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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황 Jul 26. 2021

나는 동성애를 지지하는 기독교인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주님을 믿고 설교 듣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교회를 계속 다녀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이 가끔 생긴다. 그중 하나는 동성애다.


         '동성애는 성경에서 '죄악' 행위이며 동성 결혼은 '창조주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좀 더 온화한 표현으로 "동성애자를 사랑한다'라고 말해도, 그 '사랑'이란 동성애자를 신앙으로 '치유하여 더 이상 동성애자가 아니게 만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중


나는 동성애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아는 유일한 동성애자는 방송인 홍석천이었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동성애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첫 계기는 MBA 동기였다 ('선미'라고 부르겠다). 호주로 부모님과 이주한 한국인 여자였는데, 한 번은 내가 근무하는 필라델피아에 놀러 왔다. 저녁을 먹는데, 자기가 레즈비언이라고 말했다. 동거하는 파트너 사진을 보여줬는데, 예쁜 백인 여자였다. MBA 2년 내내 동기 중 누구도 선미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몰랐다. 속으로 많이 놀랐지만,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정신이 들고 나니 선미가 걱정이 됐다.


"호주에 계신 부모님도 아셔?"

"아니"

"말할 거야?"

"안 할 거야. 절대 이해 못하시거든. 호주로 안 돌아갈 거야."


저녁 내내 여러 생각이 들었다. 2년 내내 숨겨야 했던 그 마음은 어땠을까? 2년이 아니라 평생이었겠지. 부모님께 평생 숨기고 사는 저 마음은 어떨까? 가슴이 먹먹해졌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중에 선미는 그 파트너랑 결혼을 했고, 예쁜 딸을 낳았다. 행복한 가족사진을 보며 파트너 부모님도 애기를 보셨냐니 못 보셨단다. 백인 여자인 파트너 부모님도 동성애를 반대하시기에, 내 친구도, 이쁜 딸도 만나지 않으신다고. 미국인데도 이렇구나 싶었다. 호주에 계신 선미의 부모님은 여전히 선미가 싱글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두 번째 계기는 2008년 필라델피아에서 근무할 때였다. 한 번은 뉴저지 회사 행사 후 직원 (편의상 '멜라니'라고 부르겠다) 한 명을 태우고 필라델피아로 돌아왔다. 그런데 차 안에서 멜라니가 커밍아웃을 하는 게 아닌가. 40대 후반 여자인 멜라니는 열다섯, 열여섯 살 때부터 자기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있었고, 20대가 되어서야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걸 알았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고, 1980년대 미국은 여전히 동성애를 혐오했기에, 정체성을 숨기고 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아들 하나를 낳고 20여 년의 결혼생활을 지속했다. 아들이 대학 입학 얼마 후, 멜라니는 아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아들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받아들이겠다면서. 감사하게도 아들은 펑펑 울며 오직 자신 때문에 20년을 참은 엄마를 받아들였단다. 동성애자이든 아니든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라고 하면서. 멜라니는 한참을 울면서 얘기를 이어갔다. 멜라니에게 회사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아냐고 물으니, 모른단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비밀이라고 말하며, 커밍아웃을 하면 사람들 시선이 달라질 거라고 했다.


세 번째 계기 역시 필라델피아에서였다. 리더십 프로그램 일환으로 비영리단체를 돕고 있었다. 어느 날 그 단체 대표 ('에이미'라 부르겠다)와 사무실에서 얘기를 하는데, 에이미 눈빛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에이미가 내 손을 만지는 게 아닌가? 손을 티 나지 않게 빼려고 노력했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에이미는 레즈비언이었다. 더 놀랐던 건, 그 단체 사람들 대부분이 레즈비언이었다. 만나서 그렇게 회의를 하고도 전혀 몰랐다. 에이미는 누가 봐도 예쁜 백인 여자였고, 내 손을 잡지 않았다면 둔한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동성애를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면 나는 선미를, 멜라니를, 에이미를 부정해야 한다. 남편이 만질 때마다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느낌이어서 끔찍했다는 가톨릭 신자였던 멜라니에게 기도로 이겨내 보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다.


가끔 생각한다. 내 주변에는 왜 동성애자들이 별로 없을까? 사람들이 숨기고 있어서일 수도 있겠다 싶다.

생각이 또 꼬리를 문다. 만약 내 동생이 동성애자라면 난 어떻게 대할까?

그러다 생각은 '내가 동성애자라면 난 어떻게 할까?'에서 멈춘다. 난 세상의 편견을 이길 수 있을까? 내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사람들 시선이 지금과 같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제 교회 설교에서 목사님께서 동성애에 대한 불편함을 얘기하셨다. 많은 기독교인이 동성애를 반대한다.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했다. 괜히 불편해지겠다 싶어서. 하지만, 용기를 내 본다. 선미를, 멜라니를, 에이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나는 동성애를 지지하는 기독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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