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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황 Jun 25. 2021

아시아는 하나다?그럴 리가!
[인도편II]

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인도편 계속...

Photo by Naveed Ahmed on Unsplash

현란한 인도인 말발이 내겐 트라우마이고, 솔직히 이젠 무섭기까지 하다. 사람에 데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인도 영업 매니저는 기술팀에서 온 50대 여자였다. 처음에는 많이 어려웠다. 미팅에 늘 늦고, 약속을 안 지키는데 말은 또 엄청 잘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늘 이유가 있었고 화려한 언변으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했다. 아무튼 여러 우여곡절 끝에 어느 정도 관계를 만들 수 있었는데, 1년 반 정도 지난 어느 날 인도 인사부에서 연락이 왔다. 


한 직원이 인사부에 인도 매니저의 권력 남용 (power abuse)을 고발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오픈 사무실에서 직원들을 혼내고, 자기 말을 안 들으면 가만 안 둔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직원들에게 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싫고 무서우면서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직원 한 명이 용기를 낸 것이다. 인도로 가서 직원들과 인터뷰를 해 보니,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거란 생각에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단다. 절대 생기면 안 되는 일이며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꼭 얘기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인도 매니저에게는 이런 일은 해고 사유이며 앞으로 6개월 동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6개월 후 다시 인도로 가서 직원들과 면담을 했다. 다들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인사팀장도 직원들이 괜찮아졌다고 얘기했다면서 이제 이 건은 마무리하자고 했다. 이 결정을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했다. 6개월 후, 처음 인사부에 얘기한 직원이 퇴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퇴사 인터뷰에서 인도 매니저가 한 일이 드러났는데, 직원들에게 ‘누가 인사부에 고발한 지 안다. 그 사람은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이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봐라. 명심해라.’ 인도 매니저는 더 악랄하게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었고, 그래서 6개월 면담을 했을 때 모두 괜찮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직원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싶고, 6개월을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싶었다. 그들에게 내가 얼마나 무능한 리더였을까... 매니저를 내보내기로 결심하고 인도 인사팀, 지사장 등 여러 명과 얘기를 하다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도 매니저는 입사 초반부터 문제가 많았는데, 리더들이 이 사람을 퇴사시키는 대신 다른 부서로 보낸 것이다. 직원을 퇴사시키는 건 리더로서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문제 해결 대신 남에게 문제를 넘겼던 리더들 탓에 직원들은 하지 말아야 할 고생들을 한 것이다. 욕이 많이 나왔고, 여기서 끝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인도 매니저는 퇴사했다.


후임자 선택은 신중에 신중을 가했고, 인도 리더들 의견을 많이 참조해서 마음에 드는 리더를 뽑았다. 후임자는 전략적이고, 사람 관계를 잘하는 데다 사람이 좋아 직원들을 잘 챙길 것 같았다.


1년 반 정도 지나자 후임 매니저가 자꾸 미팅에 늦기 시작했다. 출장을 갈 때마다 원래도 체격이 좋았는데, 몸이 더 커져 있었다. 어느 날은 고객과의 약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거였다.


어느 날 인도 지사장이 전화를 했다. 후임 매니저의 근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회사 인도 지사는 출퇴근 때마다 타임카드를 찍는 시스템이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왜 타임카드를 찍냐고 욕했었는데… 후임 매니저의 타임카드를 보니 몇 개월 동안 출근한 날이 손에 꼽았다. 변명은 늘 고객사와의 미팅이었으나, 고객사에도 없었다. 직원들은 전 매니저가 워낙 괴롭혔기에 간섭 안 하는 이번 매니저가 더 나았으나, 이제는 괜찮은 매니저를 뽑을 거라는 기대는 모두 저버린 상태였다. 


인사부와 조사를 더 했고, 근태에 문제가 많다는 게 드러났다. 인도 직원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내 리더십에 한없이 자괴감을 느끼던 그때, 인도 지사장이 내게 말했다. ‘네 잘못이 아냐. 옆에 있으면 바로 보고 알 텐데. 6개월에 한 번씩 오는 네가 근태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니. 속상해하지 말아라. 여기서 잘 보고 이상한 분위기가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겠다.’ 많은 위로가 됐지만 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솔직히 이해가 안 됐다. 말단 직원도 아니고, 매니저까지 된 사람의 근태를 관리해야 한다고? 근태는 가장 기본인데?


이 두 가지 사건으로, 안타깝게도 인도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리더로서도 성장했다. 다른 나라 직원들이 초반에, 인도 사람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고 했던 걸 간과했던 내가 미웠다. 


이제 나는 현란한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말이 아닌 사실, 결과를 보려고 노력한다. 또한 인도라는 나라가, 인도 사람이 싫은 건 아니지만, 인도 사람의 말을 더 이상 그대로 믿지 않게 됐다.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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