밖에서 문맹이었고 벙어리였다. 한 번은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에서 쓰레기봉투를 달라고 garbage bag이라고 몇 번을 해도 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trash, trash라고 해도 서로 답답할 뿐이어서 영어를 할 것 같은 손님에게 부탁해 겨우 살 수 있었다. 가구를 보기 위해 이케아 홈페이지를 방문하니, 모르는 언어뿐이었다. 세 가지 언어 버전이 있으나 영어는 없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영어로 된 홈페이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당시 스위스는 오후 7시면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하루는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집에 오니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안타깝게 이미 7시가 지나 있었다. 전단지를 찾아보니 피자집 번호가 있었다. 전화를 걸어 피자 오더라고 하니 뭐라 뭐라 했다. 페퍼로니 피자라고 하니 또 한참 뭐라 뭐라 하더니 그냥 끊었다. 그날 저녁은 쫄쫄 굶었다. 글자라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든 독일어는 내게 그냥 그림이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였으나, 그림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한 후부터는 맘이 편안했다.


약간 불편한 천국 속에서 회사 생활을 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만나는 남자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대부분 잘 생겼었다. 하루 최애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식당 유리 밖에는 아름다운 스위스 풍경이, 안에는 멋진 남자들이, 내 식판에는 신선한 음식들이 있었다. 모든 게 그림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천국은 지옥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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