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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황 Jul 02. 2021

지극히 주관적인, 내가 본 일본 2편

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조직 내의 화합을 제일로 치는 일본 사회인지라 A형을 제일 선호한다. 결혼도 취직도 A형이면 오케이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또 점검하고 꼼꼼하게 차근차는 처리하는 것이 A형의 특징이야. 근데 B형은 자유분방한 성격인지라 조직의 구속을 받는 걸 싫어하는 거라. O형과 마찬가지로 버럭 성질낼 것 다 내고 자기 마음대로 하니 누가 좋아하겠냐? 그러다 보니 A형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거지. 참고로 일본의 혈액형은 A형이 40%에 가깝다. A형을 선호하다 보니 자꾸 늘어날 수밖에. 어쩌면 이대로 가다간 일본은 머지않아 모든 국민이 올 A형으로 바뀔 거야.”

-      게이샤의 첫날밤에서 사무라이 할복까지 (박동균 지음) 중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혈액형을 묻는다. 나랑 같은 혈액형이면 어쩐지 잘 통했던 것 같고, A형이면 그냥 꼼꼼할 것 같고, B형은 나쁜 남자, O형은 왠지 사교적일 것 같다. 


일본 출장을 다니며 일본 사람들도 혈액형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 A형이 많은데, 일본도 그런 걸 보며 전 세계적으로 그런가 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좀 달랐다. 우리는 A형이라도 그냥 좀 꼼꼼하다는 느낌인데, 일본의 A형은 엄청 꼼꼼한 느낌. 그리고, AB형이든, B형이든, O형이든 전부 꼼꼼한 느낌?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한 번은 일본 협력사가 한국을 방문했었다. 회장과 직원들이 참석해 회의를 하는데, 둘 다 복사된 종이를 보면서 회의를 했다. 뭔가 보니, 예전 미팅 때 각자 무슨 얘기를 했는지가 깨알같이 적혀있었다. 일명 회의록인 건데, 중요한 것만 적는 우리와 달리 누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주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모든 말을 적는다는 걸 알게 되니, 일본 사람들과 회의를 할 때 말조심을 하게 됐다. 약속한 걸 기억 못 하고 안 지키면 신뢰를 잃게 될 테니까. 


여러 고객사와 일하면서 일본 사람이 꼼꼼하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됐다. 내가 본 한국사람들은, 핵심을 구별해서 중요한 것에 집중한다. 내가 본 일본 사람들은, 모든 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야 했다. 회의를 해도 핵심으로 바로 가는 스타일에 익숙한데, 일본 고객사를 방문하면 처음에는 가만히 듣고 있어야 했다. 전체를 꼼꼼하게 다 설명한 후, 중요 포인트를 얘기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중요 논점으로 바로 들어가자고 제안도 했지만, 일본 사람들 표정이 변하는 걸 보고, 일본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이런 꼼꼼함은 제품 품질에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 회사의 품질에 대한 집착은 전 세계 최고였다. 예를 들어 캡슐의 불순물 함량 0.3% 미만이 통과라면, 일본은 0.1% 미만이 기준인 식으로 품질 기준 자체가 더 까다로웠다. 또한 많은 일본 회사들이 품질을 차별점으로 하기에 회사 자체 품질 기준을 더 까다롭게 책정했다. 저녁에 고객들과 술을 마시면 고객사 사장이나 직원들이 까다로운 품질 기준이 힘들다고 얘기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참 믿을 만한 제품이다. 


꼼꼼함이 분명히 장점일 텐데, 글로벌에서 일하면서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스위스에서 일할 때 일본인 남자 동료랑 같이 일했다.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주재원으로 근무 중이었다. 그런데 동료를 보니 꼼꼼해도 너무 꼼꼼했다. 회의라도 할 때면 엑셀 파일 가득 숫자와 정보를 보여줬다. 그 사람이 얘기를 시작하고 5분 정도 지나면 나는 종종 딴생각을 했다. ‘점심엔 뭘 먹을까? 오늘 날씨가 너무 좋은데 어디로 놀러 가지?’ 잠시 그러다 안 돼 하고, 다시 집중하다 딴생각하다를 반복했다. 큰 그림과 핵심을 못 보고 디테일에 파묻혀있는 느낌이었다. 크게 질문을 던져도 답은 디테일이었다. 그러기에 바쁜 직원들은 그 동료가 얘기를 시작하면 딴짓을 했고, 임원들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So, what’s your point)?”를 반복했다. 친하고 고마운 동료라 소통 방식에 대한 조언도 해 봤지만, 변하지 않았다.


꼼꼼한 방식은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도 힘들게 만들었다. 


글로벌 리더이니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모든 일을 다 알아야 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니 하루 종일 일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자신은 정말 열심히 일하는 데 결과물은 좋지 않으니 많이 좌절했다. 직장에서 직급이 변하면 대부분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과장 일하는 방식과 이사 일하는 방식이 다를 텐데, 꼼꼼함이 몸에 밴 그 동료는 과장 방식으로 이사 업무량을 감당한 것이다.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하는데, 변화하지 못하니, 많이 안타까웠다. 인정받지 못하니 더 안쓰러웠다.


그 동료가 글로벌이 아닌 일본에서 일했다면, 또는 리더가 아닌 대리나 과장이었다면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 동료를 생각하면 꼼꼼한 여러 일본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게 맞다고, 그게 룰이라는 사회에서 몇십 년을 산다면, 다른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전 세계를 출장 다니면서 한국에 태어난 게 감사한 적이 참 많았다. A형만 인정받는 세상이 아닌, 어떤 혈액형이어도 괜찮고 튀는 걸 오히려 반기는 우리나라가 나는 참 좋다. 


튀는 걸 수용하는 나라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파란 머리로 염색이나 해 볼까? 하다가 사람들 시선이 불편할 거라고 느끼는 지금의 나는 조금 더 깨어야 하나 보다.  

Karolina Grabowska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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